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어민 교사와 스스럼 없이 대화를 나누는 <갈현초등학교> 학생들. ⓒ 나영준
도시 개발의 집중화는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 환경문제, 경제 양극화, 인구과밀화 등. 교육이라고 그 영향을 피해갈 수 없다. 농촌을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인구. 부모의 손을 잡고 도시로 걸어 들어가는 아이들의 숫자는 인위적으로 통제하기 힘들다.
이는 농촌지역 공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한 원인이 된다. 학교운영을 지속하기 힘든 교육당국으로서는 재정의 원활화를 위해 폐교를 검토하게 되고, 이는 고스란히 아이들과 학부모의 피해로 돌아온다.
'교육 명품화'로 승부를 걸다
▲ 폐교를 걱정해야 했던 파주 <갈현초등학교> ⓒ 나영준
"예쁘고 환경도 좋은 학교였죠. 그런데 학생 수가 점차 줄더군요. 국가정책으로 60명 미만 학교는 통폐합이나 분교의 대상이 됩니다. 당장 폐교를 면한다 해도, 학생이 너무 없으면 교육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2006년 초빙교장으로 학교를 맡은 김호산(61) 교장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생각해 낸 결론은 학생에게 학교의 모든 것을 투자하는 것이었다. 우선 모든 학부모들의 관심이자 고민인 영어교육에 힘을 썼다.
갈현초교 부근에는 경기영어마을이 있다. 그 길로 영어마을을 찾아 나선 그는 영어마을 총장과 만나 전 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한 주중 영어수업을 허락받았다. 학생들은 주당 8시간 원어민 교사와 영어 수업을 하고, 동시에 매주 수요일 오후 파주 영어마을로 이동해 살아있는 체험교육을 받는다.
단순히 체험수업이 아닌 정규수업화인 셈이다. 거기다 모든 비용은 무료다. 학기당 학생 1인 수업료는 45만 원선이지만, 30만 원에 '담판'을 지었고 그마저도 학교에서 전액을 부담한다. 학생들로선 흥이 날 수밖에 없다.
▲ 갈현초등학교의 교육은 일회성 체험이 아닌 '지속적 몰입교육'으로 이루어진다. ⓒ 나영준
"Hi, Becky. you late. Scream!"
11일 오후 영어마을 입구. 따로 도착한 원어민 교사에게 아이들은 농담을 던져대며 짓궂은 장난도 서슴지 않는다. 시행 초기만 해도 멀뚱멀뚱 딴청을 피우기 일쑤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외국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어지는 수업. 단순히 주입이 아닌 과학과 체육, 미술 등의 교과를 영어 안에서 해결하는 몰입 교육을 지향하는 현장. 화산 생성 원리를 실험하던 6학년 최혜민양은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게 너무 기쁘다. 세계 공통언어인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날은 화창한 날씨 탓인지 단기 체험교육을 나온 타 학교 어린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대개가 또 하나의 소풍으로 여기는 듯 원어민교사를 보면 눈길을 피하기 일쑤여서, 교육에 몰입한 갈현초교 어린이들과는 확연히 대비됐다.
늘어난 학생, 퇴임을 앞둔 마지막 소망은…
▲ 퇴임을 앞두고 마지막 교육열을 태우는 김호산 교장. ⓒ 나영준
또 어린이들에게 각자의 텃밭을 분양해 김매기, 거름주기 등을 통해 직접 기른 상추 등을 급식 시간에 나누어 먹을 수 있게 한다. 5학년 박진이양은 직접 기른 상추 맛이 꿀맛이라며 가을에는 고구마를 캐 맛있게 쪄 먹을 계획이라고 밝게 웃었다.
김은희 교무부장은 학교에서 영어교육에 투자하는 비용만 해도 1년에 3천만 원이라며, "스쿨버스로 통학을 책임지는 등 저소득층 가정이나 아이를 돌보기 힘든 가정의 경우, 학교교육만으로 도시지역에 뒤지지 않는 교육환경을 누릴 수 있어 큰 만족을 나타낸다"고 전했다.
"해외유학을 경험했던 아이들도 좋아합니다. 학부모들은 사교육비 절감에 조기유학 걱정을 덜었다며 기뻐하고요. 무엇보다 학생들이 영어교육을 즐거워한다는 게 가장 큰 변화죠."
효과는 나타나고 있다. 1년간 학생 수가 34명이 늘어났고, 지금 현재도 문의전화가 빗발치고 있다고 한다. 파주 시내는 물론 서울 시내에 다니던 학생도 전학을 온단다. 물론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 걱정도 된다고 김호산 교장은 털어놓았다.
"가장 큰 문제는 교육비용 조달입니다. 지금까지는 학교운영비만으로 책임을 졌습니다. 당장 올해까지는 어떻게 되겠지만 그 이후가 걱정입니다. 동문회나 지자체, 교육청 등의 도움이 많이 필요합니다. 저야 올해가 마지막이니 떠나면 그만이지만, 적어도 좋은 교육이 지속될 수 있는 환경은 만들어 주고 은퇴하고 싶네요."
아직도 그리고 있는 많은 교육계획.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그의 교직생활은 올해가 끝자락이었다. 교직의 마무리. "남는 것도 목적도, 결국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것 뿐"이라며 노 스승은 하얗게 웃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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