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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서 종교를 결정하는 기준은 먹을 것?

[병영일기 ⑥] 장교후보생 시절 먹을 것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

등록|2008.06.16 16:23 수정|2008.06.16 17:48

군에서 종교를 결정하는 것은 "먹을 것"?육군훈련소 장병들이 종교활동을 하고 있다. 춥고 배고픈 장교후보생 시절 먹을 것을 따라 종교를 옮긴 적도 있다. ⓒ 육군훈련소



먹을 것이 종교를 결정한다? 웬 뚱딴지같은 얘기냐고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는 분명 그 어느 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사실이다. 정신적인 면을 지배하는 종교가 단순히 먹을 것에 의해 결정된다면 돈 많고, 재산 많고, 신도가 많은 종교가 단연 가장 많은 신도를 보유하고 있는 게 맞는 사실일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분명 사회라는 곳에서는 들어맞지 않는 허황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그곳이 사회가 아닌 바로 군대라면 아마도 공감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나 또한 지난 1997년 대학을 갓 졸업하고 대구 영천에 위치하고 있는 3사관학교에 입교해 장교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교육을 받을 때 그와 같은 경험을 했다. 특히 나와 같이 당시에 특정한 종교를 믿고 있지 않았던 대다수의 동료들은 교육을 받던 12주 동안 최소한 3번 이상은 종교가 바뀌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장교 교육을 받으면서 줏대없이 종교를 바꾸면서 먹을 것을 탐했던 점에 대해서는 부끄럽긴 하지만 군에 다녀온 남자들은 다 알 법한 힘들었던 훈련소 생활에서 벌어진 이야기인 만큼 공감이 되리라는 생각에서 이 글을 쓰려 한다(오해 없기 바랍니다).

라면 먹고 소원 풀었지만, 롯데리아 세트 때문에 종교를 바꾸다

충성대교회와 성 바실리오 성당필자가 장교후보생 시절에 다녔던 교회(왼쪽)와 성당의 모습. 그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나는 것 같다. ⓒ 3사관학교 홈페이지



때는 바야흐로 1997년 4월. 입교한 지 10여 일 만에 처음으로 주말을 맞아 종교활동에 참여했다. 첫 주에는 개인 관물대와 내무반 정리 등으로 인해 정신없던 터라 종교활동 자체가 편성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리된 뒤인 그 다음주부터 본격적인 종교활동이 시작되었다.

물론, 종교활동이 편성되어 있다고 해서 모두가 참석하는 것은 아니고 종교가 없는 동료들은 내무반에서 쉬면서 공부를 하는 등 개인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같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훈련소에 같이 입소한 동기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종교활동만한 좋은 기회가 없었기에 난 개인 시간을 포기한 채 종교활동에 참석했다.

'어디를 가야 동기들을 많이 만날 수 있을까?'

특별한 종교가 없던 난 한참을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같은 내무반을 쓰던 동료 한명이 다가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야! 오늘 천주교에서 라면 준댄다. 거기로 가자!"
"천주교에는 얘들이 별로 안 가잖아?"
"그래도 오늘은 라면 준다고 해서 많이 올 거 같은데?" 
"그래? 그럼 가보지 뭐. 라면도 먹고 싶었는데…."

그렇게 해서 내무반 동료와 함께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당이라는 곳을 찾았다. 천주교 의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성당을 찾은 난 이내 후회하고 말았다. 종교보다는 먹을 것에 더 관심이 많았던 터라 성당에 도착하자마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힘들었던 일주일을 보내서 그런지 졸음이 쏟아져 올 무렵, 인도자가 앉았다 일어났다를 시키는 게 아닌가! 옆의 동료에게 물어보니 천주교 미사란 게 원래 그런 것이라고 귀띔해 줬다.

'뭐야. 졸지도 못하고…. 그래도 끝나면 라면 준다니까.'

그렇게 한 시간여의 미사가 끝난 뒤 이제 라면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한순간 졸음이 싹 사라지고 어느새 내 앞에는 쫄깃쫄깃하게 끓여진 라면이 대령되었다.

"이게 얼마만에 먹어보는 라면이냐?"
"그러게 말야. 끓인 라면은 입소하고 처음이지? 오길 잘했지?"
"그러게. 다음 주에도 또 천주교 와야 되겠다."

얼마나 맛있었는지 두 그릇이나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훈육대('중대' 개념)별로 줄을 맞추어 내무반으로 돌아오고 있는데, 한쪽에서 줄 맞추어 걸어가던 다른 훈육대 동료들의 모습이 보였다. 한 손에 '롯데리아'라고 적혀있는 종이상자를 든 채. 그 종이상자 안에는 멀리서 바라봐도 금방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닭다리와 감자튀김 등이 들어 있었다.

"저건 뭐지? 어디 갔다 오는데 잔뜩 싸들고 오지?"
"글쎄. 얼른 훈육대 가서 다른 얘들한테 물어보자."

발걸음을 재촉해 내무반에 도착하자 동료들이 둘어앉아 방금 전 보았던 롯데리아 세트를 나누어먹고 있었다.

"야! 그거 뭐냐? 다른 얘들도 다 하나씩 들고 있던데?"
"이거? 교회에서 나누어 준거야. 다음 주에도 준다고 그랬어."
"그래? 정말이야?"
"그럼. 교회에서 거짓말 하겠냐? 다음 주에는 세례식도 한대."
"아~ 나두 교회갈 걸. 원래 난 교회에 갔어야 됐는데…."

롯데리아 세트 때문에 세례까지 받다

어찌 보면 핑계거리 밖에 되지 않겠지만 난 그 당시에만 특정한 종교가 없었지 그 전에 교회에 다닌 적이 있었다. 어머님이 생전에 계시던 때 같이 교회를 다녔고, 고등학교와 대학교 역시 내가 원한 바는 아니었지만 기독교 미션스쿨이었다. '라면 준다는 말만 하지 않았어도 교회에 갔었을 텐데' 하는 후회만 들었다.

'다음 주에 또 준다니까 다음 주부터는 교회에 가야지.'

개인화기, 수류탄, 정신교육 등 정신없이 바쁜 교육일정을 소화하다보니 금세 또 주말이 돌오왔다. 마침내 기다리던 종교활동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

'오늘은 꼭 교회로 가야지. 세례식도 하고 지시봉도 준다니까….'

교회에 간다는 것보다 내 생각은 이미 잿밥에 있었다. 롯데리아 세트에 지시봉까지. 교회에 도착하고 보니 두 가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교회의 웅장함이었다. 몇 백명을 수용할 수 있는 복층의 교회였다. 또 한 가지는 그 웅장한 교회 안을 동료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 동료들 사이에는 나와 같은 학교에서 온 동기들이 모두 있었다.

"야! 다음 주에는 여기 ○○번 부근에서 다 만나자."
"그래. ○○한테도 보면 말 전해줘라. 여기서라도 일주일에 한번은 보자."

너무나 반가웠다. 그렇게 소근대며 한참을 동기들과 이야기하고 있는데 세례준비가 다 끝난는지 방송소리가 나왔다.

"세례를 신청한 후보생들은 모두 앞으로 나오세요."

롯데리아 세트 먹으려고 교회에 왔는데 이제는 세례까지 받게 되었다. 물론 그 덕분에 학교 동기들도 만나게 되었으니 나쁠 건 없었다.

세례를 받고 십자가 목걸이와 지시봉까지 선물로 받았다. 그리고 세례를 마치고 난 뒤에는 바라던 롯데리아 세트까지도 손에 쥐고는 동기들과 맛있게 먹으며 그동안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 이후로도 난 육군소위로 임관할 때까지 종교의 변화 없이 쭉 교회를 다녔고, 그 곳에서 동기들과 서로의 정보를 주고 받으며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먹을 것' 때문에 종교를 바꾸었다는 사실이 가끔 실소를 자아내긴 하지만 춥고 배고팠던 훈련소 시절의 잊지 못할 추억거리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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