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검정고시생은 왜 촛불을 들었나
[나의 백인보②] '이유 있는 반항아' 김경보
"잘못된 것은 바꿔야죠."
"뭐가 잘못되었는데?"
"국민의 건강문제가 걸려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검역주권까지 포기하면서 협상한 것을 비롯해 청소년들을 오직 경쟁으로만 몰고 가는 미친 교육정책이라든지, 환경만 파괴하고 경제성도 없는 대운하를 추진한다든지, 잘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지난 6월 15일 시청 앞 광장에서 만난 나이 18세 청소년 김경보. 왜 촛불집회에 거의 매일 참석하느냐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이렇듯 단순 명쾌하다.
사고뭉치 문제아? 천만에!
1990년생인 경보는 나이로 치면 고등학생이어야 하지만 지금 학생이 아니다. 아니 지금뿐 아니라 오래 전부터 그는 제도권 학교의 학생이 아니었다. 경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른바 대안학교인 중학교를 다니게 되었는데 그 대안학교마저도 중간에서 그만 두었다.
여기까지만 얘기를 들으면 혹시 경보를 '사고뭉치 문제아'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그렇게 판단했다면 그 판단의 잣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경보가 학력이 인정되는 대안학교를 다닐 때 학교에서 선후배 간의 폭력사건이 수차례 있었다고 한다. 경보는 선배가 권위를 세우기 위해 후배들을 폭행하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러한 부당한 처사를 시정하기 위해 학교당국에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하고, 친구들과 함께 폭력사건을 없애기 위한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학교당국은 이러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미온적으로 대처하며 시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경보는 더 이상 학교에 다니기가 싫어져 학교를 그만 두었다. 고등학교도 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경보는 4개월 동안 공부해서 중졸, 고졸 검정고시를 봐서 합격했다.
"그럼 대학은 가야하잖아?"
"대학 가기 싫어요.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하도 대학 대학 하니까 더 가기 싫어요. 대학 안 가도 내가 하고 싶은 일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꼭 대학 갈 필요가 있나요?"
"하고 싶은 일이 뭔데?"
"전 평화운동을 하고 싶어요. 세계 각국의 분쟁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전쟁을 반대하고, 전쟁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요."
경보의 장래 희망은 명백하다. 자신은 어떠한 경우라도 비폭력 평화주의자며, 다문화주의자기 때문에 이것을 실천하면서 살아갈 것이라고 한다.
"그럼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려면 영어라든지 외국어를 공부해야겠네?"
"굳이 영어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이라크에 가려면 이라크 말을 배워야지 영어 배울 필요 없잖아요."
그래서 경보는 영어 아닌 일어, 중국어, 러시아어, 에스페란토어 등을 공부한다. 왜 하필 영어는 안 하느냐고 묻자 "요즘 주위에서 하도 영어 영어 하니까 하기 싫어요"라고 대답한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 따라 집회 참석
경보는 요즘 '동북아 평화연대'라는 시민단체에서 인턴으로 활동하고 있다. 거기에서 러시아, 연해주 역사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낮에는 인턴 활동하고, 저녁 때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촛불집회에 참석한다.
그는 5월 중순부터 촛불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5월 27일에도 참석했다. 이때 경보는 자신이 입고 있는 티셔츠에 자신의 이름, 소속, 나이 그리고 구호 등을 크게 적었다. 이날 집회를 마치고 명동 쪽으로 시위를 할 때 경보는 맨 앞에서 행진했다.
명동에 이르러 경찰과 마주치고 긴장감이 감돌았다. 시위대는 구호를 외치고 평화시위 보장하라고 외쳤다. 그런데 갑자기 전경들이 시위대를 연행하기 시작했다. 앞장선 경보도 전경들이 덮쳤다. 경보는 항의했다. 자신은 비폭력 평화시위를 하는 것이며 내 이름과 소속 그리고 나이가 옷에 적혀있다. 나는 청소년이다. 나를 연행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외쳤다.
그러나 경보의 이와 같은 외침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40대 가량 되는 경찰이 전경들한테 "저 놈 잡아!"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경보는 수십 명의 전경들한테 머리채를 잡히고 목과 팔들을 구타당했다. 어찌어찌 밀고 밀리는 과정에서 빠져나왔지만 그날 경보는 많이 다쳤다.
그날 그렇게 폭행을 당하고 나서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고 물었더니, 엄마 아빠(조각가)한테 80년대 상황을 들어왔는데 그때 상황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경보는 어렸을 때 엄마 아빠를 따라 효순-미선 사건, 파병반대, FTA반대 촛불집회에 참석했는데, 이번 광우병 촛불집회는 자기가 먼저 참석하고 엄마 아빠가 나중에 자기 따라서 참석하게 되었다고 한다.
경보가 경찰한테 폭행을 당하고 나서 경보 외할아버지께 큰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경보 외할아버지는 완강한 보수 성향의 분이라서 엄마 아빠의 설득에는 그동안 미동도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경보가 경찰한테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하자 매우 분개하시면서 이제는 외손자 말도 경청하시게 되었다고 한다.
"시험볼 일 없고, 돈은 먹고 살 정도면 되고"
이렇게 날마다 집회나 참석하고 학교에도 안 다니면 다른 평범한 친구들과 나중에 사회에서 경쟁할 때 뒤질 것이라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느냐고 우문을 해봤다.
"경쟁할 일이 없지요. 경쟁할 것이 있다면 점수와 돈인데, 시험을 쳐서 뭐 해보겠다는 생각이 없으니 점수 경쟁할 일이 없고, 남은 것은 돈(재산)인데 돈이란 최소한 먹고 사는 정도면 되거든요. 그 대신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 하면 됩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란 내가 어떤 일을 함으로써 나도 좋고 그 결과 남도 즐거워하는 일이지요."
역시 현답이다. 18살, 속이 꽉 찬 경보가 바라는 세상은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며, 빈부 격차가 없는, 거지가 없는 우리나라다. 이 늠름하고 아름다운 젊은이를 만나고 나니 이 촛불로 인해 온 세상이 밝아지는 것 같다.
"뭐가 잘못되었는데?"
"국민의 건강문제가 걸려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검역주권까지 포기하면서 협상한 것을 비롯해 청소년들을 오직 경쟁으로만 몰고 가는 미친 교육정책이라든지, 환경만 파괴하고 경제성도 없는 대운하를 추진한다든지, 잘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지난 6월 15일 시청 앞 광장에서 만난 나이 18세 청소년 김경보. 왜 촛불집회에 거의 매일 참석하느냐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이렇듯 단순 명쾌하다.
▲ 18세 촛불 청소년 김경보 ⓒ 민종덕
여기까지만 얘기를 들으면 혹시 경보를 '사고뭉치 문제아'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그렇게 판단했다면 그 판단의 잣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경보가 학력이 인정되는 대안학교를 다닐 때 학교에서 선후배 간의 폭력사건이 수차례 있었다고 한다. 경보는 선배가 권위를 세우기 위해 후배들을 폭행하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러한 부당한 처사를 시정하기 위해 학교당국에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하고, 친구들과 함께 폭력사건을 없애기 위한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학교당국은 이러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미온적으로 대처하며 시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경보는 더 이상 학교에 다니기가 싫어져 학교를 그만 두었다. 고등학교도 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경보는 4개월 동안 공부해서 중졸, 고졸 검정고시를 봐서 합격했다.
"그럼 대학은 가야하잖아?"
"대학 가기 싫어요.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하도 대학 대학 하니까 더 가기 싫어요. 대학 안 가도 내가 하고 싶은 일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꼭 대학 갈 필요가 있나요?"
"하고 싶은 일이 뭔데?"
"전 평화운동을 하고 싶어요. 세계 각국의 분쟁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전쟁을 반대하고, 전쟁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요."
경보의 장래 희망은 명백하다. 자신은 어떠한 경우라도 비폭력 평화주의자며, 다문화주의자기 때문에 이것을 실천하면서 살아갈 것이라고 한다.
"그럼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려면 영어라든지 외국어를 공부해야겠네?"
"굳이 영어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이라크에 가려면 이라크 말을 배워야지 영어 배울 필요 없잖아요."
그래서 경보는 영어 아닌 일어, 중국어, 러시아어, 에스페란토어 등을 공부한다. 왜 하필 영어는 안 하느냐고 묻자 "요즘 주위에서 하도 영어 영어 하니까 하기 싫어요"라고 대답한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 따라 집회 참석
경보는 요즘 '동북아 평화연대'라는 시민단체에서 인턴으로 활동하고 있다. 거기에서 러시아, 연해주 역사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낮에는 인턴 활동하고, 저녁 때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촛불집회에 참석한다.
그는 5월 중순부터 촛불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5월 27일에도 참석했다. 이때 경보는 자신이 입고 있는 티셔츠에 자신의 이름, 소속, 나이 그리고 구호 등을 크게 적었다. 이날 집회를 마치고 명동 쪽으로 시위를 할 때 경보는 맨 앞에서 행진했다.
명동에 이르러 경찰과 마주치고 긴장감이 감돌았다. 시위대는 구호를 외치고 평화시위 보장하라고 외쳤다. 그런데 갑자기 전경들이 시위대를 연행하기 시작했다. 앞장선 경보도 전경들이 덮쳤다. 경보는 항의했다. 자신은 비폭력 평화시위를 하는 것이며 내 이름과 소속 그리고 나이가 옷에 적혀있다. 나는 청소년이다. 나를 연행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외쳤다.
그러나 경보의 이와 같은 외침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40대 가량 되는 경찰이 전경들한테 "저 놈 잡아!"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경보는 수십 명의 전경들한테 머리채를 잡히고 목과 팔들을 구타당했다. 어찌어찌 밀고 밀리는 과정에서 빠져나왔지만 그날 경보는 많이 다쳤다.
그날 그렇게 폭행을 당하고 나서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고 물었더니, 엄마 아빠(조각가)한테 80년대 상황을 들어왔는데 그때 상황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경보는 어렸을 때 엄마 아빠를 따라 효순-미선 사건, 파병반대, FTA반대 촛불집회에 참석했는데, 이번 광우병 촛불집회는 자기가 먼저 참석하고 엄마 아빠가 나중에 자기 따라서 참석하게 되었다고 한다.
경보가 경찰한테 폭행을 당하고 나서 경보 외할아버지께 큰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경보 외할아버지는 완강한 보수 성향의 분이라서 엄마 아빠의 설득에는 그동안 미동도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경보가 경찰한테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하자 매우 분개하시면서 이제는 외손자 말도 경청하시게 되었다고 한다.
"시험볼 일 없고, 돈은 먹고 살 정도면 되고"
▲ 촛불집회에 참석한 경보네 가족 ⓒ 민종덕
이렇게 날마다 집회나 참석하고 학교에도 안 다니면 다른 평범한 친구들과 나중에 사회에서 경쟁할 때 뒤질 것이라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느냐고 우문을 해봤다.
"경쟁할 일이 없지요. 경쟁할 것이 있다면 점수와 돈인데, 시험을 쳐서 뭐 해보겠다는 생각이 없으니 점수 경쟁할 일이 없고, 남은 것은 돈(재산)인데 돈이란 최소한 먹고 사는 정도면 되거든요. 그 대신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 하면 됩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란 내가 어떤 일을 함으로써 나도 좋고 그 결과 남도 즐거워하는 일이지요."
역시 현답이다. 18살, 속이 꽉 찬 경보가 바라는 세상은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며, 빈부 격차가 없는, 거지가 없는 우리나라다. 이 늠름하고 아름다운 젊은이를 만나고 나니 이 촛불로 인해 온 세상이 밝아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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