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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출범 4개월만에 국정홍보처 부활?

'편법' 동원해 홍보기획관 신설... 청와대 내 최대 조직

등록|2008.06.23 20:52 수정|2008.06.23 20:52

▲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기획조정분과 간사로 활동했던 박형준 전 의원. ⓒ 오마이뉴스


이명박 대통령이 정부 출범 당시 개혁 대상 '1순위'로 꼽아 폐지했던 참여정부의 국정홍보처를 사실상 부활시켰다.

청와대는 23일 박형준 전 한나라당 의원을 홍보기획관에 내정했다고 밝혔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박 전 의원을 홍보기획관에 내정했고, 금명간 공식 임명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동아대 교수 출신인 박 전 의원은 한나라당 내 손꼽히는 전략가로 통한다. 지난해 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명박 캠프 대변인과 당 대변인을 거쳐 대통령직인수위 기획조정분과위원 등을 역임했다. 그러나 4·9총선 당시 부산 수영에서 재선을 노렸다가 낙선했다.

홍보기획관은 애초 청와대 조직에 없던 직제이며 신설의 법적 근거가 명확치 않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우병 쇠고기' 파동을 거치면서 대국민 홍보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신설한 것. 국민에게 국정을 보다 정확히 알리고, 신속하게 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특히 홍보기획관은 수석비서관급의 지위에 해당할 뿐 아니라 4명의 비서관을 두는 등 기능이나 규모도 청와대 내에서 가장 클 것으로 보여, 정부 내에서 사실상 폐지된 국정홍보처의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홍보기획관은 이번 조직개편으로 청와대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가 별도의 사무실을 운영하게 될 민정수석실이 있던 자리에 둥지를 틀게 됐다.

특보·수석... 고민하다가 '기획관' 낙점

애초 청와대는 홍보기획관이 아니라 홍보특보나 홍보수석을 두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특보직은 비상근직인데다가 수석비서관 회의에 들어오는 것이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점 때문에 폐기했다고 한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특보는 비상근직이며 월급이 나오지 않고, 밑에 비서관을 둘 수도 없어 주로 (현안에 대해) 자문·조언 역할을 하는 원로급 인사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홍보수석을 새로 만드는 방안 역시 여의치 않았다. 홍보수석을 새로 만들기 위해서는 대통령령을 고쳐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내세웠던 '작은 청와대'를 역행한다는 점에서 명분이 발목을 잡은 것.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홍보기획관을 신설한 것은) 대통령령을 고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비서관을 수석비서관으로 예우하는 방안"이라며 "박 홍보기획관은 사실상 수석비서관급으로 수석회의에도 참석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특보를 둘 것인가, 수석 자리를 새로 만들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다가, 수석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령을 고쳐야 하기 때문에 복잡했다"며 "그렇다고 특보는 밑에 비서관을 두는 것은 비상근이어서 안 되고, 그러다 보니 머리를 굴려서 기획관이라는 자리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형준 내정자 역시 이날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실에는) 비서관을 둘 수 있지 않나, 수석급 비서관을 두는 것이고, 이름만 기획관으로 했다"고 말했다. 직제에도 없는 홍보기획관을 신설하면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취하기 위해 '편법'을 동원한 셈이다.

대변인실 업무도 이관... 신재민 차관과 업무 충돌?

▲ 참여정부 국정홍보처의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방안>에 따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 1층에 마련된 합동브리핑센터 내 기사송고실. ⓒ 권우성


신설되는 홍보기획관은 홍보1, 홍보2, 국민소통비서관, 연설기록비서관 등 4명의 비서관을 거느리게 된다. 이동관 대변인은 "기존의 홍보기획실에서 하는 일을 확대 강화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 추진되고 있는 직제 개편에 따르면 그 규모는 훨씬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홍보1'은 대통령 PI(President Identity)에서부터 국정홍보 기획까지를 아우르게 된다. 기존의 정무수석실 산하에 있던 홍보기획 업무를 가져오는 것이다. '홍보2'는 각 정부부처 별 국정홍보 업무 조정 기능을 맡는다.

'국민소통비서관'은 인터넷, 뉴미디어를 담당하며 인터넷상의 여론 수렴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대통령실장 직속으로 있던 연설기록비서관의 업무도 가져와 대통령의 메시지를 직접 관리한다.

이동관 대변인이 담당하던 언론 관련 정책 기능도 일부 이관될 것으로 보인다. 박형준 내정자는 "그동안 국정홍보 기능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원래 비어 있던 공간을 우리가 채워나가게 될 것"이라며 "지금까지 대변인실이 가지고 있던 홍보수석 기능도 이제 우리에게 떼어주게 된다"고 말했다.

또 대변인실 직원이 약 36명 정도인데, 이와는 별도로 홍보기획관은 더 많은 숫자의 직원들을 거느리게 된다. 박형준 내정자는 "연설기록비서관실 직원이 좀 많아서, (대변인실보다) 직원이 많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문광부 언론정책과 국정홍보처에서 흡수된 국정홍보지원 업무를 관장해 온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과의 업무 충돌도 예상된다. 박 내정자는 "그쪽은 그쪽대로 하고, 청와대는 조정 기능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신재민 차관이 사실상 '정부 대변인'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향후 박 내정자와의 역할 분담이 주목된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홍보기획관이 참여정부의 국정홍보처가 했던 역할을 해 주길 은근히 기대하는 분위기다. 촛불집회가 절정에 달했던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한 비서관은 "(새 정부 들어 폐지된) 국정홍보처도 나름의 기능이 있는 것인데, 그걸 몰랐다"면서 "없애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사석에서 국정홍보처를 폐지한 것에 대해 후회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규 직원만 188명에 달했던 참여정부의 국정홍보처에 비춰볼 때 홍보기획관의 규모는 아직 왜소해 보인다. 그러나 '촛불'에 데인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향후 실무 인력이 계속 보강될 수밖에 없다.

한편 '사실상 국정홍보처의 부활이 아니냐'는 질문에 박형준 내정자는 "국정홍보처가 아니라 국정홍보 기능을 하는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기자실 폐쇄 항의지난해 10월 12일 오전 10시께 통일부와 외교부 기자들이 기자실 출입문 폐쇄에 항의해 정부종합청사 7층에 있는 국정홍보처장실을 항의방문했다. 기자실 폐쇄에 항의하는 기자와 이를 취재하는 기자 등 50여 명이 엉켜 복도가 상당히 혼잡스러웠다. ⓒ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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