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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이 숨쉬는 지리산길을 만나다

[사진] 마음을 비우며 한 걸음 한 걸음

등록|2008.06.16 18:18 수정|2008.06.17 08:24
늘 그리운 그곳, 지리산. 그 능선들을 바라보며, 때론 그 숲에 묻히며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 열렸다. 지리산의 숲길과 지리산의 마을길들이 '지리산길'이라는 새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해야할까.  아직은 남원시 산내면 매동마을부터 함양군 세동마을까지 이어지는 20.78km가 전부지만
앞으론 지리산 둘레 800리길(약 300km)이 모두 지리산길이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될 거라고 한다.

언제나 반갑게 맞이해주는 시골집처럼 친절한 느낌이 드는 매동마을을 지나면 지리산길이 시작된다. 전날 비가 내린 탓에 숲 향기가 황홀할 정도로 싱그러운 소나무길. 시멘트 포장도로지만 첫인상이 푸근하다. 고사리밭, 자주감자밭을 구경하며 오르다보면 어느새 폭신폭신한 숲길.

첫 번째 다리쉼을 하기에 좋은, 개서어나무가 있는 곳. 저 멋진 나무아래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있다. 그리곤 바라보는 것 만으로 행복해지는 아름다운 숲길이 이어진다. 이 길을 걸을 땐 저절로 깊은 숨을 쉬게 되고 느릿느릿 걷게 되었다.

지리산길 #1개서어나무 ⓒ 최윤미


개서어나무에 닿기 전 숲속으로 들어서는 길. 이것처럼 정성스럽게 깎아놓은 표지목들이 지리산길 군데군데 있다. 촘촘히 있어서 덕분에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빨간색 가로줄은 남원이라는 뜻, 빨간색 화살표는 진행방향을 가리킨다.

지리산길 #2표지목 ⓒ 최윤미


지리산길에서 가장 흔히 만날 수 있는 들꽃이었던 하구초와 엉겅퀴.

지리산길 #3하구초 ⓒ 최윤미


지리산길 #4엉겅퀴 ⓒ 최윤미


이 길이었다. 나를 부른 사진 한 장은. 지리산 능선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을 수 있는 길이라는 유혹적인 표현으로. 6월의 햇살은 뜨거웠으나, 비오듯 흐르는 땀방울마저 상쾌했던 길이다.

지리산길 #5다랑논 능선길 ⓒ 최윤미


상황마을 위에 자리잡은 다랑논들. 지리산길이 품은 보석같은 풍경이다.

지리산길 #6다랑논 ⓒ 최윤미


상황마을을 지나 오르막이었던 농로가 무척 힘들었지만 등구재를 넘으면 이런 길이 이어진다. 충만함이 차오르는 행복한 길, 내겐 그랬다.

지리산길 #7등구재너머 ⓒ 최윤미


지리산길에서 만난 농민분들은 모두가 반갑게 맞아주셨다. 사이좋게 콩을 심고 계시던 노부부. 여기에 도착하기 전 나는 1리터나 되는 물을 다 마셔버리고 물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물 있느냐며 부르셔서는 밭가에 샘물이 흐르는 곳을 알려주셨다. 산 밑에서 흘러나오는, 샘이랄 것도 없는 무척 작은 샘이었는데 물맛이 어찌나 시원하고 달았는지 모른다.

지리산길 #8노부부 ⓒ 최윤미


창원마을부터 금계마을까지 이어지는 그늘도 없는 시멘트 포장도로는 무척 힘이 들었지만 금계마을을 지나 의중마을에서 벽송사까지 이어지는 숲길은 정말 소박하고 예쁜 길이었다. 예전부터 사람들이 한둘 걸었을만한 폭신폭신한 숲길이 마음에 쏙 들었다.

지리산길 #9벽송사 가는 숲길 ⓒ 최윤미


지리산길 걷기의 종착점이 된 벽송사. 공사중이어서 많이 어수선했지만, 숲그늘이 짙은 진입로는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완공이 다 되고 오랜 세월이 깃들면 멋진 절집이 될 듯.

지리산길 #10지리산벽송사 ⓒ 최윤미


지리산길은 속도를 다투는 길이 아니라, 꼭 종주가 목적인 길이 아니라 실상사 도법스님의 말씀처럼 "스스로 느끼고 성찰하는 일종의 수련의 길"이라는 표현이 꼭 맞았다. 숲 향기에 취해 느릿느릿 걷는 것만으로 행복한 구간이 있는가 하면 땡볕아래서 고행처럼, 수행처럼 고되게 걸어야 하는 구간도 있다. 덕분에 이 길은 '성찰의 길'이 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열린 길은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300km가 다 이어지면 지리산길은 어떤 모습으로, 어떤 무게를 지닌 길이 될까. 천천히 이어질 그 길이 나는 벌써 기다려진다.
덧붙이는 글 * 도보여행자를 위한 국내 최초의 장거리 도보길, 지리산길은 현재 시범구간으로 1구간과 2구간이 열려있습니다.
1구간 : 남원시 산내면 매동마을 -> 다랑논 -> 상황마을 -> 등구재 -> 함양군 마천면 창원마을 -> 금계마을 (총 10km 정도)
2구간 : 함양군 마천면 금계마을 -> 벽송사 -> 송대마을 -> 세동마을 (총 10km 정도)
* 2구간은 아직 완벽히 정비된 상태가 아니어서 벽송사까지만 걷는 게 좋으며, 매동마을에서 벽송사까지는 14km가 조금 못됩니다.
* 지리산길을 걷기 전에는 남원시 인월면에 있는 지리산길 안내센터에 꼭 들러보세요.
* 숲에 흔적을 남기거나 농작물에 손을 대면 절대 안됩니다. 지리산을, 숲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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