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아이들아! 죽지 말아라

스스로 목숨을 버린 군인의 조문을 다녀왔습니다

등록|2008.06.24 18:19 수정|2008.06.24 18:19
조문을 다녀왔습니다. 군대에서 휴가 나와 스스로 목숨을 버린 젊은 군인의 영정 앞에는 국화꽃이 놓여 있었습니다. 덩그러니 혼자 영정을 지키는 부친을 차마 쳐다볼 수 없어 마냥 서 있다가 왔습니다.

저와 동갑인 부친은 "모두 내 탓"이라고 자책하고 있었습니다. 오직 직장생활만 열심해 처자식만 먹여살리면 모든 것이 잘 되리라 믿던 그 분은 아직 자식의 손을 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방송에서는 가혹행위가 있었느니 없었느니, 또는 누가 했느니 죽은 자와 산자를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한쪽에선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어떻게 해야 한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저는 군인 아들을 둔 아버지의 눈으로 영정 속 아이를 봅니다. 죽기로 마음먹고 아파트 난간에 서 있었을 그 아이를 봅니다. 사랑하는 부모 형제, 학창시절의 학우들, 고생을 같이한 동료들…. 수없는 생각을 했겠지요.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요. 순간 아이가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온 가슴이 저립니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살아야 한다"고 자살하는 사람을 두고 사람들은 흔히 말합니다. 또 "다른 방법이 많은데 꼭 죽어야 하느냐"고 합니다.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그렇지만 조금 달리 생각해 봅니다. 사람은 모두 다릅니다. 외부로부터 자극이 올 때 반응하는 현상이 모두 다르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저 웃고 넘어가고, 그냥 소주 한 잔 털어 넣고 참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가슴 아파하기도 하고 심하면 절망하기도 합니다.

나이를 많이 먹다보니, 변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많습니다.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가 여린 소녀의 심성을 간직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아예 모르거나 잊습니다. 상대방이 모두 자기와 같다고 생각하지요.

어떤 군인이, 어떤 가해자가 상대방이 죽을 줄 뻔히 알면서 괴롭혔겠습니까? 자기 식대로, 자기가 경험한 대로, 습득해진 대로 "이 정도는…"하고 그랬겠지요. 지휘관들이 부하사병의 이런 문제에 대해 관심있게 지켜보는 제도도 있겠지요.

죽을 결심을 한 사람은 주위 사람들에게 무언의 표시를 한다고 합니다. 힘들어 하고 괴로워 하는 것을 동료나 상급자는 전혀 인지하지 못 했을까요? 그저 내 일이 아니니까, 내가 당하지 않으니까 방관하지는 않았을까요? 다시는 이런 불행이 없어지길 모든 사람이 희망하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할 까요?

제가 군생활 할 때도 '소원수리'나 '구타금지' 등이 있었지만, 그걸 비웃듯 밤마다  맞았습니다. 그 때도 종종 목숨을 끊는 사고는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토록 말썽 많은 '구타'는 거의 없어졌다고 하는데 대체 어찌 된 일 일까요?

조문을 마치고 정문을 지키는 초병을 봤습니다. 군복을 입고 총은 들었지만 고만고만한 내 아이들이었습니다. 고단했던 수능시험을 거치고도 앞으로 수많은 고난과 역경이 차례대로 기다리고 있는 세상인데 말입니다. 폭력과 고통, 곤궁함과 비탄, 그리고 정의와 현실에서의 갈등 등등. 행복보다는 고통이 인생을 강건하게 한다고 하지만 아이들이 겪을 미래를 생각하니 또 답답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신께 기도를 했습니다.

"당신께서는 자살을 금기하셨지만 너무 불쌍하고 짠합니다. 힘들어 세상 떠난 아이가 또 다시 시험에 들지 않고 이제 당신 사랑의 품으로 안아 주십시오."

그리고 세상의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아이들아 ! 죽진 말아라. 세상이 힘들어도 그래도 죽는 것 보다는 낫다. 제발 죽지 말아라!"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