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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심리 박사도 "육아는 힘들어"

[인터뷰] <부모와 아이 사이>의 저자 앨리스 기너트 박사

등록|2008.06.25 13:38 수정|2008.06.25 16:12

▲ 소공동 롯데호텔 티 라운지 살롱 드 떼(Salon de The)에서 앨리스 기너트 박사와 만나 2시간여에 걸쳐 이야기를 나누었다. ⓒ 오승주


아이 키우는 일은 아동 심리 전문가인 나도 힘들다

"손님이 값비싼 화분을 깨면 이태리에서 다시 사오면 된다며 손님의 감정을 보호하면서, 자기 아이에게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부모라면 대부분 한 권쯤은 갖고 있거나 들어본 적이 있는 자녀 육아서 <부모와 아이 사이>(양철북 펴냄)의 저자 앨리스 기너트 박사를 만났다.

6월 24일 자정 한국에 도착한 그는 여독도 풀리지 않았을 법한데 오전 11시에 롯데호텔 '살롱 드 떼(Salon de The)'에서 기자들을 만났다. 오후에도 다른 기자간담회 일정을 잡는 등 의욕을 보인 그는 간담회 내내 지친 기색 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자리에는 채널 예스의 인터뷰 전문 기자와 방송사, 주간지, 인터넷 신문기자 등이 배석했다.

<부모와 아이 사이>는 본래 하임 G. 기너트가 쓴 책을 그의 아내인 앨리스 기너트(Alice Ginott)와 윌리스 고더드(Willace Goddard)가 수정 보완하여 2003년에 재출간한 책이다. 이 책은 1965년 출간된 이래 17개국에서 500만 부가 발행됐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인기의 비결을 물었더니 기존 육아서가 아이의 행동이나 교정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책은 아이의 생각과 감정 자체를 다뤘다는 점이란다. 실제로 이 책에는 상담이나 임상 실험의 사례들이 성실하게 수록돼 있고, '아이의 감성을 이해한다'는 원칙에 대해서 썩 근거 있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기너트 박사는 아이들의 개별 특성을 인정해야 하며 그것을 존중하고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위험한 것은 아이의 행동이지, '감정'은 검열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그것을 이해하고 제대로 해소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이다.

실제 육아와 책에 수록된 이론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자신도 역시 엄마로서 아이를 키워 왔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는 것이 슬프고 많이 힘들었다고 술회했다. 이론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며 <부모와 아이 사이>에 서술된 내용 중 60%만 달성하면 된다는 노(老) 학자의 말을 들으며 우리는 얼굴색과 문화적 장벽을 점차 허물어가며 '부모와 아이'라는 본질적 관계에 대면하게 되었다.

한편 양철북출판사와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의 초청으로 방한한 기너트 박사는 6월 25일 서울 삼성역 섬유빌딩 이벤트홀에서 '좋은 부모, 성공하는 아이를 위한 기너트 교육법'이라는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다. 서울대 교육학과 문용린 교수가 공동 특강자로 나서 '아이가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도덕성부터 키워라'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음은 일문일답.

<부모와 아이 사이>는 교육이 아니라 '감정존중'

- <부모와 아이 사이>의 인기가 상당히 높다. 왜 그런가.
"그것은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감정을 존중하고 이를 이해하려고 접근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하임 기너트 박사와 토머스 고든 박사는 한 스승 밑에서 배웠지만, 고든 박사가 '교육'에 초점을 맞추었던 반면, 하임 기너트 박사는 '감성(emotion)'에 주목했다. 복잡하고 변덕이 심한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고 해소하는 것이 육아의 기본이라는 원칙을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사례와 근거자료를 정리했다."

- 우리 나라의 경우 범죄 아동의 연령이 점차 어려지고 있으며, 수법은 점점 더 잔악해지고 있다. 미국의 상황은 어떤가?
"미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원인 중 하나는 TV나 영화의 폭력성이다. 하지만 폭력성뿐만 아니라 범죄의 범행부터 도피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사실적인 묘사를 하고 있어서 아이들에게 비행의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 도벽이나 마약 등 아이가 비행을 하는 것을 목격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만약 아이가 마약을 했다면 부모는 그 사실을 안다고 할지라도 직접 묻지 않고, '나는 네가 종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것에 대해서 너와 이야기하고 싶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물건을 훔친 경우도 마찬가지다. '네가 훔쳤니?'라고 묻는다면 반사적으로 자신을 방어하려 든다. 그것은 아이를 정면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아이를 주어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화났다'는 식으로 표현해야 하며, 최대한 다양한 표현으로 내가 화가 났다는 것을 설명한다면 아이를 공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신뢰감을 줄 수 있다. 아이에게 스스로 변화할 여지를 주지 않고 부모의 생각만 고집한다면 그것은 벽에다 얘기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아이의 교우관계에 대해서 부모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아이들이 친구의 가치관을 가족의 가치관보다 더 중시한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 <부모와 아이 사이>라는 책을 보면 아이가 동생을 질투한 나머지 '잭나이프로 가족이 타고 있는 자동차의 한복판을 쫙 가르면 부모는 안전할 것이고 동생은 두 토막이 나겠지'라는 상상을 하고 있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책 62쪽) 아이들의 이런 반응이 일반적인지 궁금하다.
"그것은 아이가 속마음을 이야기하지 않거나, 당신이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살해의 욕구는 사실 특별한 것은 아니다. 동생이 없을 때는 천국이었지만 동생이 태어나면서 모든 관심이 아기에게로 쏠렸을 때의 충격이란 마치 천국이 깨져버린 것 같은 기분일 것이다. 나도 손자가 둘 있는데, 작은 아이가 태어났을 때 큰 아이가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왜 아기를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느냐'였다."

외국어 습득하듯, 아이 언어 습득해야

-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책의 내용대로 하려고 하지만, 반복적으로 해도 잘 안 통하고 끝내는 체벌의 유혹을 견디기 힘들다?(두 아이의 엄마)
"이론과 현실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 책의 60%를 달성한다면 성공이다. 하지만 이 책이 모든 상황의 해법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벽에 반복적으로 낙서를 한다면 '낙서하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라는 공식이 생길 수 있다. 그러면 아이가 학교에 가거나 외출했을 때 벽에 낙서를 하라. 그리고 아이가 왔을 때 '내가 벽에 낙서를 했으니 네가 치우렴'이라고 말하면 아이는 치우지 않을 수 없게 된다(꼭 그렇게 하라는 것이라기보다는 '반사적 관점'보다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라는 환기로 이해했다- 기자주)."

- 책에는 아이의 감정을 다루는 법이 세심히 소개돼 있다. 하지만 가장 힘든 것은 역시 아이의 감정 처리였다.
"위험한 것은 행동이지 감정은 아니다. 모든 감정은 다 허용될 수 있다. 만약 동생이 새로 태어나 큰 아이가 감정을 몹시 상했다고 치자. 그러면 아이의 감정을 달래기 위해 무리수를 두기보다는 '동생이 여기 있으니 할 수 없는 거 아니냐'면서 현실을 직시하게 할 수도 있다.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감정신호의 혼선'이다. 아이가 '할머니가 제일 싫어'라고 하면 엄마는 화를 내기 쉽다. 그래서 아이가 당장 '할머니가 좋아'라고 말을 바꾸면 엄마는 화를 풀고 아이를 안아 준다.

아이가 이 신호를 어떻게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나? '엄마는 내가 참말을 할 때는 막 화를 내고, 거짓말을 했더니 칭찬하고 안아주는구나'라고 생각해 거짓말을 즐겨 하는 아이가 된다. 아이에게 왜 할머니가 싫은지 물어보라. 그러면 할머니가 동생 선물만 사오고 내 선물을 사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것을 할머니에게 말하면 할머니는 큰 아이의 선물만 사오겠다고 말할 것이다."

- 공평한 사랑보다는 특별한 사랑을 하라는 메시지가 가슴에 와닿는다. 공감하는데 얼마만큼 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집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고 치자. 손님이 오래된 도자기를 실수로 깨뜨렸을 때 어떻게 반응을 하나? 이태리에서 다시 사오면 된다고 말하면서 손님의 감정을 보호한다. 하지만 아이가 그것을 깨뜨렸을 때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남보다 더 소중하게 대해주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오히려 아이의 감정을 보호해야 한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투명인간으로 대하고 있지 않은지에 대해서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한 엄마가 아이와 식당에 갔는데 아이가 핫도그를 시키자 엄마는 샌드위치를 시켜 버렸다. 하지만 점원은 아이에게 '핫도그에 소스를 뿌려 줄까?'라고 물었다. 아이가 '엄마, 이 누나(언니)는 내가 정말 인간이라고 생각하나 봐'라고 말했다."

- 책을 보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사소하게 생각하고 무심코 꺼내는 말이 얼마나 커다란 폭력이 될 수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런 상태에 놓인 부모의 경우는 '타성'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고, 아이에게 '이미지화된' 부모의 모습을 극복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책의 교훈을 따르는 것이 막막하고 막연하게 느껴진다.
"우리 부모는 체코 출신이다. 2차 세계대전을 피해서 미국으로 건너오게 됐는데 새로운 언어를 배워 갔다. 부모는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는 것과 같이 아이의 언어를 배워가야 한다. 하지만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손님'에게 하던 태도를 아이에게 적용시키기만 하면 된다."

- 우리나라 부모에게 한말씀 해주시면 좋겠다.

▲ 전날(24일) 밤 0시30분에 도착해 여독이 풀리지 않은 상태였지만, 기너트 박사는 대화 내내 유머를 잃지 않으며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 오승주

"한국의 부모들은 너무 한가지에만 치우치는 것 같다. 미국은 스포츠를 굉장히 중시하는데 한국에서는 체육을 경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에도 명문 사립고나 아이비리그 등이 있지만 어디에서든 예술과 체육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의 현재 교육상황은 변화가 필요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스포츠는 절제와 팀워크, 인간관계, 승패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스포츠맨십, 철학 등을 가르쳐 준다. 내 딸이 고등학교 내내 발레를 했는데, 그러다 보니 학업에 소홀해 졸업하기가 어려웠다. 딸이 결단을 내리고 학교측에 1년만 기회를 줄 것을 요청했다. 딸은 열정적으로 공부를 해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이는 발레를 통해 몸뿐만 아니라 정신훈련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노벨상 수상자나 위대한 성취를 이룩한 사람들은 창의적이고 개방적인 사고가 기반이 됐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라나는 짧은 아동기를 불행하게 보내지 않게 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와 반대 이야기도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오히려 아이들에게 스포츠 대신 공부를 더 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 어느 것이 더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에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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