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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의회 의장은 '호텔합숙'으로 뽑는다

[광주시의회 해부①] 초등학교 반장선거보다 못한 시의회 의장 선거

등록|2008.06.24 10:16 수정|2008.06.24 10:16
오는 7월 11일 제5대 광주광역시의회가 후반기 의장 선출과 함께 원 구성을 시작합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5대 광주시의회 전반기 활동에 대한 평가를 통해 후반기 의회가 나갈 방향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기획기사를 보도할 예정입니다. 입장과 견해에 상관없이 관심 있는 분들의 기고는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편집자주>

▲ 오는 7월 11일 제5대 광주시의회 후반기 원 구성을 앞두고 의장선거 개혁을 요구하는 안팎의 목소리가 높다. ⓒ 이주빈



후보자 등록도 하지 않는다. 공약도 없다. 후보자 간 정책토론회는 더더욱 없다. 광주광역시의회가 의장을 뽑는 방식이다. 이런 의장 선거를 언제까지 해야 할까.

오는 7월 11일, 5대 광주광역시의회는 후반기 의장을 선출한다. 언론과 의회 주변에서 거론되는 후보는 전반기 의장이었던 강박원 의원을 비롯 나종천·유재신·이정남 의원 등 모두 4명에 이른다.

거론되고 있는 후보는 이렇듯 4명이지만 법적으론 19명인 광주광역시 의원 모두가 잠정적인 후보다. 법적으로 후보등록 절차가 따로 있지 않기 때문이다.

후보자 등록도, 공약도, 정책토론도 없는 3무(無) 선거

지방자치법 48조는 지방의회 선거를 '무기명 투표'로 명문화하고 있다. 이른바 '교황식 선출방식'의 법적 근거인 셈이다. 행정안전부의 한 관계자는 "후보자의 사전등록과 정견발표나 토론은 경선에 해당됨으로 무기명 투표에서는 할 수 없다"고 해석한다.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후보등록을 하지 않으니 "내가 의장이 되면 이렇게 하겠다"는 정책과 공약은 당연히 없다. 정책대결이 사라진 자리엔 의원간의 자리 나눠먹기와 합종연횡만이 횡행할 뿐이다. 이 때문에 광주광역시의회를 비롯한 많은 지방의회가 의장 선거 때마다 입방아 오르고 있다.

그러나 일부 지방의회에서는 '회의 규칙 일부 개정안' 등을 통과시켜 사실상 후보등록제에 준하는 의장 선거를 실시하고 있다. 광역의회로는 유일하게 부산광역시의회가 사실상 후보등록제에 의한 의장선거를 실시하고 있고, 경남도의회도 오는 7월 4일 치러지는 8대 후반기 의장선거부터 후보 등록제를 실시키로 했다. 또 경기도의회 등에서는 의장단 선출을 위한 공개토론회를 개최해 후보자간 실질적 공약점검과 토론을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는 법적인 한계와 제약이 있지만 지방의회 스스로가 참된 자치를 실현하기 위해 실천할 수 있는 개혁과 변화의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다시 광주광역시의회로 돌아가 보자.

"산술적으로 따져서 계산이 딱 나오잖는가. 19명 중 10명만 잡으면 끝난다. 그 10명 중 7명은 의장단·상임위원장 등 자리로 거래하고 3명은 알아서 구워삶으면 자신이 의장이 되는 거다. 그러니까 호텔 잡아놓고 자기 표 못 도망가게 합숙하는 거지."

한 전직 광주시의원의 말이다. "표 못 도망가게 합숙했다"는 그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4대 의장 선거 때도, 5대 전반기 의장 선거 때도 광주시의회 의원들은 스포츠 선수들처럼 '합숙'을 했다. 물론 지지성향이 같은 의원들끼리.

이렇게 합숙까지 불사하며 의장 선거를 치르고 난 후과는 분열과 갈등이다. 지난 2006년 8월 24일 광주지방법원은 광주시의회에 '화해 권고문'을 냈다. 한밤중에 치러진 의장선거가 무효라고 주장하는 비주류 측과 이에 맞서는 주류 측의 갈등이 법정으로까지 비화됐던 것이다.

조율과 조정을 운영의 기본원리로 삼아야 할 의회가 스스로 조율과 조정에 실패해 사법적 판단해 의탁했다는 것만으로 치욕스런 사건이었다.

시민사회단체 공개질의에 대답한 시의원은 단 두 명뿐

▲ 유재신 의원은 동료의원 세 명과 함께 의장선거 개혁을 주내용으로 하는 의안을 제출했다. ⓒ 이주빈

보다 못한 광주YMCA와 광주경실련 등 광주지역 시민사회가 나섰다.

지난 17일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시의회가 거듭나고 차기 의장선거가 민주적으로 치러져야 한다"며 의회 운영방안과 지역현안에 대한 입장을 묻는 공개질의서를 시의원 19명 전원에게 보냈다. 그러나 마감시한인 22일까지 시민사회의 공개질의에 대답한 의원은 단 두 명뿐이었다.

시민사회의 의회 공개질의를 담당하고 있는 윤봉란 광주YMCA 간사는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히 현행 지방자치법에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동안 시의장 선출과정에 더 큰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바꾸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시의원들에게 '실제적 의지'가 없는 것 같다. 물밑에서 자리 나눠먹기 하는 데 너무 익숙해한 것 같다."

윤 간사는 "의원 개개인이 이미 기관인데 자기 입장도 없는 의원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며 개탄했다.

작지만 의회 내부에서도 의장선거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유재신 의원은 "지방자치법이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의회 차원에서 의장선거 방식의 개선과 변화를 위한 적극적이고 상징적인 노력은 할 수 있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유 의원은 23일 동료 의원 세 명과 함께 시의회에 '광주시의회 회의규칙 일부개정 규칙안'을 제출했다. 법적 제약을 운운하기 전에 시의회가 능동성을 발휘해보자는 취지다.

의장 선거 후보자 등록과 정견발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이 의안은 ▲의장선거 후보자는 선거일 2일 전까지 의회사무처에 서면으로 후보자 등록을 하고 ▲후보자 등록을 한 의원에 한해 피선거권을 갖도록 하며 ▲후보자 등록을 한 의원은 선거 당일 본회의장에서 10분 이내의 정견을 발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앞서 유 의원은 ▲5대 의회 전반기에 대한 평가 ▲하반기 의회의 정책과제 ▲집행부와 의회의 관계 정립 등을 주제로 공개토론을 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광주경실련 집행위부위원장인 정찬영 조선대 교수는 "국회가 하루빨리 지방자치법을 개정해 지방의회가 선거다운 선거를 할 수 있도록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 교수는 "그렇다고 시의원들이 법을 핑계 삼아 초등학교 반장선거보다 못한 '호텔 합숙'과 '자리 나눠 먹기'로 시민의 대의기관인 의회 의장을 선출한다는 것은 광주시민에 대한 모욕이자 도발"이라고 경고했다.

5대 광주시의회 후반기 원 구성에서는 '호텔합숙'으로 선출된 시의회 의장을 다시 보지 않을 수 있을까. 김기홍 광주경실련 정책부장의 다음과 같은 자조 섞인 물음에 광주시의원들이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그 답이 달려 있다.

"스스로 파행의 길로 가는 광주시의회를 시민사회가 나서서 강제로 자정시켜야 하나? 그렇다면 또 시민사회는 무슨 권한으로 시의회를 조정과 자정시킬 수 있나? 만약 이렇게 시민사회의 시의회에 대한 개입이 일상화된다면 이를 건전한 관계라고 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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