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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정치 산성' 어떻게 넘어설까

개혁세력은 우편향, 진보세력은 좌편향 벗어날 때

등록|2008.06.16 09:31 수정|2008.06.16 09:31

▲ 6.10 항쟁 기념일인 10일 서울 세종로 광화문 일대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전면 재협상을 촉구하며 촛불 행진을 하고 있다. ⓒ 남소연

불꽃 물살이다. 살아 출렁인다. 서울 광화문에서 시청까지, 불탄 숭례문 둘레에도 촛불이 강을 이룬다. 비단 서울만이 아니다. 6월 대항쟁, 다시 그날을 맞아 대한민국의 골골샅샅에서 촛불은 타올랐다.


가히 '촛불혁명' 이란 탄성이 나올 만하다. 촛불의 강을 현장에서 마주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이미 그 도저한 강의 한 물살이 되어있음을, 전혀 낯선 얼굴과 친숙한 벗이 되어 생생한 예술을 창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촛불이 진정 혁명이려면, 넘어야 할 장벽이 있다. 촛불 앞에서 '이제 그만'이라는 주장이 세련된 포장으로 솔솔 흘러나온다. 문제를 정치권으로 넘길 때라는 주문도 이어진다. 윤똑똑이들은 촛불이 정치집회로 변질되었다고 언구럭 부린다.


그렇다.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촛불을 가로막고 있는 벽을 발견할 수 있다. '정치의 벽'이다. 요즘 '시사용어'를 빌리면 '정치 산성'이다.

촛불혁명을 담당할 정치세력이 없다

문제의 핵심은 촛불의 상상력에 걸맞은 정치세력이 없다는 데 있다. '촛불' 정국의 정리를 정치권이 맡아야 한다는 주문이 잘못인 명백한 이유다.

홍준표 의원이 뜬금없이 '사회적 시장주의'를 들먹이고 있지만 촛불과 한나라당을 이을 사람은 없을 터다. 그렇다면 통합민주당의 '손학규 체제'는 어떤가. 전혀 아니다. 촛불이 강을 이룰 때까지 민주당이 한 일은 전혀 없다. 촛불 현장에서 민주당은 외면 받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사회당은 처음부터 촛불에 적극 합류했다. 하지만 촛불을 든 사람들에게 진보정당들은 아직 미덥지 못한 게 사실이다.

여전히 청와대는, 대한민국 권력의 핵심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건재'하다. 의회권력 또한 한나라당이다. 고작 유권자 30%의 지지를 받은 대통령이, 유권자 절반이 외면한 총선에서 과반의석을 차지한 한나라당과 더불어, 앞으로 2012년까지 대한민국의 최고 의사결정권을 행사해갈 터이다.

바로 그래서다. 정치권의 '개혁정당'과 진보정당 모두 왜 촛불 앞에 자신이 초라한가를 냉철히 짚을 때다.

누가 촛불 혁명의 요구를 제대로 수렴할 수 있을까 사진은 통합민주당,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야3당 국회의원들이 지난 5일 오전 국회 본청 계단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 촉구와 폭력진압 중단을 요구하고 있는 모습. ⓒ 유성호


민주당은 지난 10년 동안 집권하면서 대선과 총선에서 심판을 받았다. 하지만 아직도 그 심판의 뜻을 옳게 받든 모습이 도통 보이지 않다. 문제는 민주당만이 아니다. 민주당에 우호적인 개혁적 지식인 대다수도 신자유주의가 어쩔 수 없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데 동의해왔다. 객관적 결과로는 옹호해왔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이미 미국 내부에서도 불신 받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는 '베네수엘라 모델'도 있고 '스웨덴 모델'도 있다. 물론, 둘 다 우리가 따라야 할 모델은 아니다.

그러나 진지하게 묻고 싶다.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의 모델을 스스로 만들 수 없는가? 이른바 개혁세력은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다. 그들은 의도와 무관하게 신자유주의가 팽배하는 오늘을 불렀다. 진정한 개혁세력이라면 이제 촛불 앞에서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려는 다짐이 필요하다. 바로 그 때 비로소 개혁이란 이름에 걸맞은 개혁세력이 될 수 있다.

진보정당들도 성찰할 대목이 있다. 모두가 그런 것은 결코 아니지만, 진보정당 내부에는 마치 지금이라도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실현할 수 있을 듯이 '선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뿐이 아니다. 마치 자급자족 경제체제를 구현할 수 있을 듯이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그런 모호한 비전이 민중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주요 이유가 되어 온 게 아닐까. 더구나 분당사태까지 빚었다. 과연 오늘의 진보정당들을 비정규직 노동자, 농민, 빈민, 민주시민들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 숙고할 때다.

주권운동 펼쳐갈 범국민운동 상설기구 절실

▲ 15일 밤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 촉구 및 이명박 정부 심판 39차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서울시청 신청사 공사를 위해 설치한 팬스에 각자의 요구사항이 적힌 종이 수백장을 붙여 놓았다. ⓒ 권우성

그렇다. 지금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개혁세력의 우편향 못지않게 자급자족체제나 사회주의를 당면 과제로 여기는 좌편향에서 벗어나야 옳다. 개혁세력과 진보세력의 두 편향에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민중에 대한 불신이다. 민중과 더불어 문제를 책임 있게 풀어가겠다면 결코 편향된 언행을 할 수 없다. 또 다른 공통점은 새로운 비전과 구체적 정책 대안의 빈곤이다. 좌우 두 편향은 촛불의 강을 가로막고 있는 '정치의 벽'이다.

그 벽을 넘어서는 데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 촛불을 든 사람들 자신이 주체로 나서야 옳다. 바로 그 때 비로소 개혁세력과 진보세력이 진지하게 자기성찰 할 수 있다. 바로 그 때 진보정치세력의 대연합도 가능하다. 바로 그 때 저 정치의 철벽을 들어올릴 '지렛대'를 만들 수 있다.

지렛대를 만들 주체도 지금 촛불을 든 사람들이다. 2008년 5월과 6월을 뜨겁게 달구며 타오른 촛불집회에서 촛불을 든 사람들 스스로 주권운동을 천명했다. 그 주권운동을 지며리 펼쳐갈 방안이 무엇인가에 우리 모두의 슬기를 모을 때다. 아래로부터 범국민운동 상설기구를 만들어갈 때다. 물론, 조급할 일은 아니다. 주권자인 촛불시민 스스로 천천히 이뤄가야 옳다. 다만 마냥 늦출 일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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