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대운하 건설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17일 저녁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집회를 연 뒤 '대운하반대' 대형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 남소연
요즘 나는 거리에서 써지는 붉은 시(詩)들을 본다. 유모차에 있는 어린아이부터 백발의 어른들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힘 있게 써내는 불꽃들이 시보다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것을 본다.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서로 다른 얼굴들이 각자의 크기로 피워내고 있는, 뜨거운 붉은색, 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그 빛들에 대해서.
우리는 촛불을 하늘 높이 올려 구호를 외치기 전, 첫 불씨를 왜 심장 근처에서 틔우는 걸까. 의식하지 않아도 우리는 허리께나 어깨, 머리 위 등에서 불씨를 틔우지 않는다. 불을 붙일 때면 자연스럽게 두 손은 심장 근처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시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나는 사람들 각각이 써내는 이 생생하고 아름다운 시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컨테이너 박스를 쌓고 그 위에 기름까지 바르는 전대미문의 ‘명박산성’의 상상력. 군화발로 짓밟고 물대포를 쏘고 소화기 분말을 난사하는 폭력성. 그러나 사람들은 비폭력을 외치며 걷고, 걷다가 멈추고, 촛불을 들고, 노래를 부른다.
오히려 평화로워서 적응을 하지 못하는 선배들도 있다. 곳곳에서 자유발언과 톡톡 튀는 구호들이 넘쳐난다. 십대들은 삼삼오오 모여 자신들의 의견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하고 아이들은 젊은 부모 옆에서 함께 전단지를 들고 생기발랄하게 거리를 누빈다. 굴곡 많은 한국 사회의 집회 문화는 비극적인 전투에서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축제로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고통을 축제로 승화하는 능력, 거리에서 모두가 시를 쓰는 능력, 예술적인 영역으로 확장해가는 능력을 우리는 어느새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불꽃은 이미 현 정부의 폭력성을 뛰어 넘었다. 그렇게 새로운 시대를 마음속에서 맞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현실의 문제는 아직도 산적해 있다. 시민들이 끊임없이 거리로 나오고 있지만 광우병 문제부터 대운하까지 실질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그래서 이 소통의 거대한 광장이 멈추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모든 사람들이 대단한 이념을 가지고 가슴속에서 불꽃을 끄집어낸 것은 아니다.
▲ 이영주 ⓒ 작가회의
거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 아름답다. 인터넷에서 서로의 의견과 정성을 나누는 네티즌들도 아름답다. 한 번이라도 촛불을 켜본다면 왜 심장 근처에서 불씨를 틔우게 되는지 알게 된다. 인터넷 생중계를 보고 왜 심장이 타오르는 불꽃처럼 뛰는지 알게 된다. 오로지 그것은 하나다. 제대로 살기 위한 사람들의 당연하고 진실한 소망.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 모두가 써내는 붉고 뜨겁고 아름다운 시 한 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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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출생. 2000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108번째 사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