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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함' 보다 '막돼먹음'이 더 끌리는 이유

시즌 4가 기대되는 tvN의 <막돼먹은 영애씨>

등록|2008.06.22 17:49 수정|2008.06.23 11:30

▲ '막돼먹은 영애씨'의 캐릭터들 ⓒ tvn


SBS의 <달콤한 나의 도시>는 한국판 <섹스앤더시티>라고 불릴 만큼 젊은층에 반향이 크고, 공감이 더해지는 드라마다. 하지만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너무 잘생긴 그리고 예쁜 배우들, 그리고 너무 세련되고 색감좋은 화면들. 왠지 모를 판타지가 화면에 묻어나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본다.

그렇다면 조금 더 현실적이고, 조금 더 공감가는 드라마는 있을까? 있다. 얼마 전 시즌 3가 막을 내린 tvN의 <막돼먹은 영애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특히 시즌 3의 마지막회에선 '막돼먹은 영애씨' 특유의 매력이 마음껏 발산됐다.

▲ '막돼먹은 영애씨'의 영애씨 ⓒ tvn


사람 사는 냄새나는 '영애씨'의 일상

장면 하나, 알아주길 바라는 사람의 심리.
생일 언저리쯤 되면 사람들은 일종의 '기대감'을 품게 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위에서 챙겨주길 바라는 심리가 있나보다. 하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 채, 여느 날과 다름없이 흐른다면 내색하지 않더라도 섭섭한 건 어쩔 수 없다.

영애씨는 밤새 주위 사람들에게 술 주정을 한다. 그리고 다음 날 술 주정한게 쪽팔려서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다. 그런 영애씨,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회사 사람들에게 딱 걸려서 회사로 직행하고 '억지 춘향'식 생일 파티를 얼렁뚱땅 치른다. 그래도 어쩌랴, 이렇게라도 챙겨주는 게 못내 좋은 걸.

장면 둘, 다 커버린 딸(영애씨)이 못내 섭섭한 아버지.
딸이 사귀는 남자가 있다는 사실을 안 아버지. 딸에게 은근슬쩍 말을 꺼내보지만, 돌아오는 건 짜증 밖에 없다. 엄마한테 시달리는 딸의 입장을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명예퇴직한 가장으로서 위신도 잘 안 서는데, 딸까지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만 같은 기분도 들고.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만 같아 못내 섭섭하다.

고기를 사온 날, 딸에게 먹으러 오라고 전화했지만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짜증섞인 목소리, 딸에게 있어서 부모란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들기도 한다. 그래도 어쩌랴. 금쪽 같은 내 딸인 걸.

장면 셋, 미니홈피와 문자질의 유치함. 헤어진 옛 애인의 미니홈피에 몰래 들어가보지 않은 사람 없고, 문자 소리에 설렜다가 스팸임을 확인하고 핸드폰을 안 던져본 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젊은층의 삶에 미니홈피와 문자질은 빼놓을 수 없는, 그들을 구성하는 키워드다. 이것을 표현하는 <막돼먹은 영애씨>는 그 행태를 참 소심하게 그린다.

양양은 영애씨와 원준이 사귀는 게 못내 배아파 영애씨의 굴욕사진을 올려 놀려먹는데 미니홈피를 사용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재미있어 한다. 지순은 원준에게 맞은 것이 배아파서 보약 한재를 지어서 원준에게 약값을 달라고 조르고, 원준이 모른척하자 문자질로 원준을 협박한다. 지지리 궁상같은 이런 이야기, 하지만 우리도 이러고 산다.

마지막 회에 나온 세 장면만 보더라도 드라마에서 찾아보기 힘든 우리 사는 이야기가 녹아있다. 소심하고, 궁상맞아서 속터질 수도 있지만 그 속에 끈끈하고, 부드러운 사람사는 냄새가 녹아있는 게 바로 <막돼먹은 영애씨>다.

엔딩 부분 내레이션, 공감백배

'쓰디쓴 좌절의 순간'. 지순이 양양과 한참 영애씨와 원준씨의 뒷담화를 하고 있을 때, 주책바가지 지순이 양양에게 영화를 보자며 작업을 시도한다. 그 때 양양의 한마디. "제가 미쳤어요. 왜 정대리님이랑 영화를 봐요?" 이러나 저러나 슬픈 지순이다.

'용납할 수 없는 일도 용서한다'. 엄마의 남자관계를 용납할 수 없었던, 용납하기 싫었던 혁규. 오랜만에 찾아간 집에서 어렸을 적 앨범을 보면서 자신은 얼마나 엄마를 이해하려 했는지 반문해본다. 세상사는 일, 용납할 수 없는 일도 때론 용서하는 것이다.

'가슴 아픈 이별'. 사랑하는 서현과 지원. 서로 가진 것 없고, 서로에게 비전없는 사랑을 그만두고 둘에게 맞는 상대를 찾았는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조건이 좋은 것과 사랑하는 것이 따로 노는 것이 인지상정. 거기에 매일 얼굴보는 사이니 마음 정리가 쉬운 게 아니다. 가슴 아픈 이별의 장면, 서로에 대한 애절함이 깊어지지만 어느 새 서로에게 상대가 있음을 인정한다. 아, 세상은 사랑만으론 안 되는 게 많다.

'나만의 비밀'. 누구나 나만의 비밀은 있는 것. 드라마라면 대단한 것이 나올 법한데. 은실의 비밀은 다름 아닌 술집 접대부였다는 사실. 첫사랑이었던 서현과 평범한 삶을 꿈꾸지만 갈피를 못잡는 서현의 마음에 속상해 담배를 꺼내다 다시 서랍에 넣는 은실. <막돼먹은 영애씨>의 비밀은 그렇게 그려진다.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3가 끝날 무렵 브라운관을 탄 4개의 내레이션. <막돼먹은 영애씨>는 위트있는, 센스있는 인간극장을 보는 것 같다. 이런 내레이션이 있기에.

영애씨와 원준의 결혼에 대한 고민

영애씨는 원준과 사랑한다. 원준은 꽃미남이지만 나이가 어리고, 사회적인 능력이 부족하다. 모아논 돈이 있지도 않을 뿐더러 망한 재벌집 도련님이기에 생활력도 약하다. 다 좋은 그들은 두 가지 벽에 부딪힌다.

"왜 나이 많고 뚱뚱한 영애씨와 꽃미남 원준은 사귈까?"
"영애씨는 결혼을 빨리 해야할 나인데."

첫 번째 물음에 대해선 둘은 연애하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는 방법을 택한다. 남들에게 알리지 않음으로써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어쩔 수 없지만.

문제는 두 번째 물음이다. 원준은 영애씨가 하루 빨리 결혼하고 싶어한다는 마음을 알지만 가진 것 없고, 능력 없는 자기에게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고, 영애씨는 그런 원준이 한 편으론 야속하고 한편으론 답답하다.

결국 '결혼'이란 제도에 둘의 사랑이 벽에 부딪혔다. 이렇듯 요즘 사회는 둘의 사랑의 귀결이 '결혼'이 아니라, 남녀 문제의 시발점이 '결혼'이다. 젊은층 어느 커플이나 공감하는 결혼 문제, 부모의 압박과 잔소리 그리고 둘의 사랑만으로 살아가기엔 너무 험난한 세상이 <막돼먹은 영애씨>에 그대로 표현된다.

▲ '막돼먹은 영애씨'의 영애씨 ⓒ tvn


기대되는 시즌4

영애씨의 이름은 이영애. 그리고 시즌 4에는 영애씨네 회사에 장동건이라는 신입 사원이 들어온다. 이제까지 <막돼먹은 영애씨>를 봤을 때 장동건 역시 사회의 인식이나 편견을 깨는 촉매제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이처럼 <막돼먹은 영애씨>는 사회에서 들이대는 잣대와 편견들을 일상생활에 접목시켜 깨고,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제 <막돼먹은 영애씨>의 시즌4는 쓰러진 영애씨 아버지를 통해 가족의 의미에 대해 좀 더 짚어보고, 혁규의 고군분투 취업기가 기대되며, 결혼적령기 남녀의 선택이 '사랑'이 될지, '조건'이 될지를 표현해줄 것이다.

9월 5일, 막돼먹은 영애씨가 컴백하는 날. 오늘도 고군분투 살아가는 영애씨가 불러일으켰던 '공감'의 크기가 몇 배는 더 커진 채 우리 곁으로 다가오길 빌겠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casto와 푸타파타의 세상바라보기(http://blog.daum.net/cast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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