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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부디 밟지 마소서!"

등록|2008.06.28 17:32 수정|2008.06.28 17:32
“우리는 아직 미치지 않았습니다.”

하수구에서 퍼 올린 물대포에 온 몸을 적신 채 아스팔트 바닥에서 깊은 밤을 지새울지라도, 미친 소의 울부짖음 소리에 잠을 설치면서 광화문을 이리저리 배회할 지라도 우리는 아직 미치지 않았습니다.

15년 밖에 살지 않은 촛불을 든 소녀의 미래를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느낄 정도로 우리의 정신은 아직 온전합니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이 무너진 가슴으로 바라보는 광화문의 네온사인과 조중동의 간판은 오뉴월의 열기 속에서도 유난히도 차갑습니다.   

지금 광화문 네거리에는 때 아닌 삭풍이 불고 있습니다. 그 삭풍이 우리의 무너져 내린 가슴팍을 거칠게 휘감고 지나갈수록 우리는 가냘픈 체온이나마 유지하기 위해 촛불을 밝힙니다.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촛불을 밝히다 스스로를 태운 것처럼 언제인가 우리도 그렇게 촛불이 몸에 옮겨 붙어 서서히 사그라질 것입니다.

먹기 위해 사는 인간이, 먹히기 위해 소를 먹은 소를 먹지 않기 위해 촛불을 드는 이 이상한 세상에서 어쩌면 미치지 않는 것이 이상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온 세상을 구원한다는 십자가마저 자신의 역할을 잊은 듯 저 높은 곳에서 촛불의 희미함을 비웃는 것 또한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청와대 뒷산에서 촛불과 십자가의 불빛을 동시에 바라보던 이명박 대통령은 가슴을 치고 땅을 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촛불을 비웃는 십자가 앞에서의 형식적인 후회와 회개였습니다. 그는 어쩌면 십자가를 방패에 새긴 채 이방인을 향해 끝없는 살육을 감행했던 십자군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었는지 모릅니다.

미국을 하나님의 나라로, 부시를 하나님의 사자로 여기는 저 높은 십자가는 소를 먹은 소를 먹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또 그 십자가는 오히려 미국의 우상 앞에 매달려서 일자리를 많이 얻고, 값싸게 맛있는 쇠고기를 많이 먹는 것이 ‘선한 일’이라고 외칩니다.

그 십자가는 아무리 많은 촛불이 뜨겁게 타올라도 그것과 함께 타지 않습니다. 뻥 뚫린 가슴으로 목청껏 외치는 울부짖음에도 함께 울지 않습니다. 예수가 졌던 칙칙하고 거칠며 아무런 빛도 나지 않던 그 십자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진 예수가 형편없이 나약한 육체를 지녔던 것처럼 촛불을 든 이들은 너무나 여리고 연약한 자들입니다. 변형 프레온이라는 괴물 앞에 어찌할 줄 몰라 떨다가 촛불에 의지해 청와대 가는 길을 묻고 또 묻는 사람들입니다.

부디 그들을 밟지 말아주십시오. 형편없이 깨지기 쉬운 그들의 육체를 억압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들이 만약 이 차가운 대지 위에 피를 흘릴 경우 하나님의 눈물이 마치 노아의 홍수 때 내린 비처럼 이 땅을 덮을 것입니다.  

부디 밟지 마소서

부디 밟지 마소서.
살포시 얼어붙은 잔물결이  
그대 발에 깨어질까 저어하노니

나 또한 밟지 않으리다.
너무 여려서 내 야윈 몸조차 떠받들지 못할 대지에
자그마한 흔적이라도 남기지 않으리다.

우리 영이 되어
가냘픈 호흡으로 그 땅을 떠다니려오.
아무리 추워도 알몸으로
대지 위에 몸을 누이려니
내가 얼어붙어 차갑게 식을지라도 내 버려두오.

부디 밟지 마소서.
삭풍이 온 땅에 잠들어 얼어붙을 때까지

그때 그리운 이여,
내 영혼의 잔가지에 깃드소서.
내 영혼의 떨림에 메아리로 오소서.
덧붙이는 글 뉴스앤조이(newsnjoy)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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