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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솔'이라고 아나?

쉼터에 감자 50박스가 들어온 이유

등록|2008.06.24 20:13 수정|2008.06.24 21:09
지난 일요일(22일) 아침 일찍 택배회사로부터 감자 50박스를 가져왔으니, 수령하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감자 50박스라니? 뜬금없는 소리였지만, 대체 누가 보냈을까 하는 궁금증이 더해졌습니다. 그 궁금증에 쉼터에 도착하기에 앞서 감자 박스를 날랐다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 봤습니다. 감자 박스 옆면에 여주감자라고 쓰여 있다고 했습니다.

혹시 우리 쉼터에서 지난 8주 동안 이천 여주지역 이주노동자 고용주를 위한 베트남어, 태국어 강의와 문화이해강의를 해 준 데 대해 누군가 감사의 표시를 한 걸까? 그렇게 궁금증을 안고 쉼터에 도착해 보니, 건물 3~4층 계단에 10kg들이 감자 50박스가 쌓여 있었습니다.

계단에 쌓아 둔 감자 박스쉼터 공간이 좁아 계단에 쌓아 두었다. ⓒ 고기복

택배회사에서 준 발송인을 확인해 본 결과 (주)한국중부발전에서 보낸 것이었습니다. 한국중부발전 사회공헌팀이 결연을 맺고 있던 농촌지역에 감자캐기 일손돕기를 나갔다가, 일을 마치고 감자를 선물로 받았는지 샀는지 모르지만, 그것을 우리 쉼터로 보낸 것이었습니다. 한국중부발전은 작년에도 우리 쉼터 주최로 이주노동자 축구대회(Migrant Merdeka Cup)가 있을 때 후원했던 업체입니다.

감사했지만, 50박스. 이 많은 분량을 어찌 다 소화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자라는 것이 금기시하는 나라가 없어, 어느 나라 출신이라도 감자를 마다할 리 없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많은 분량이었습니다.

참. 세상살이란 게 없어도 탈이요, 많아도 탈인가 봅니다.

그런데 마침 감자를 받은 날이 쉼터에 의료봉사팀의 무료진료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의료봉사를 오신 분들은 계단에 쌓인 감자를 보시며, '쉼터에서 감자에 싹이 나기 전에 다 소화하기에는 너무 많다. 이를 어쩌나' 하시더니 의료봉사를 마치고 돌아가시며 너나없이 돈을 주고 19박스를 사 주셨습니다. 그동안 봉사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그저 드려도 되는데, 쉼터는 그저 늘 신세만 지는 신세네요.

"'감솔'이라고 아세요?"
"'감솔'요?"
"감자에 싹이 나거나 변색되면 솔라닌이 생겨 식중독 위험이 있다고 학교 다닐 때 외웠었는데."
"아, 그렇군요."

50박스의 감자를 어떻게 다 소화할까 하는 고민은 저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감자라는 것이 장기간 보관하다보면 냉장고 안에 넣어 두아도 싹이 나는 녀석인데, 보관을 오래하려고 냉장고에 다 넣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초여름 더위에 계단에 방치할 경우 싹이 나는 것은 대수도 아닐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일단 신문지로 박스 위를 덮어 햇빛을 조금이라도 덜 맞게 해 두었습니다.


감자 보관신문지로 덮어 볓이 들지 않도록 했다. ⓒ 고기복

모두들 자신의 일인 냥 걱정하시며 쉼터를 나서는 의료 봉사팀이 떠난 후 남은 31박스의 감자, 우리 쉼터와 여성쉼터에서 다 먹기엔 여전히 많은 분량이었습니다. 입에 물리도록 먹어도 싹이 나지 않을 때까지 소화할 수 있는 분량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쉼터에서 한국어 교육을 받고 있는 결혼이주민 가정에 나눠주기로 했습니다. 기증받은 물품으로 생색내려니 참 어색하고 기증을 하신 분들의 성의를 무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감자가 싹이 나거나 변색하여 못 먹는 것보단 낫겠다 싶어 실행에 옮기기로 했습니다. 사실 감자를 보내 주신 분들의 성의를 생각하면 누군가가 감자를 맛있게 잘 먹어줘야 하니까요.

서로 나누며 사는 재미란 게 이런 거 아닐까요? 오는 토요일엔 동심으로 돌아가서 아이들과 묵찌빠나 해 볼까 싶습니다.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감자, 감자, 감자,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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