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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벗 있어 유쾌했던 계곡 산행

유쾌한 산벗들과 한듬계곡 산행

등록|2008.06.17 15:47 수정|2008.06.18 07:50

한듬계곡한듬계곡을 옆에 끼고 걷는 호젓한 길을 덛다가 ...일찍 피어난 코스모스에게도 인사하고~ ⓒ 이명화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윤동주의 ‘새로운 길’-

한듬계곡도종환님의 시 '접시꽃 당신'이 생각나게 하는 한듬마을...돌담너머 피어난 접시꽃~ ⓒ 이명화

여름이 훨씬 가까워졌다. 곧 여름장마가 시작된다고 하는데, 날씨가 점점 더워지면서 사람들은 바다로 계곡으로 여름휴가를 떠나는 그런 계절이 가까이 있다. 그동안 쭉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추어 산행을 하거나 여행을 해왔다. 오늘은 새로운 산 벗이 생겨 네 사람이 호흡을 맞추어 함께 산행을 하기로 했다. 호흡을 서로 잘 맞출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함께 하기로 했다. 고맙게도 오늘 동행한 산 벗들은 성품이 좋고 순한 사람들이었다. 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길은 구김 없이 마음 편했다.

목적지는 양산 정족산이다. 정족산은 양산 천성산과 가깝다. 들머리 역시 천성산 매표소까지는 똑같다. 천성산 매표소를 통과해서 천성산은 오른쪽, 정족산 가는 방향은 왼쪽에 있어 여기서 서로 길이 갈라진다. 우리는 천성산 매표소를 통과해 성불암 입구에 차를 주차했다. 천성산 가는 길에 내원사 계곡을 옆에 끼고 가듯 정족산 가는 길엔 한듬계곡을  옆에 끼고 간다.

한듬계곡한듬계곡을 옆에 끼고 걷는 호젓한 길엔 꽃들도 눈맞춤하고~ ⓒ 이명화

입구에서 노전암까지 계속 평지길이다. 이 길은 하이킹 코스로 아주 좋을 듯 하다. 밤꽃이 피었나 보다. 짙은 밤꽃향기가 숲을 돌아 나와 바람을 타고 향기를 날렸다. 넓은 산책로 같은 호젓한 길과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만 해도 좋은데, 밤꽃향기 짙게 흩날리는 길 위에 산딸기도 심심찮게 있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한듬계곡은 내원사 계곡보다 훨씬 넓고 수량도 많은 듯했다. 많은 사람들이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있거나 여럿이서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다슬기를 잡느라 흐르는 강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넓고 탁 트인 길옆에 계속 이야기를 걸어오는 깊고 넓은 계곡 물소리가 환해서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길이다.

한듬계곡을 따라 걷는 길에서 한듬 마을을 만났다. 예전에는 마을을 이루고 사람들이 더러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거의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이란다. 누가 가꾸어 놓았을까. 길가에 가지런하게 심어놓은 코스모스꽃이 활짝 피었다. 가을도 아닌 초여름에 핀 코스모스를 길 위에서 만나니 반갑다. 사람이 사는 집인지 안 사는 집인지 분간할 수 없는 함부로 자란 풀들이 무성한 인가가 보인다.

돌담 위에 핀 붉은 장미꽃, 사람의 손이 많이 닿지 않은 화단에 피어난 접시꽃이 활짝 웃으며 산객들에게 일일이 눈인사를 건네고 있어 사람들은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 돌담을 배경으로 예쁘게 핀 접시꽃이랑 사진을 찍고 있는데 담장 저 너머로 얼굴이 하나 떠오르는가 싶더니 가꾸어 놓은 화단에 올라왔다고 화를 냈다. 사람이 사는 집이었던가?!

한듬계곡은초롱꽃에게도 말을 걸고~ ⓒ 이명화

한듬계곡한듬계곡을 끼고 굽어도는 길을 따라 걸으며~ ⓒ 이명화

손이 거의 닿지 않은 것 같은 화단이건만 애써 가꾸어 놓은 화단이라 한다. 죄송하다고 인사하고 다시 가던 길을 따라 걷는다. 평지 길은 아주 길게 이어지고 계곡도 여전히 팔짱을 끼고 길게 이어진다. 어디서 길을 잃었을까. 분명히 정족산 가는 길인데 정족산과 점점 멀어지고 천성산 쪽으로 가까이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오늘 산행코스는 동행한 일행 중 한 사람이 인도하는 것이었는데 알고 보니 본인도 정족산은 처음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듬계곡까지는 몇 번이고 와 보았나보다. 잘 아는 듯하니 말이다. 두 사람이 아니라 네 사람이 정족산을 찾아 가는 길인데 아무도 정확한 길을 모르고 간다. 산에서 길을 잃고 하산 길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간다. ‘정족산 가는 길에서 한참 멀어졌는데요!’ 한다.

얼마나 갔을까. 아무래도 정족산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앞서 가던 일행도 의심스러웠는지 또 다시 산에서 만난 산객한테 길을 물었다. 사방으로 뻗은 갈림길 앞에서 쉬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부부산행을 온 사람들인 듯 했다. 산에서 만난 우리들이 반가운 듯 호기어린 얼굴로 쳐다보더니 길을 묻는 일행에게 ‘여기 좀 앉으소!’ 했다. 우린 함께 앉았다.
길은 젊었을 때부터 이 산에 자주 왔다는 아주머니가 더 잘 알고 있는지, 젊을 땐 아주 예쁜 얼굴이었을 인상 좋은 아주머니는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옆에 앉은 아저씨는 산에서 만난 산 벗들에게 농을 거는 것이 더 재미있는 듯 했다. 이분들은 저 아래 계곡에서 피라미를 잡고 맛있게 요리까지 해 먹고 어디서 캤는지 죽순도 가방 가득 캐간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번은 꼭 산에 가는데 여긴 자주 오는 듯 했다.

한듬계곡깊고 넓고 맑은 한듬계곡에서 ~ ⓒ 이명화

한듬계곡푸른 숲 맑은 계곡~ ⓒ 이명화

유쾌한 성격의 중년 아저씨는 우리 산 벗들과 함께 주고받는 대화가 즐거운 듯 했다. 그러다가 보니 피라미 잡는 법까지 자세하게 얘기해 주었다. 피라미는 남편이 늘 산행을 하거나 계곡을 가면 늘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여기서 피라미 잡는 비법까지 배우게 된 것이 기쁜지 남편은 호기심어린 눈으로 정확하게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잡는지 자세히 물었다. 유쾌남 아저씨는 비밀이라도 되는 것처럼 진지하게 그 비법을 얘기해 주었다.

한참 얘기하던 유쾌남 아저씨는 ‘누구 담배 없소?’라고 물었다. 옆에 앉았던 일행이 담배를 건넸다. 아주머니는 ‘만나는 사람마다 담배를 달라고 한다’며 밉지 않은 듯 눈을 흘겼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두런두런 앉아서 얘기를 주고 받다보니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여러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또 다른 산행의 즐거움과 유익을 얻는 시간이었다. 우리 일행과 두 사람은 함께 일어서서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길을 잃은 우리들에게 아주머니는 얼마동안 길을 잘 안내해 주었고 얼마쯤 가다가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뒤돌아보니 길에 주저앉아 있었다. 호호, 산에 오르기도 전에 계곡에서 맛있게 요리를 해먹고 배가 부른 상태에서 지리산에라도 가는 등짐을 가득 지고 가더니 지레 지쳐버린 것 같았다. 노전암을 지나 대성암 표지판 앞에서 주남고개를 넘었다. 몇 시간을 걸었는데 정족산은 보이지 않고 있다. 또 다시 길을 물을 수밖에. 그런데 너무 먼 길을 돌아왔기에 정족산은 여전히 멀리 있고 우리는 숲 속에서 한바퀴 빙 두른 것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한듬계곡한듬계곡엔...아이들과 함께 온 엄마 아빠들도 보이고... ⓒ 이명화

지금부터라도 정족산을 가려면?! 하지만 오후 늦게 시작한 산행이었는 데다 너무 많은 시간을 소요한 탓에 정족산까지 간다면 내려올 땐 이미 깜깜한 밤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다음을 기약하고 하산한다. 산 능선에 있는 임도에서 막 좁은 등산로를 들어서려는데 사륜구동의 차가 한 대 우리 앞에 섰다. 아까 만났던 두 사람이었다. 아니, 그렇게 무거운 등짐을 지고 본격적인 산행을 하나보다 싶었는데 차를 타고 가다니~차를 어디다 대놓고 있다가 타고 가는 것일까.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유쾌남 아저씨는 차창을 열고 얼굴을 내밀더니 ‘담배 없소?’했다. 그는 끝까지 유쾌한 여운을 남기고 갔다. 덕분에 정족산 정상까지 가지 못한 아쉬움도 깡그리 사라졌다. 동행이 있어 즐거운 산행 길에서 만난 유쾌한 사람들… 이런 즐거움도 있었다. 산길에서 만난 산객이 일러 준대로 길을 찾아 더듬더듬 내려간다. 안적암이 나왔다. 여기서 노란 리본이 있는 좁은 길을 만나 그 길을 따라 쭉 걸었다. 계곡을 끼고 계속 내려가다가 두 갈래의 길을 다시 만났다.

어디가 길인가. 한눈팔지 말고 쭉 내려가다가 갈림길을 만나면 왼쪽 길을 가라고 했지?! 왼쪽 방향 길을 잡았다. 그런데 가던 길을 따라 훨씬 앞서 가던 사람이 있었다. 얼마나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소리쳐 불러보았다. 몇 번이고 불렀을 때에야 인기척을 했다. 처음 출발했던 길과 가까이 왔다는 느낌이 들자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우린 흐르는 계곡에서 신발을 벗고 발을 물에 담가 피로를 풀었다. 지친 발을 계곡물에 넣고 있으니 뭉친 피로가 일시에 물러가고 온 몸까지 시원해지는 듯 했다. 다시 노전암 앞에 당도했다. 그야말로 한바퀴 빙 둘렀던 것이다. 그래도 둘이서 길을 잃어 산을 헤매는 것보다 훨씬 안심이 되었다. 천성산 공룡능선 갈림길을 지나 천성산 매표소 앞에 도착했다.

한듬계곡산 벗이 있어 즐겁지 아니한가... ⓒ 이명화

비록 목적했던 정족산 정상까지 가진 못했지만 오늘은 여럿이서 함께 해서 또 다른 즐거움과 의미가 있어 좋았다. 또한 한듬계곡을 따라 걸었던 호젓한 산길은 끝없이 이어질 듯 나 있지 않았던가. 둘이서 늘 해오던 산행에 또 다른 산 벗과 함께 하는 유쾌함을 느꼈던 하루였다. 산행을 마치고 나서 오늘 동행한 산 벗이 저녁을 사 주었다.

천성산 매표소 바로 앞에 있는 식당에서 산 벗이 사준 빙어 튀김과 산초 비빔밥까지 먹고 이미 어두워진 길을 불 밝히며 돌아오는 길 또한 즐거웠다. 넘치는 하루였다고나 할까.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정호승, '봄길'-


산행수첩:
일시:2008.6.14(토).맑은 뒤 흐림
산행기점: 천성산 내원사 매표소 주차장
산행대상: 계곡산행
산행시간:5시간 45분
진행: 천성산 매표소 주차장(1:25)-천성산 공룡능선.성불사입구(1:35)-노전암(2:05)-대성암표지판(3:00)-주남고개(5:00)-안적암(5:20)-노전암(6:35)-천성산공룡능선 갈림길(6:55)-천성산매표소(7:10)

*정족산 가는 길: 서창 영산대학-주남고개-반계고개(주차장) 대성암까지 차로 진입 가능(시행착오를 거치며 알게 된 정족산 가는 빠른 산행로다^^다음번엔 이 길로 가봐야 할 것 같다.)

한듬계곡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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