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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를 정녕 사랑할 순 없는건가요?

[아줌마 드라마 뒤집기 25] <엄마가 뿔났다>에서의 새로운 고부간의 모습

등록|2008.06.26 10:59 수정|2008.06.26 10:59

▲ 교양미가 철철 넘치는 고은아. 속물근성이 가득해 비호감이었지만 날이 갈수록 시청자들을 흡입하고 있다. ⓒ kbs

드라마가 유일하게 현실을 담아내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고부간의 모습이 아닐까. 물론 간혹 대책 없는 드라마들은 시어머니의 악랄함을 극적으로 그려내 시청자들은 분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도 고부 갈등은 남일 같지 않게 받아들여지기 마련이다. 사실 시어머니는 "내 딸 처럼…"이라 말하지만 결코 내 딸이 아니기에 그녀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고, 며느리도 "내가 사랑하는 남편의 어머니…." 그 이상으로 여기지 못한다.

그래서 둘 사이는 남자를 가운데 놓고 싸우는 연적이 되기도 하고, 관계가 좋다고 해도 친딸과 친부모와 같지 못하다. 오죽하면 우스갯소리로 며느리들은 '시'자만 들어도 경기한다는 말이 있겠는가. 

역시나 그래서 우리들에게 적어도 중장년층, 갓 결혼한 세댁까지는 드라마 속 고부간 모습에 서로 웃고 울며, 많은 부분 공감한다. 나 또한 한 가정의 주부로서, 며느리로서 이 부분들에 십분 공감한다.

그래서일까, 요즘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뿔난 시어머니의 모습과 시집살이가 힘들다 외치는 며느리의 모습이 가슴에 와 닿는다. 특히 서로간의 이해 불충분으로 빚어지는 갈등은 퍽이나 인상적이다.

헌데, <엄마가 뿔났다>에서의 고부간 모습 속에서 우리는 고리타분한 모습과 새로운 모습을 동시에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시어머니로 등장하는 고은아(장미희)의 모습은 너무나도 고리타분하다.
고은아, 비호감에서 호감으로 변신!

재벌집 안방마님 고은아는 자신의 마음에 차지 않은 며느리 영미(이유리)를 받아들이기 까지 냉혈한 모습을 보이며 반대를 했다. 그녀의 표독스러움은 우아함으로 포장되어 산 사람을 포를 뜰 정도로 무섭게 그려졌다.

교양미가 철철 넘치면서 아무렇지 않게 상대를 흠집 내며 자신가의 집안과 결혼은 얼토당토 않음을 주장하며 영미를 있는 대로 기 죽였다. 하지만 아들의 생사갈림길 투쟁 속에서 결국 결혼을 승낙했다.

물론 고은아라는 캐릭터는 기존 재벌 사모님과는 조금 다르다. 물불 안 가리고 아들과 상대를 떼어내기보다는 교양과 우아함을 지키되, 그 안에서 최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또 평생을 그렇게 자라온 고은아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어 설득력을 얻는데, 때론 교양미 속에 속물적인 근성이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가령, 구두 굽이 부러졌을 때,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에요. 이태리 본사에 클레임을 걸어야겠어요!"라고 속삭이듯 화를 내면서도 그녀는 까치발로 우아함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이밖에도 그녀의 속물근성이 남편에게만큼은 통하지 않는 장면에서 애교 있는 투정을 부리는 모습은 인상 깊었다. 특히 장미희란 배우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지면서 고은아 캐릭터는 비호감에서 호감으로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영미 씨, 척 좀 그만해요!

▲ 착한 본성을 지니고는 있지만 만만치 않은 내공으로 고은아에게 은글슬쩍 필적하고 있어, 오히려 미운 캐릭터가 영미가 아닐까. ⓒ kbs


게다가 영미가 며느리로 들어오면서 상황은 역전되었다. 오히려 착하고 순둥이 같은 이미지의 영미가 비호감 캐릭터로 변모했다. 이 점이 <엄마가 뿔났다>가 보여주는 새로운 점 중의 하나다.

우선 영미는 착하고, 자기 일을 똑 부러지게 할 줄 알며, 자신의 자존심도 지킬 줄 아는 현명한 여성이다. 하지만 재벌가의 며느리가 되면서 그녀는 착한척하고 똑 부러진척하며 자존심만 세울 줄 아는 인물이 되어버렸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고은아와 영미간의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부터이다. 물론 시집 온 날부터 고은아의 교양미에 압도되어 클래식 음악도 들어야 하고, 새 모이도 주어야 하며, 교양적인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안쓰럽긴 하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강요받을 때 죽도록 절망스럽고, 괴로울 수 있다. 특히 고은아처럼 교양이 철철 넘쳐 사사건건 무언가의 가르침을 받고, 강요받는다면 더욱 더 그러하리라.

하지만 영미, 그녀는 드라마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절대 착하디착한 순둥이는 아니다. 특히 이런 타입은 딱히 싫어할 만한 구석이 없는데도 싫다. 정확하게 무언가를 딱 집기엔 부족하지만 왠지 미운 캐릭터이다.

그 이유는 바로 ‘척’이다. 절대 착하지만은 않은 그녀가 착해 보이려 무진장 애를 쓴다는 것이다. 그 단적인 예로 시집에 인사드리러 갈 때 250만원짜리 명품 옷을 사준 언니의 결혼에 "내 결혼식 일주일 앞두고 꼭 그래야 했어? 왜 이렇게 이기적이야!"라고 쏟아 붙일 줄 아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랑과 결혼은 중요시 하면서 타인의 사랑과 결혼은 깡그리 무시하는 그 발언을 한 장본인이 영미란 말이다. 그런 그녀는 시집을 와서 고은아의 척을 절대 들어주지 않는다. 그것도 앞에서는 "어머님, 알겠습니다"라고 하지만 정작 고은아 뜻대로 되는 일은 단 한 개도 없다.

함께 음악 듣고,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고, 전시를 보러 가고, 스파도 함께 하고 싶어하는 고은아지만 클래식 음악도 듣기 싫고, 전시도 보러 가고 싶지도 않으며 하물며 스파, 피부관리는 더욱 더 싫은 영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에서는 고은아 말의 절대적으로 따르지만 뒤에서 남편 정현에게 하소연을 하면서 결국 자신의 뜻대로 일을 진행한다. 여기에 고은아가 윽박을 지른다 치면, 울먹이며 제가 하고 싶은 말 또박또박 하는 스타일이 영미이니, 어찌 며느리 영미를 고은아가 사랑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시청자들은 살짝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특히, 내색은 않지만 속으로는 "어머니! 죽어도 싫다니까요!"라고 외치는 그녀, 사촌 은실이에게 하염없이 자신의 시어머니 흉을 보며 흉내를 내는 그녀를 보면서 시청자들은 고은아가 애처로워 보일 수밖에 없을 터.

게다가 남편을 부추겨 놓고는 남편이 어머니에게 항거하자, "어디서 배운 버릇이냐?"며, 용서를 대신 비는 내숭 구단의 모습을 보여줘 고은아를 대적할 만한 내공이 있음을 알려준다. 정작 그것도 모르는 고은아. 오히려 고은아의 청을 단 한 번도 들어주지 않은 영미가 밉다. 그저 같은 취미를 함께 공유하고 싶은 바람이 그리 큰 것일까 싶을 정도로 영미는 고은아에 대해 모든 것을 싫어한다.

물론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딸처럼 받아들이지는 못하지만 며느리 또한 시어머니를 이름 그대로 시어머니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까 싶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을 낳아준 어머니를 사랑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결국 고부간의 갈등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습은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즉,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의 일방적인 억압에서 벗어나 며느리의 반란으로 다시금 관계가 조정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이러한 모습은 실생활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신세대 며느리들 중에는 자신들의 일을 하면서 남편과 아이를 위해서는 헌신적이지만, 시어머니와는 적당한 거리를 두며, 이해득실에 따라 행동을 취하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엄마가 뿔났다>에서 영미는 기본적으로 착하고 순한 캐릭터이지만 그녀의 요즘 모습은 얄미운 며느리들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고은아가 뿔이 단단히 날만도 하다. 남의 속도 모르고 아들은 무조건 며느리 편만 드니, 고은아의 뿔이 언제쯤 가라앉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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