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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누운 시민까지 짓밟는 경찰 공권력의 폭거에 화난다, 하지만

[주장] 그래도 비폭력이 이기는 길이다

등록|2008.06.30 10:11 수정|2008.06.30 10:53

▲ 지난 29일 새벽 0시,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부근에서 '눕자' 시위를 벌이고 있던 YMCA 이학영 사무총장 등을 전경들이 구타하며 밟고 지나가고 있다. ⓒ KBS화면캡처


28일과 29일 촛불 집회에서 행해진 경찰의 강경 진압은 2008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경찰은 작정한 듯 예전보다 더 일찍, 더 강경하게 촛불 시민들에 대한 무력 진압을 시작했다. 시민들은 몇 시간 내내 경찰의 살수차에 우비 하나로 맞서야 했고 경찰의 방패, 곤봉, 군홧발에 그대로 몸을 맡겨야 했다.

며칠 전부터 계속된 강경진압으로 흥분한 시민들도 경찰에게 호스로 물을 뿌리고 간헐적으로 물건들을 집어 던지기는 했지만 살수차, 소화기, 방패, 곤봉, 군홧발로 무장한 경찰에 대항하기는 역부족이었다. 현장은 아수라장 그 자체였고 뉴스를 통해 단편적인 경찰-시민 충돌 모습을 본 일부 국민들은 촛불 집회가 정말 폭력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듯하다.

길에 누운 시민들을 밟고 올라선 경찰

▲ 29일 새벽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서 미국산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장관고시에 반대하는 학생, 시민들이 경찰들과의 격렬한 대치를 벌이던 가운데 경찰의 강제진압 도중 한 시민이 부상을 당해 피를 흘리고 있다. ⓒ 유성호


그러나 시민들을 보호해야 할 경찰이 작정하고 저지른 폭력과 이에 맞서기 위해 시민들이 저지른 자기 방어적 대응 폭력은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 여전히 대부분의 시민들은 비폭력 기조를 유지하고 있고 흥분한 극소수 시민들의 산발적인 폭력 저항은 경찰의 강경 진압에 비하면 약자의 몸부림에 불과하다. 

경찰의 폭력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준 것은 29일 새벽 비폭력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길에 누운 시민들까지 짓밟고 곤봉과 방패로 구타한 것이다. 경찰은 강력한 비폭력 의지를 보여주고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섰던 100여 명의 '눕자 시민행동단'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했다. 이를 찍은 동영상을 본 사람들이라면 피가 거꾸로 솟아 경찰에 대한 분노를 삭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거리에 눕는 것은 폭력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용감한 비폭력 저항 방법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런 숭고한 행동이 경찰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민주국가에서의 시민 저항권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고 비폭력 저항의 의미를 모르는 경찰에게는 자신의 안전까지 내 던지는 비폭력 저항이 전혀 먹혀들지 않으니 가슴이 콱 막힐 뿐이다.

경찰의 강경 진압과 이를 지시한 정부, 그리고 촛불 집회를 폭력적인 전문 시위대들이 장악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여당의 발언 때문에 촛불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있다. 촛불 집회를 불법 폭력 시위로 규정짓고 물대포, 방패, 곤봉, 군홧발로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는 경찰들한테는 당연히 폭력으로 맞서는 것이 맞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 '6.28 반민주정권 심판의 날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참석한 한 시민이 28일 밤 서울 광화문우체국앞 종로거리에서 경찰버스 안으로 소화기를 뿌리고 있다. ⓒ 권우성

경찰이 강경 진압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은 촛불 시민들을 자극해 폭력 대응을 조장하고, 촛불 집회에 참여하지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중단시키기 위한 고도의 전략으로 보인다.  촛불 집회가 폭력 시위로 매도당하고 경찰들의 무력 진압이 계속되는 상황에 자극 받은 일부 촛불 시민들은 경찰 폭력에 맞서 폭력 저항의 수준을 같이 높여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없는 대통령, 정부, 여당을 상대로 더 이상의 평화 집회는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대포의 세찬 물줄기, 경찰의 위협적 곤봉과 군홧발,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방패 찍는 소리에 맞서 이제 우리도 무력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폭력이 무참히 짓밟힌 상황에서, 그리고 경찰의 폭력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는 이 시점에서 비폭력은 갈림길에 서 있다.

비폭력 저항은 비겁한 자의 변명이 아니다

▲ 29일 새벽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서 미국산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장관고시에 반대하는 학생, 시민들이 경찰들과의 격렬한 대치를 벌이던 가운데 경찰의 강제진압이 시작되자 한 시민이 경찰에게 강제연행되고 있다. ⓒ 유성호

비폭력 저항은 전술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많은 시민운동이 비폭력 저항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더 강하고 장기적으로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비폭력 저항을 통해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고, 대중들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으며, 나아가 폭력을 행사하는 집단의 도덕성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폭력 저항은 결코 비겁한 자의 변명이 아니다. 오히려 도덕적 정당성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 당당함을 보여주는 수단이다. 지금까지 촛불 시민들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충분히 당당하고 용감했으며 여전히 용감하다.

촛불 집회는 전술적 차원에서 비폭력을 유지해야 한다. 촛불 집회가 비폭력 저항의 의미를 잃는다면 더 이상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물론 최소한의 자기 방어는 할 수 있어야 한다. 순수한 비폭력은 자기 방어를 위한 폭력까지도 거부하지만 필자는 자기 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수단까지 폭력으로 정의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노를 표하고 상대를 자극하기 위한 폭력은 사소한 것일지라도 자제해야 한다. 보편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반 대중은 폭력에 민감하다. 가해자의 폭력과 피해자의 대응 폭력은 구분되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보통의 사람들은 작은 폭력에 대해서도 마치 자신의 도덕성을 재는 잣대인 것처럼 민감하게 반응한다. 정부와 경찰은 이런 일반 대중의 심리를 악용하면서 소수 촛불 시민들의 폭력 사용을 확대해 촛불 집회를 불법 폭력 시위로 몰아갈 것이다. 이런 전술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도덕적 정당성을 가지고 일반 대중을 설득하고 대통령, 정부, 여당의 잘못된 정책에 계속적인 문제 제기를 하기 위해서라도 촛불 집회는 비폭력 시민 저항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결국 이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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