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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학한 중학생들이 경로당을 터는 까닭

[빈곤리포트③] 저소득 빈곤계층 아동대상 엽기살인 막을 길 없나

등록|2008.06.21 09:51 수정|2008.06.21 17:27
작년 크리스마스 때 실종됐던 이혜진·우예슬양이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온 건 올 3월이었다. 5개월간 이미 이 사건은 머릿속에서 지워졌지만 저소득 맞벌이가정의 방치 아동들은 여전히 밤늦도록 놀이터에서 논다. <오마이뉴스>는 경기도의 후원을 받아 경기도에서 가장 취약한 안산 선부동 아이들의 방임 현황을 취재했다. 모두 4차례로 나눠 저소득 맞벌이, 한부모, 조손가정 아이들의 방임실태를 알아보고 대안을 제시한다. <오마이뉴스> 보도를 통해 안산 선부동 저소득 계층 아이들이 보다 안전하고 내실있는 통합보육시스템 속에 안착되기를 기대해본다. [편집자말]

▲ 아동범죄 예방을 위한 어머니폴리스 회원들이 16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석수초등학교에서 안전한 하교길을 위해 학교 주변을 순찰하고 있다. ⓒ 유성호


대구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던 허은정양이 납치 2주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누가 왜 허양을 살해했을까 의문이 증폭되고 있지만 경찰 수사는 아직도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벌써 22일째다. 지난해 말, 안양시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살인사건이 뇌리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또 터진 어린이 살인사건이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지는 '어린이살인범죄'를 막을 길은 없는 것일까. 저소득 빈곤계층 아동들이 끔찍한 범죄의 희생양이 되는 이유는 뭘까.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터져 나오고 있지만, 이렇다 할 대안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학원뺑뺑이' 경제사정 되는 맞벌이와 학원 못 보내는 저소득 맞벌이

정부는 '안양 어린이 살인사건' 이후 학교 앞에 '안전둥지'를 만드는 등 여러 노력을 벌였다. 그러나 효과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이 많다. 지난 18일 안산 선부동 석수초등학교 앞 S문구점 앞에도 주차분리대를 닮은 '안전둥지' 표지판이 있었지만 관리 소홀로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S문구 주인은 "경찰의 요청으로 지난 4월 설치했지만 아직까지 단 한건도 신고가 접수되지 않았다"면서 "평소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안양어린이 사건' 이후 어린이 안전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 16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석수초등학교 앞 문구점에 아동범죄 예방을 위한 아동 안전 지킴이집이 지정되어 운영되고 있다. ⓒ 유성호


안산 단원경찰서 선부지구대 경찰들도 '안전둥지'를 돌면서 상황을 점검했지만, 디카로 '문제없다'는 '증명사진'을 찍을 뿐 별다른 조처는 하지 않았다. 전시행정의 단면처럼 보였다. 

저소득 어린이들의 방과 후 안전문제를 책임지고 있는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은 최근 빈발하는 아동범죄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 맞벌이나 한 부모, 조손가정 어린이들이 범죄에 노출되거나 가담하는 사건이 발생해 이에 대한 예방책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황충만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문화홍보위원은 "부모가 밤늦도록 일하지 않으면 생계가 곤란한 빈곤계층 아동들은 방과 후에 누군가의 돌봄 없이 방치되는 일이 많다"며 "맞벌이 가정 가운데도 아이들을 '학원 뺑뺑이'로 돌릴 경제사정이 되는 집과 그렇지 않은 집의 아이들은 학업이나 범죄노출 등에서 상당한 차이가 난다"고 진단했다.

황 위원은 "안양과 대구에서 발생했던 사건에서 보듯이 저소득 맞벌이, 한 부모 가정 아이들이 범죄에 노출하는 현상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며 "가정이 해결할 수 없는 아동보호 문제점들은 이제 정부와 사회, 시민사회가 책임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지난 5일 안산 선부동 '무지개 지역아동센터'에서는 '동네 저소득계층 아동보호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열띤 토론회가 열렸다. 안양이나 대구에서 터진 사고가 안산 선부동이라고 피해갈 리 없다는 판단에서 '동네어른'들이 사전에 대책을 세워보자는 취지로 마련된 자리였다.

경기도 2학기부터 다기능학교 신설...효과는?

▲ 지난 5일 안산 선부2동 무지개 지역아동센터에서는 '지역아동 복지발전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 장윤선


김선자 안산시 단원구청 주민생활지원과 가정복지 담당계장은 "요즘 관내 경로당 5군데가 잇달아 털리고 있다"며 "퇴학한 중학생들이 집에도 가기 싫고, 그룹홈도 가고 싶지 않으니, PC방 떠돌다 돈 떨어지면 잠잘 곳을 찾아 경로당을 뜯고 들어오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김 계장은 "털린 동네 경로당이 문단속을 좀 더 세게 하니까 도시가스 배관을 타고 2층 문을 딴 뒤 그 길로 내려와 혹여 발을 잘못 딛다가 엉뚱한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가 가슴을 한두 번 쓸어내린 게 아니다"며 "제도권 밖을 전전하는 아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줄 곳은 지역아동센터 뿐인 것 같다"고 당부했다.

한윤희 안산시청 가족여성과 아동담당 계장은 "전국의 지역아동센터 가운데 안산시가 가장 많다"며 "보건복지가족부에도 안산은 특수지역이기 때문에 많은 배려가 필요하다고 당부해두었다"고 전했다.

한 계장은 "최근 빈발하는 아동살인범죄 등과 관련해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경기도가 2학기부터 다기능학교를 시범 운영하기로 했다"며 "한 학교당 3개의 교실을 리모델링해 매일 오후 5시부터 밤 10시까지 교사나 보모가 아이들을 돌보며 학습도 지도하고, 식사도 제공하는 휴식처 개념의 방과 후 교실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다기능학교는 맞벌이 저소득층 자녀를 위해 학교와 학원, 가정기능까지 통합한 24시간 보육시스템이다. 이 개념은 안양 어린이 살인사건을 계기로 지난 4월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는 이 사업에 21억8천만원을 쓴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정작 살해된 어린이들이 다녔던 안양 명학초등학교는 '다기능학교'를 신청하지 않았다. 이유는 학교시설이 노후하고 늦은 밤까지 학교가 운영됨에 따라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는 데다 '어린이 살해 사건'에 따른 학교이미지 등을 고려한 조처로 알려졌다.

사정은 안산도 비슷하다. 학교들이 거의 희망을 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유도 비슷하다. 노후한 학교시설에서 특별한 프로그램도 없이 아이들을 24시간 보육한다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교사들에게는 직무부담으로 연결되고, 학교도 24시간 체제로 가동돼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인력 등이 만만치 않다는 게다.

안산 선일초등학교의 한 교사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학교 안에서 늦은 밤까지 지내야 한다는 것은 견디지 못할 것"이라며 "아이들은 학교보다는 좀 더 따뜻하고, 정겨운 놀이가 있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선호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윤희 안산시청 계장도 "안산시내 학교 가운데 '다기능학교'를 희망하는 학교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며 "공교육의 연장으로 생각하기 쉬워 여러 학교들이 부정적 의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토할 때까지 먹는 아이, 그리고 아동보호의 현실

▲ 방과 후 초등학생들이 16일 오후 경기도 안산지역의 한 아동센터를 찾아와 친구들과 공부를 하고 있다. ⓒ 유성호


황충만 지역아동센터협의회 문화홍보위원은 "지역사회 네트워크로 지역 내 아동보호 문제를 풀었으면 좋겠다"며 "안산 선부2동 우리 동네만이라도 '지역연대'방안으로 학교-지역아동센터-가정까지 연결되는 후원시스템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이어 황 위원은 "지역 안에서 늘 발생하는 아동문제의 현장에 있다 보니 아동복지를 종합적으로 책임질 원스톱 토털서비스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며 "결식아동 누구나 쉽게 찾아와 밥먹고, 공부하고, 프로그램에 따라 문화생활도 즐기고, 엄마처럼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상담교사가 있다면 아이들이 정말 좋아할 것 같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황 위원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원거리에 복지관을 덜렁 짓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접근성이 좋고 네트워크로 정보전달이 빠른 통합 망을 갖춤으로써 위기아동 발생부터 긴급시스템 발동, 아동보호 등을 조직적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와 관련, 성준모 안산시의원(민주당)은 "관이 예산을 확보해 최소한 운영비 정도를 지원한다면 선부2동 주민센터에서도 충분히 행정지원을 할 수 있다"며 "시설현대화와 우수강사 확보로 아이들이 즐겁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복지센터가 있다면 좋겠다"고 아이디어를 보탰다.

김명연 안산시의원(한나라당)도 "관이 아동복지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발을 빼니까 문제"라며 "안산시 전체 청소년공부방, 지역아동센터, 사회복지센터에 대한 일괄 데이터조사 및 운영방안 연구를 통해 사회안전망 구축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고동옥 목사는 "현장 사회복지의 현실을 볼 때 아동과 가정을 잇는 통로역할이 필요한 것 같다"며 "도움이 필요한 빈곤가정 아이들이 많지만 통합적으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어 답답한 점이 많다"고 토로했다.

안산 선부동 무지개 지역아동센터 한근자 사무국장은 "밤 9시, 10시에도 동네 오락실에서 전자오락에 빠진 아이들을 자주 발견한다"면서 "대개는 저녁밥도 굶은 채 엄마가 올 때까지 시간을 보내는 경우"라고 걱정했다. 한 국장의 말이다. 

"밤 10시에도 밥 달라는 애들 있어요. 하루는 아홉 살 꼬맹이에게 밥을 줬는데, 어른보다 더 먹어요. 저러다 탈나지 했는데,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들어가던 밥이 순식간에 도로 다 넘어왔어요. 너무 굶으면 토할 때까지 먹는다는 소리를 듣긴 했어도 직접 본 건 처음이었죠. 여기 있으면 매일 눈물바람이에요. 부모님 늦게 퇴근해도, 안정적인 공간에서 숙제하고, 밥 먹고, 놀 수 있어야 아동범죄 노출빈도가 줄어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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