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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를 '너무 일찍 드는' 사람들

[사진말 (5) 사진에 말을 걸다 20∼24] 잘 쓰던 사진기를 바꾸고 나서

등록|2008.06.21 15:45 수정|2008.06.21 15:45

사진이란사진이란 무엇인가를 늘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날마다 수없이 단추를 눌러대며 사진을 만들었다가는 지우고, 다시 찍으며 또 지우고 하면서, 내가 찍는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되뇌어 봅니다. 길에 누군가 버린 과자봉지를 한 장 담으면서, 이렇게 빈 봉지를 버린 손은 누가 낳아서 누구한테 배운 사람일까를 헤아려 봅니다. ⓒ 최종규


[20] 아직 내 사진이 모자라기 때문에 : 힘들기 때문에 더 힘을 낸다. 고달프기 때문에 더 몸을 추스르려고 한다. 춥기 때문에 추위에 이기려 하고, 덥기 때문에 더위를 견디려 한다. 아직 내 사진이 모자라기 때문에 좀더 낫게 찍으려고 애쓴다. 아직 내 사진은 나만이 세상을 보는 눈이라고 하기에는 어리숙하기 때문에 더 제대로 찍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내 사진이 갈 마지막 길은, 나 혼자만이 보는 모습을 내 눈으로만 찍는 사진이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즐겁고 마음 가볍게 찍을 수 있는 사진, 누구라도 볼 수 있는 모습을 살뜰히 여기면서 반갑게 찍을 수 있는 사진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인삼보다는 밥과 같은 사진으로 다가설 수 있도록, 그랜저도 아니지만 티코도 아닌 생활자전거나 두 다리로 다가갈 수 있도록, 눈과 머리와 마음과 몸 모두를 땅에 부대끼고 섞을 수 있는 사진이 되도록 힘을 기울이고 땀을 쏟아야 한다고 느낀다.

필름헌책방을 찍을 때는 늘 필름으로만 찍습니다. 필름값이 만만치 않지요. 그러나, 저는 헌책방을 좋아하기 때문에, 헌책방을 찍으며 들어가는 필름값이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돈이 없어도 더 찍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 최종규


[21] 잘 쓰던 사진기를 바꾸고 나서 : 지난 2005년에 있었던 일.

 잘 쓰던 중형사진기를 바꾸었다. 그 사진기는 렌즈를 하나 새로 장만하면 되었는데, 핫셀이나 마미야라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렌즈였지만, 브로니카 이 모델은 마땅한 렌즈 하나 찾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이러던 가운데 그만 다른 기계하고 바꾼다. 다른 기계에는 세 가지 렌즈가 있어서.

 무게는 예전 것보다 무겁다. 상표는 같으나 다루는 법이 달라 익숙하지 않다. 렌즈는 세 가지가 있어서 좋으나, 손에 익지 않은 무거운 사진기로는 내 사진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찍고 또 찍으면 익숙해지겠지, 생각하면서 들고 다니는데, 이 녀석 무게만 해도 대단하므로 다른 장비를 들고 자전거를 몰기에 무척 벅차다. 한 번 두 번 집에 놓고 다니다가 아예 방 한쪽 구석에 처박고 만다.

 한 달쯤 뒤, 새로 쓰려고 했던 중형사진기 다루는 법조차 잊어 버린다. 그러고 한참 뒤, 아무래도 처음 쓰던 사진기를 다시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이래저래 알아본다. 그렇지만 내 손에 익었던 그 사진기는 벌써 다른 사람 손으로 넘어가고 난 다음.

 나는 바보처럼 내 손에 익은 사진기를 떠나 보냈을 뿐 아니라, 내 손에 익지 않은 사진기를, 더욱이 겉보기로는 좀더 멋스러워 보인다고 하는 녀석을 손에 쥐면서 아무 사진도 못 찍게 되고 만 셈이다.

 사진기도 잃고 사진도 잃고 사진기를 다루며 사진에 담아내던 내 마음마저 잃어버렸다.

사진찍기 놀이사진찍기는 놀이라고 느낍니다. 놀이가 일이 되고, 일이 삶이 되며, 삶이 예술로 거듭나면서 꽃이 핀다고 느낍니다. ⓒ 최종규


[22] 사진기를 너무 일찍 든다 : 사진 찍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사진기를 너무 일찍 든다. 하긴, 처음부터 장비를 너무 일찍 사 버리지. 그때그때 놓치지 않고 찍어야 할 모습이 있지만, 사진을 찍으면서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흘려보낼지를 생각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찍는 사람이 참 많다. 이들은 자기가 찍어 놓고도 어떤 사진이 어느 자리에 알맞게 쓸모가 있는지 모른다. 이것저것 마구 찍기 때문이다.

자기가 찍을 사진, 자기가 즐거울 사진, 나아가 자기가 찍었을 때 자기 사진에 찍힌 사람들도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만한 사진이 아니라, 사진기란 기계를 들고서 폭력을 휘두르는 듯한 느낌이다. 들어야 할 때에는 들어야 하는 사진기이지만, 가방에 넣고 있어야 할 때에는 눈에 뜨이지 않게 넣어 두어야 할 사진기이다.

사진과 사진한 번 찍은 사진은 어떻게든 세상일을 적바림해 놓는 셈이 될까요. 잘 찍었든 못 찍었든? 옳게 찍었든 거짓을 비틀어서 찍었든? 제 스스로 일고여덟 해 앞서 찍은 사진을 슬쩍 사진에 담아 보면서, 내가 찍은 사진은 무엇을 적바림하고 있는지를 돌아봅니다. ⓒ 최종규


[23] 사진 장수가 중요한가? : 사진을 500장 실어야 좋은 사진책일까? 그러면 1000장 싣는 사진책이 훨씬 좋은 사진책이리라. 만 장을 실으면 더 훌륭한 사진책일 테고. 사진책에 실리는 사진은 100장이 될 수도 있지만 50장이 될 수 있고, 스무 장이나 열 장이 될 수 있다. 한 장만 실리면 어떠랴? 한 장도 없으면 어떠랴? 사진을 한 장도 싣지 않고도 ‘사진을 말하는 책’을 꾸밀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사진을 어떤 쓸모에 알맞게 쓸지를 헤아려야 한다. 때로는 한 가지를 이야기하며 사진 열 장을 쓸 수 있고, 자리에 따라서는 열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사진 한두 장만 쓸 수 있다.

 사진책을 볼 때나, 사진 전시회에 갈 때 이런 대목을 생각하면 좋겠다. 우리 마음을 울리는 사진이 제대로 들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때그때 알맞는 사진이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사진 아닌 것’으로 ‘사진으로 보여주지 못한 것’을 메꾸려고 해서도 안 되지만, 알맹이나 할 말도 없으면서 사진만 무턱대고 잔뜩 보여주려고 해서도 안 된다.

자전거 사진자전거를 달리면서 사진을 찍을 때는 아슬아슬하다고도 합니다. 한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한손으로 사진기를 드니 그렇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한손타기를 익혀서 한손으로 사진기를 찍도록 몸을 다스릴 줄 안다면, 그렇게까지 아슬아슬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타고 신문배달을 오랫동안 해 온 덕분에 어렵지 않게 한손타기와 한손찍기를 합니다. (사진 : 수원발바리. 2007.8.) ⓒ 최종규


[24] 헌책방에서 사람 찍기 1 : ‘사람’을 찍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헌책방을 오가는 사람, 헌책방에서 일하는 사람을 찍으라는 말을 들었다. 늘 헌책방 둘레 사람을 사진으로 담는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언짢게 들릴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그동안 내가 찍어 온 ‘헌책방 사람들 모습’이 어딘가 엉성하고 제 모습을 올바르게 담아내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요즘은 이 말을 곰곰히 머리에 새기면서 손을 놀려 본다. 그런데 느낌이 잘 잡히지 않는다. 아무렴. 하루아침에 잡힐 느낌이었다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빼어난 사진가가 되지 않았겠는가? 아니, 모르지. 이렇게 헤매고 떠도는 가운데 자기 사진을 찾아낸다면 그때 비로소 빼어난 사진가가 될는지도. 그렇지만 이런 대목이야 뭐가 중요한가? 나는 내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면 된다. 헌책방을 즐겨찾는 책손 가운데 하나로 나를 느끼고, 헌책방을 즐겨찾는 다른 사람들을 내 이웃이자 책벗으로 부대끼면서 이 사람들 모습과 자취를 가만히 사진에 담아낼 수 있어야지.

 사진에 사람 모습이 담겨야만 ‘사람을 찍은 헌책방 사진’이 아니라고 느낀다. 책 든 손이 보이고 책 찾는 얼굴이 담기며 책 앞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모습만이 ‘헌책방에 온 사람 모습 사진’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헌책방에는 헌책방에서만 찾아보고 느낄 수 있는 사람 모습이 있다. 그러니까, 나는 아직 이 모습이 무엇인가를 내 몸으로도, 눈으로도, 마음으로도, 손길로도 못 느꼈다는 이야기이다. 여태까지는 껍데기만 혀로 핥았다는 이야기지.

느끼는 손길헌책방 책시렁 한켠에 올려놓은 ‘손으로 만든 종이꽃’을 보면서, 이 종이꽃을 손수 만든 헌책방 집 따님을 만나보지 않았더라도, 그분 손길과 느낌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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