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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광고, 쫌~! 마~!

케이블 TV를 점령한 대출광고, 규제가 필요하지 않나?

등록|2008.06.24 08:49 수정|2008.06.24 08:49
우연히 TV로 야구 중계를 보는데, 하필 내가 응원했던 팀의 타자가 홈런을 치는 바람에 그 이후로 야구에 빠져버린 나. 그 이후로 요즘은 같은 팀을 응원하는 아버지와 함께 밤마다 야구 중계를 보는 재미에 빠졌다.
그런데 야구 중계를 보다가 짜증나는 때가 있다. 바로 공수교대 시간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온갖 짜증이 몰아치는 이유는 이 시간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대부업체 광고 때문이다.

케이블TV를 점령한 광고들, 도대체 방송은 언제 시작하지?

나는 공중파 방송보다 케이블TV의 방송을 더 많이 본다. 원래 TV를 잘 보지 않는 것도 있지만, 각 채널의 특성에 맞게 프로그램이 편성된 케이블TV가 내 취향에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나 외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내게 공중파보다 케이블TV가 더 끌리는 건 당연하다. 최근에는 야구 중계까지도 나의 케이블TV 시청을 돕고 있다.

하지만 케이블TV를 보면서 내 시청습관은 완전히 바뀌었다. 한 채널을 오래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광고 때문에 나도 모르게 다른 채널의 프로그램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우연히 꼭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보게 됐을 경우는 아예 어금니 꽉 깨물고(!) 광고까지 전부 다 본다. 얼마 전에는 광고가 언제 끝날지 몰라 처음부터 보고 있다가 10분 이상을 광고만 본 적도 있다.

하지만 방송사의 입장에서 이런 광고들은 필요하다. 물론 TV를 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보기 싫지만, 방송사 운영에서 광고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이 적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광고가 나오는 것이니깐. 그래서 광고가 나와도 어느 정도는 꾹 참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부업체 광고는 도저히 참고 볼 수가 없다.

광고의 지존? 대부업체 광고!

대부업체 광고는 케이블TV를 점령한 광고 중에서 '지존'이라 불릴 만하다. 광고 노출 횟수, 광고를 하는 회사의 갯수,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독성이 강한 CM송 때문이다.

위에서 예를 들었던 야구 경기 중계에 대해 다시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겠다. 야구 경기중 공수교대가 이루어질 때면 어김없이 대출 광고 하나가 나온다. 인터넷으로 쉽게 대출을 할 수 있고, 3.3% 할인도 받는다는 이 광고. 화면에는 마우스 포인터가 왔다갔다 하고, 대출을 받지 못해 힘들어하던 한 여성이 이 대부업체 이름을 듣고 클릭하자마자 표정이 밝아지면서 즐거워한다. 바로 대부업체 '마우스론'의 광고이다.

연장전까지 가거나 비가 와서 중단되지 않는 한, 야구는 보통 9회말까지 계속된다. 9회말까지 공수교대는 17번 이루어진다. 이 사이에 투수가 교체되면 그 시간 동안 다시 또 광고가 나간다. 한 이닝에 한 번씩만 광고가 나온다고 해도 무려 8번. 야구 중계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여러 번의 대출 광고에 노출되게 된다.

거기다 사람들이 지겨워하는 건 또 어떻게 아는지, 한 대부업체의 광고만 계속되는 것이 아니다. 굳이 야구중계에 한정짓지 않더라도, 케이블TV를 오래 시청하다 보면 광고를 하는 대부업체의 개수만 해도 10개는 훨씬 넘는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 인터넷 검색엔진에서 '대출 광고'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았다. 화면에는 다섯 개 정도의 회사만 나와 있지만, 이 화면 아래에는 더 많은 회사들의 홈페이지 주소가 링크되어 있다. ⓒ 하지혜


대부업체의 수가 늘면서 자사 광고에 신경을 쓰는 것은 당연하다. 중독성이 강한 CM송도 그런 이유에서 나온 것이리라. 하지만 이건 중독성이 강해도 너무 강하다. 이 기사를 쓰고 있는 지금도 내 머릿속에선 '러시앤캐시', '원캐싱', '마우스론' 등 3가지 정도의 대부업체 CM송이 동시에 지나간다. 단순한 멜로디와 반복되는 가사가 다른 광고의 CM송들보다 더 귀에 잘 들어온다. 오죽했으면, 광고를 본 아이들이 가사의 뜻도 모른 채 CM송을 부르고 있다는 얘기를 인터넷에서 쉽게 볼 수 있을 정도일까.

대출광고, 규제가 필요하지 않나

그런데 대출광고는 중요한 것을 잊고 있다. 대출을 했을 때, 이율이 얼마나 되는지를 전혀 이야기해 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물론 TV 화면 아래쪽에 작은 글씨로 대강의 이율과 관련 정보의 자막을 만들어 주긴 하지만, 전체 영상과 중독성 강한 CM송에 정신을 빼앗기면, 이런 자막은 잘 보이지 않는다.

또 노출횟수도 너무 잦다. 무시할 수 없는 광고수익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노출이 너무 잦다 보면 돈이 필요할 때 자신도 모르게 대부업체 전화번호와 상호를 기억하게 될 수도 있다. 특히 '30일 무이자 혜택' 등과 같은 광고 카피가 있는 경우는 더 심하다.

따라서 일단 각 대부업체의 이율이 어느 정도 되는지 광고에 정확히 명시하게 하는 규제가 필요하다. 자막의 글자도 좀 더 크게, 그리고 잘 보일 수 있게 만들고, 자막뿐만 아니라 CM송에 이율이 어느 정도 되는지 가사를 넣거나, 광고가 끝날 때쯤에 이율이 어느 정도 되는지 소리로 알려주는 등의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노출횟수도 각 회사의 광고 당 하루에 몇 건 혹은 십 몇 건 이하로 제한하는 것도 필요하다. 비단 소비자가 광고를 보고 불쾌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야기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이 부분에 대한 규제는 꼭 이루어져야 한다.

요즘같이 경기가 어려울 때면 등록금과 집세, 그리고 가족 중 누가 아플 경우 드는 병원비 등 돈이 필요한 곳은 더욱 늘어나는 것 같다. 이런 어려운 때에 높은 이율로 서민들을 힘들게 할 수도 있는 대부업체의 광고가 넘쳐나는 걸 보며 씁쓸해지는 건, 그리고 규제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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