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잘못 쓴 겹말 손질 (31) ‘학교’에 ‘등교’

[우리 말에 마음쓰기 346] 생활을 ‘엔조이’하고 ‘즐거움’을 희생?

등록|2008.06.21 08:16 수정|2008.06.21 08:16

ㄱ. ‘학교’에 ‘등교’해서

.. 화실을 나와 오후에 학교에 등교해서 수업을 마치면, 늦은 밤이 되었다 ..  《이두호-무식하면 용감하다》(행복한만화가게,2006) 42쪽

 ‘오후(午後)’는 ‘낮’으로 고치면 좋습니다.

 ┌ 등교(登校) : 학생이 학교에 감
 │   - 등교 시간 / 우리 학교는 등교 때마다
 │
 ├ 학교에 등교해서
 └→ 학교에 가서

 학교에 가는 일을 가리켜 ‘등교’라는 한자말을 적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일을 가리켜 ‘하교’라는 한자말을 적기도 하고요.

 ┌ 등교 시간 → 학교 갈 시간, 학교 가는 시간
 └ 우리 학교는 등교 때마다 → 우리 학교는 아침마다

 “학교에 등교하다”라는 말은 엉뚱한 겹말입니다. 생각해 보셔요. “학교를 하교하다”라고 안 하잖아요. “학교에 가다-학교를 마치다”입니다. “학교로 가다-집으로 오다”이고요.

 한자말이라고 해서 쓰지 말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만, 한자말을 너무 좋아하거나 즐겨서 쓰면, 자기도 모르게 겹치기가 되는 말을 쓰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어떤 말을 쓰든, 가장 알맞고 깨끗하고 올바를 때가 좋겠지요. 토박이말을 쓰더라도 알맞고 깨끗하고 올바를 수 있도록 언제나 추스르고 돌아보아야 해요. 한자말을 쓸 때에도 찬찬히 돌아보고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ㄴ. 생활을 ‘엔조이’하고 ‘즐거움’을 희생

.. 현대에서는 누구라도 될 수 있는 한, 생활을 엔조이하고 싶어한다. 생활을 결멸한다거나 그 즐거움을 희생하기까지 해서 생활 그 자체를 부정하려는 이는 없다 ..  《토트 티아메르/김정진 옮김-청소년의 순결》(가톨릭출판사,1963/1986 4쇄) 204쪽

 열 해까지는 안 되었으나, 동인천역에 ‘n joy’라는 쇼핑몰이 들어선 적 있습니다. 몇 해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는데, 이곳에서 쓰던 간판 자국이며 길알림판이며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더욱이 쇼핑몰이 문을 닫으며 업주가 가게사람들한테 전세돈을 떼어먹었지 싶어요. 휑뎅그렁하게 비어 버린 건물 유리창에는 ‘전세금 돌려 달라’는 쪽글만 덕지덕지 붙어서 햇볕에 바래고 있습니다.

 ┌ 생활을 엔조이하고 싶어한다 : 엔조이 (x)
 └ 즐거움을 희생하기까지 해서 : 즐거움 (o)

 한때는 방송 익살꾼(코미디언)들이 ‘미국말 섞어쓰기’를 익살맞게 그려내곤 했습니다. 한국사람들이 쓸데없이 미국말을 섞어쓰며 지식 자랑을 하는 꼬락서니를 비꼬면서요. 그런데, 그렇게 비꼬곤 말건, 아주 자연스럽게 미국말을 섞어쓰는 분들이 많습니다. 마땅히 그러하겠지만(?), 지식을 다루는 일을 하는 분들이 미국말을 즐겨 섞어씁니다. 교수라든지 기자라든지, 출판사나 광고업계나 인터넷 쪽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든지.

 이분들은 이녁 일터에서나 이렇게 미국말을 섞어쓰겠거니 했습니다. 이런 분들을 제가 만날 일이란 드무니까요. 그렇지만, 이분들은 일터에서는 마땅히 쓰고, 일터 아닌 곳에서 동무들을 만나 술 한잔 걸칠 때나, 가벼운 이야기를 나눌 때나, 연속극 이야기를 나눌 때마저 가볍게 미국말을 섞어씁니다. 때로는 잘난 척을 하듯, 때로는 우쭐거리기라도 하듯.

 ┌ 삶을 즐기고 싶다
 ├ 즐겁게 살고 싶다
 └ …

 참멋 아닌 겉멋에 끄달리며 제 멋을 잃습니다. 제 멋을 잃어버리니 제 모습을 잃습니다. 제 모습 잃는 사람은 제 삶에서 멀어집니다. 이리하여, 제 삶에서 멀어지는 사람한테 제 얼이나 넋이 깃들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