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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덥지근한 날, 새콤하고 시원한 초계탕 어때요?

살얼음이 동동뜬 초계탕 한그릇이면 속이 다 시원해 져요

등록|2008.06.21 15:39 수정|2008.06.21 15:39

살얼음이 동동뜬 초계탕 몸에 좋은 적양배추와 호박메밀묵등이 들어간 초계탕 ⓒ 이인영

이번 주 내내 비가 온다더니 또 일기예보가 틀린 것 같다. 비는커녕 후덥지근한 날씨가 계속되니 말이다. 불쾌지수를 높이는 날씨가 계속 이어짐에도 사무실에서는 에어컨을 절대 틀지 않고 선풍기 한 대만 돌리고 있다.

대충 점심을 시켜먹고 나면 불쾌지수가 더욱 높아져서 4시 즈음이면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정신을 차리려 창밖을 내다보면 빡빡하게 들어선 건물만이 보일 뿐이다. 진정으로 도시 탈출을 갈망하며 검색창을 두드린 끝에 '초계탕'이라는 매력적인 음식을 찾아냈다.

시원~하고 새콤~한 육수에 갖은 야채와 기름기가 싹 가신 닭 살코기를 넣어 만든 평양음식 초계탕. 주말을 맞아 도시탈출을 감행하기로 했다. 기왕 도시탈출을 하는 것이니 도심외곽지역의 맛집으로 찾아보았다.

3층 건물 앞내가 찾아간 평양초계탕은 3층 건물로 지하 1층과 2층이 식당이다. ⓒ 이인영

선택한 곳은 서울과 가까운 고양시 덕양구에 자리한 '평양초계탕' 이다. 찾아가는 길이 논과 나무로 어우러진 한적한 시골이다. 다니는 차도 얼마 없어서 조용하게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어서 드라이브 코스로는 손색이 없어 보인다.

3층으로 지어진 건물앞에 당도하니 비상을 준비하는 민들레 홀씨가 둥글둥글하게 마당 가득 피어 있다. 봄에는 이 정원을 노랗게 물들였겠지.

이곳 마당에는 나무그늘이 드리워진 여러개의 벤치를 만들어 놓아서 식후 여담을 나누기에도 좋을 듯 했다.

주문한 음식은 평양초계탕 2인 기준. 주변의 조용한 풍경을 감상하며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은 메밀국수를 삶아낸 물. 일반 냉면집에서 나오는 고기육수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 맛은 숭늉과 비슷하게 구수하면서도 입안에 달라붙는 점도는 그보다 약해서 깔끔한 느낌이다. 숭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더운날 입안이 텁텁한 게 싫은 사람이라면 메밀 삶은 물도 좋을 듯 하다.

메밀국수 주문즉시 손으로 반죽하여 내놓는 메밀국수. 메밀국수도 이렇게 쫄깃할 수 있구나 싶었다. ⓒ 이인영

더운 물을 들이키며 이열치열 속을 달래고 있을 때 감자전이 나왔다. 어쩌면 우리네 야채로 만든 음식은 색이 이렇게도 착할까. 황토마냥 그 빛깔이 곱다. 젓가락으로 쭉쭉 갈라서 간장에 찍어 먹으니 쫀득쫀득 고소한 맛이 머리끝까지 솟아있던 불쾌지수를 살살 달래주는 것 같다.

이 다음 코스로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초계탕이다. 투명한 볼에 갖은 야채와 닭의 살코기가 담겨져 푸짐하게 나온다. 살얼음이 동동 뜬 육수와 야채와 함께. 고기를 국자로 떠서 앞접시로 옮겨 담았다. 그 사이를 못 참고 입안엔 침이 고인다.

주인장이 "초계탕을 맛있게 먹으려면 젓가락으로 건져 먹기보다는 숟가락으로 육수와 함께 탕 떠먹듯 떠먹어야 해요"라며 맛있게 먹는 법을 알려준다.

그 말대로, 테이블에 세팅된 식초와 겨자를 살짝 첨가하여 휘휘 섞어 한술 떠먹었다. 순간적으로 입안이 시원해졌다. 야채와 고기의 궁합도 잘 맞는다. 닭 살코기를 24시간 저온숙성시켰다는데 역시 입안에서 씹히는 살결이 참으로 탱탱하고 쫀쫀하다.

함께 나오는 것이 닭 날개 4조각. 기름이 쪼옥 빠져 다이어트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양념을 안 한 닭 날개가 이리도 담백하고 입안에 착착 붙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맛이 좋아서 4개만 나온 것이 아쉬울 정도다.

한 국자 떠볼까~ 살얼음, 야채, 닭 살코기를 한국자 떠본다. 보는 내내 군침이 입안가득 돌았다. ⓒ 이인영

음식을 먹고 있자니 손님들이 들어온다. 아줌마 4분이 자리를 잡고 앉는데 "어제 먹은 걸로 또 먹을까?" 한다. 주인장은 새콤하고 시원한 국물에 풍성한 야채와 기름기가 싹 빠진 닭 살코기가 들어가 있으니 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질리지도 않아서 일주일에도 몇번씩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다고 귀띔한다.

주인은 "요새 한달간 KBS 비타민에 나왔던 건강 음식이 초계탕 안에 다 들어가 있더라고요. 아마 비타민 한달편을 묶으면 초계탕 한그릇이 완성될거에요"라고 덧붙였다.

초계탕 다음으로 나오는 것이 메밀막국수다. 여기에도 살얼음이 동동 떠있다. 메밀면이 입안에서 쫀쫀하게 씹힌다. 주인장이 주문 즉시 직접 손으로 밀어서 만든다고 했다. 메밀면은 젓가락 질에도 툭툭 잘 끊어지는 줄 알았는데 이곳 메밀면은 입안에서도 쫄깃쫄깃한 것이 색다르다.

기계로 반죽한 면은 물에 익힐 때 겉에서 안으로 익어가는 반면 손으로 반죽한 면은 속에서 겉으로 익어가서 더 쫄깃하고 맛있는 것이라고 한다. 식사 후 앞 마당으로 나와 잠깐 휴식을 취했다. 앞뜰이 아늑하고 넓어서 다음에는 돗자리를 가지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그늘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아 한나절 쉬어가도 좋을 듯 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서오능'이 있어서 잠시 들렀다. 이 음식점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어서 부담없이 가보기로 했다. 입구에는 노인들이 한가롭게 쉬고 있었다. 길을 따라 산책을 하니 절로 산림욕이 되는 듯 했다. 솔나무 향기, 풀잎향기가 도심의 열기에 지쳐있던 나의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동원 사장님 "음식을 맛있게 드시고는 잘먹었다고 이야기 해주는 분을 만날때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는 것 같다"고 말하는 인상좋은 사장님. ⓒ 이인영

평양초계탕은 7년간의 미국 유학을 마치고 들어와 작년에 오픈한 것이라고 한다. 건축을 전공하다가 자동차로 전환하여 도요타에 입사하기도 했었는데 자신의 길이 아니었는지 금방 그만두게 되었다고.

그 뒤 한국에 들어와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하게 된 것이 초계탕이다. 이 음식점의 운영은 부인과 여동생이 함께 돕고 있다. 개점 첫해였던 작년에는 초계탕이 원래 방을 뜨끈뜨끈하게 해놓고 겨울에 즐겨먹는 별미 음식인지라 겨울에 주력을 했다고.

그러나 얼음이 둥둥 떠있는 찬 음식이다보니 겨울에는 찾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해 겨울은 왜 그리도 길고, 춥던지라며 머쓱하게 웃는 사장. 덩달아 웃음이 났다.

음식점 운영에 가장 큰 숙제라면 바로 물김치 담그기라고. 한번 담글 때 100포기씩 담는데 만들 때마다 '김장김치 잘 담그면 1년이 걱정 없다'고 말하는 주부님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다고 한다.

미국 유학 생활 덕분일까. 입구에는 장애인이나 몸이 불편한 분을 위한 오르막길이 설치되어 있고 화장실도 장애인용이 따로 있다. 덕분에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 업자가 꽤 머리를 싸매야 했다고 한다. 손님 한분 한분을 주님을 모시는 마음으로 대한다는 사장님. 가끔 예의가 없고 이상한 손님 때문에 직원들이 툴툴 거리면 "오늘은 성질 나쁜 주님이 오셨구나"(웃음) 하면서 한바탕 웃어 넘긴다고.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리더스 월드> 7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잡지의 특성상 이와 똑같은 글은 되지 않을 것이지만 저의 마음을 마음껏 펼쳐놓을 수 있는 오마이 뉴스에 먼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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