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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울리는 바람 소리'에 한껏 빠져들다

[인터뷰] 오카리나 연주가 지석용씨

등록|2008.06.23 17:53 수정|2008.06.23 17:53

▲ 오카리나를 연주하고 있는 지석용씨 ⓒ 황원종

누가 '오카리나'를 "영혼을 울리는 바람의 소리"와 같다고 했던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맑고 깊은 소리는 영혼을 자극할 만큼 신비롭게 느껴진다. 외국의 한 음악가는 "날아다니는 풀벌레들을 모여들게 하는 불가사의한 소리"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근 이런 오카리나의 매력에 푹 빠진 마니아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 국내에 알려진 지 10여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크고 작은 음악회나 행사장에서 오카리나를 연주하는 모습을 자주 접하게 된다.

오카리나 애호가들을 중심으로 전국 또는 지역 단위 동호회가 속속 생겨나고 있으며 협회나 문화센터에서는 강좌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웬만한 가정에서 악기 한두 개쯤은 갖고 있을 정도로 오카리나 저변이 든든해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악기 값이 싸고 배우기 쉬우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카리나의 저변이 확대된 것은 보급에 앞장선 전도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불모지를 탐험하는 개척자들은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설렘에 자신도 모르게 발길을 옮긴다고 한다. 지석용(36)씨도 마찬가지다. '오카리나'라는 말 자체가 낯선 시절, 지씨는 오카리나와 운명적으로 만났다.

지씨가 처음 오카리나를 접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에 다니던 1989년도다. 한창 음악의 매력에 빠져 음대생을 꿈꾸던 지씨에게 청아하고 소박한 음색의 오카리나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자그마한 악기가 그렇게 맑은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그때 실감했죠. 처음 오카리나를 보고 나서부터는 머릿속에 계속 맴돌아 다른 일은 손에 잡히질 않을 정도였어요."

지씨는 오카리나와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오카리나가 지닌 마력적인 음색에 푹 빠져버린 것이다.

오카리나의 기원은 신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지금 우리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양은 1853년 이탈리아 출신의 주세페 도나티(Giuseppe Donati)에 의해 만들어졌다. 당시 그 모양이 '어린 거위'와 같다고 하여 이탈리아어로 오카리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후 유럽인과 유럽을 찾은 여행객들이 오카리나를 갖고 세계 곳곳을 다니며 악기를 전하게 되어 오늘날 우리의 손에서 단아한 음색을 뽐내게 된 것이다.

오카리나가 이렇게 널리 퍼지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은 타 악기에 비해 초보자가 배우기 용이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호기심 삼아, 취미 삼아 오카리나를 배우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배움이 더 해 갈수록 오카리나의 음색을 자신의 뜻대로 다루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오카리나 연주하는데 악기는 30이고 나, 즉 연주자가 70의 역할을 담당하죠. 그만큼 연주자가 중심이 돼서 음을 조율하고 곡의 다양한 느낌을 이해해 자신만의 감정을 표현해야 하기에 겉으론 쉬워보여도 그 속을 알고 나면 여느 악기보다 더 연주가 어렵다고 할 수 있죠."

또 오카리나는 그 크기가 작아 휴대가 편하며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이는 대중성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지씨는 "요즘 오카리나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 주변에서 오카리나를 연주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며 "인터넷 쇼핑몰을 살펴보면 오카리나를 판매하는 업체의 수가 급증했고 더불어 가격도 저렴해져 요즘같이 '1인 1악기'를 요구하는 시대적 시류에 맞춰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오카리나는 대중악기라 해도 무방하다. 지씨가 1년에 연주회를 펼치는 횟수만 해도 40여회에 이른다고 한다. 평일에는 서울과 원주를 오가며 학생들에게 오카리나 강습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만큼 오카리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많아졌음을 알 수 있다.

또 매년 여름과 겨울에는 오카리나 캠프를 진행하는데 참가자 수가 많아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고. 오카리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올 8월에도 캠프가 열릴 예정이며 오카리나 연주 강습만이 아니라 오카리나 만들기, 천체관측, 농촌체험 등 자연과의 만남도 주선할 예정이다.

현재 지씨는 '토아공방'(횡성군 청일면 유동리)이라는 개인 오카리나 연습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단지 연습 공간만이 아닌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생활하는 거주 공간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지내다 횡성으로 내려오기를 결심하며 다짐한 게 내 집은 내 손으로 지어야겠다는 것이었죠. 따로 건축 기술을 배운 것은 아니지만 저와 아내와 아이들이 살 공간인데 제 손으로 만들고 싶더라고요. 역시나 경험과 기술이 부족해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아직까지 무너지지 않고 우리 네 식구 잘 보살펴주니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아내·아이들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더불어 음악을 향한 자신의 꿈을 키우며, 더 나아가 미래의 인재를 양성하는 의미 있는 공간을 손수 지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큰 자부심으로 남아있다.

어디든 오카리나 연주를 원하는 곳이 있으면 한달음에 달려간다는 지씨. 도시든 숲이든, 유료든 무료든 그에겐 공간과 돈은 중요치 않다고 한다. 다만 자신의 연주를 통해 청중들이 즐거워하고 또한 이를 매개로 오카리나가 좀더 대중에게 알려진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단다. 특히 지 씨에게는 매년 여름 가평에서 열리는 '달빛 음악회'가 남다른 행사라고 했다.

"'꽃무지 풀무지'라는 수목원에서 보름달이 뜰 때쯤 열리는 음악회인데 환하게 뜬 보름달을 보며 오카리나를 연주하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하죠. 연주하는 저나 듣는 청중들이나 모두가 오카리나라는 매개체를 통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제겐 무척이나 행복한 시간들입니다."

그의 말처럼 악기를 연주하는 그에게 자신의 음악을 귀담아 듣고 손뼉이 부스러지도록 열렬히 응원해 주는 관객이야말로 가장 큰 힘이자 무기인 셈이다.

지씨의 앞으로 계획은 횡성과 가까운 원주에 오카리나 연주단체를 만들어 다양한 연주활동을 펼치는 것이다. 더불어 그의 소망은 "손수 지은 제 집 앞마당에서 해마다 정기 음악회를 열어 지인들은 물론이고 가까운 이웃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음악은 단지 개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연주하는 이유가 바로 듣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고 음악을 듣는 이유도 그들의 심금을 울리는 연주가와 악기의 하모니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음악을 귀담아 들어줄 관객이 있는 한 지씨의 오카리나는 끝없이 그 청아한 소리의 자태를 뽐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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