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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시대 '불량' 청년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이주의 새책] <포스트워 1945-2005> 등 신간 8권

등록|2008.06.29 19:14 수정|2008.06.29 19:14

▲ ⓒ 강

나의 아버지 루쉰
- 루쉰의 아들로 살아온 격변의 중국 | 저우하이잉 지음 | 박자영·서광덕 옮김 | 강 | 624쪽 | 2만2000원


고서점에 함께 들른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고서를 뒤적이던 아들을 빨리 데리고 나가도록 재촉했다. 고서는 병자가 판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여러 사람들의 손을 스친 것이어서 저항력이 약한 아이들이 보면 질병에 감염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중국의 대문호 루쉰(1881-1936). 동시대 작가 위따푸가 "단칼에 피를 본다"고 표현한 날카로운 문장으로 당대 중국의 문제를 거침없이 비판해온 그였지만 늦게 얻은 아들에 대한 정은 그토록 애틋했다. 그 아들이 슬하에서 바라본 아버지 루쉰에 관한 기록이다. 그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자 한계이다. 작가로서 루쉰의 풍모나 정치적 행적뿐 아니라, 사소한 생활 습관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아버지로서 루쉰의 모습 등을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 ⓒ 플래닛

포스트워 1945-2005
- 전쟁의 잿더미에서 불확실한 미래로 뛰어든 유럽 이야기 | 토니 주트 지음 | 조행복 옮김 | 플래닛 | 1권 736쪽, 2권 712쪽 | 각권 3만2000원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전쟁터 유럽은 철저히 파괴됐다. 그 누구도 섣불리 희망을 입에 담지 못했다. 그러나 60여년이 흐른 오늘날 유럽은 개인과 국가에게 역할 모델을 제시하는 매력적인 대상으로 변했다. 도대체 전후 유럽에서는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저자는 두 권 합쳐 1400쪽이 넘는 분량이 웅변하듯, 유럽 34개국 60년의 역사를 추적함으로써 정치·경제·사회·문화에 걸쳐 전후 유럽의 모든 것을 철저히 해부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우리와 무관한 전후 유럽의 오디세이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민영화나 '제3의 길', 역사의 상품화, 인구 변동과 연금 문제, 예술에 대한 국가의 후원, 다민족 사회의 문제점, 환경오염, 지역 간 빈부 격차, 분리주의 등 현대 사회의 첨예한 문제들과 좌파와 우파,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와 시장, 복지와 경쟁 등 서로 대립하는 개념들에 관한 많은 내용들"('옮긴이 글'에서)은 우리에게도 곧 '현재진행형'의 문제로 다가온다.


▲ ⓒ 푸른역사

부랑청년 전성시대
- 근대 청년의 문화 풍경 | 소영현 지음 | 푸른역사 | 320쪽 | 1만5000원


'금테 안경을 쓰고 세비루 양복을 입고 칼포 담배를 피운다. 자동차를 타고 데이트를 다니며 서양음식에도 익숙하다. 대개 학생 신분이지만 학교생활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고, 술 먹는 법, 기생과 입 맞추는 법, 춤추는 법 등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알고 있다.' 1910년대 경성 거리를 활보하던 '부랑청년'의 모습이다. 청년이 근대의 또 다른 이름이었던 20세기 초기 14편의 문화 풍경을 통해 역동의 시공간과 그 주인공인 청년이 어떻게 새로운 세계를 형성하고 근대를 내면화했는가를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함께 출간한 저자의 <문학청년의 탄생>이 '청년 담론'에 대해 학술적으로 접근했다면, 이 책은 진지했으며 가난했고 열정적이었으나 때로 전투적이었고 본의 아니게 비열했으며 신랄했던 근대 청년의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 ⓒ 궁리

수학자들의 비밀집단 부르바키
| 모리스 마샬 지음 | 황용섭 옮김 | 궁리 | 235쪽 | 1만7000원


1934년 겨울, 프랑스의 젊은 수학자 몇 명이 파리 라탱지구의 한 카페에 모였다. 그들은 죽어가던 프랑스의 낡은 수학을 대체하는 새로운 수학교재를 펴냄으로써 프랑스 수학의 표준을 다시 세우려 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모임에 신화적인 성격을 부여하기 위해 1870년 보불전쟁 당시의 전설적인 장군을 이름을 따와 '부라바키'란 이름을 붙였다. 그들의 노력은 약 60년에 걸쳐 25권으로 펴낸 7천 쪽이 넘는 <수학원론>으로 나타났다. 이 책은 단지 부라바키의 수학적 공과에 대한 기록뿐만 아니라, 삶을 즐기며 수학에 대한 꿈과 사상을 전파하고자 했던 그들 모임의 독특한 운영방식과 익살스런 일화들을 담았다.


▲ ⓒ 현암사

잃어버린 소년들
| 벤슨 뎅·알폰시온 뎅·벤자민 아작 지음 | 주디 A. 번스타인 엮음 | 조유진 옮김 | 현암사 | 454쪽 | 1만3500원


부제는 '수단 내전의 참상을 온몸으로 전하는 세 소년의 충격 실화', 원제는 '그들은 하늘에서 우리에게 불벼락을 퍼부었어요(They Poured Fire in Us From the Sky)'다. 내전의 '불벼락' 속에서 살아남은 벤슨, 알레포, 벤자민 등 세 소년이 차례대로 돌아가며 전쟁의 참상과 살기 위해 악어가 득시글거리는 나일강을 건너고, 오줌을 받아먹고 진흙을 파먹어야 했던 자신들의 경험을 증언한다. 국제구호기구의 도움으로 미국에 정착한 세 소년은, 수단의 인종 학살과 그 참상을 고발하는 강연회를 꾸준히 열고 있는데, 그들의 웹사이트(www.theypouredfire.com)에서 이제는 청년이 된 세 소년의 이야기를 계속 들을 수 있다.


▲ ⓒ 황금가지

세계민담전집 - 이란 편
| 김영연 엮음 | 황금가지 | 484쪽 | 1만7000원


민담은 서사문학의 원류이자 문화의 응집체로 그 민족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문화적 자산이다. 황금가지는 2003년 한국 편을 시작으로 몽골, 태국·미얀마, 남아프리카, 스페인, 러시아, 집시 등 '세계민담전집' 시리즈를 꾸준히 펴냈다. 그 결과로 제44회 백상출판문화상 편집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에 '이스라엘 편'과 함께 나온 '이란 편'은 16권째로 이로써 시리즈 2차분이 완간됐다. <아라비안나이트>의 본고장인 페르시아(이란)의 민담을 통해 유목인의 후예로 자연 현상과 함께 살아온 그들 민족의 운명론적 사고, 그러면서도 변화를 갈망하는 그들의 지혜를 읽어낼 수 있다. 외국어대 이란어과 교수인 역자가 원어 텍스트를 그대로 번역했다.


▲ ⓒ 고인돌

숲 속 그늘 자리
- 자연이 예술을 품다 | 이태수 글·그림 | 고인돌 | 120쪽 | 1만4800원


생태화가인 저자가 사계절이 다섯 번 바뀌는 동안 우리나라 곳곳을 발로 다니며 만난 우리 곁의 동식물에 관한 사랑을 글과 그림으로 담았다. 얼레지, 고깔제비꽃, 붉은머리오목눈이, 큰구슬붕이, 족도리풀(봄), 물옥잠, 은방울꽃, 늑대거미, 말잠자리(여름), 개똥벌레, 물자라, 말불버섯, 댕기물떼새(가을), 바위솔, 피뿔고동, 쑥새, 노루귀(겨울) 등 그 이름만으로도 정겨운 우리 곁의 동식물을 저자의 섬세한 감정과 손길로 새롭게 만날 수 있다. 시인이자 가수인 백창우의 "이태수의 그림을 보는 것은 숲길을 아주 천천히 걷는 일과 같다"는 설명이 아니더라도 그의 그림을 마주하노라면 책장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넘길 수밖에 없게 된다.


▲ ⓒ 후마니타스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 이랜드 노동자 이야기 | 권성현·김순천·진재연 엮음 | 후마니타스 | 312쪽 | 1만2000원


그들의 꿈은 소박했다. 단지 "일하고 싶어요"였다. 그럼에도 2007년 7월 1일 시행된 비정규직법으로 일터를 잃고 거리로 내몰렸던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지난 1년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랜드일반노조 월드컵분회지원대책위원회'의 기획에서 시작해 '삶이보이는창 르포문학모임'이 참여해 그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노동조합의 '노'자도 몰랐던 그들이 때로는 욱해서 때로는 얼떨결에 노조에 가입하고 아이 낳을 때보다 더 무서워하며 매장을 점거하고 파업투쟁을 벌이기까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책을 사서(수익금의 일부를 투쟁기금으로 지원한다) 읽고 그들의 이야기를 널리 퍼뜨림으로써 그들의 '소박한 꿈을 응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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