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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관제동원... 완전히 5공으로 돌아갔다"

[현장] 정운천 장관, 강연서 PD수첩 공격... 읍면동장 "좋아서 온 사람 없다"

등록|2008.06.30 17:07 수정|2008.06.30 17:12

▲ 30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열린 '전국 읍·면·동장 국정 현안 설명회'에서 김종훈 본부장이 통상교섭본부장이 설명하고 있다. ⓒ 안홍기


촛불을 끄기 위해 서울 광화문에 동원되는 건 경찰만이 아니었다. 30일 오전엔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의 각 읍·면·동장 3500여명도 광화문으로 동원됐다. 정부는 이날 오전 10시 '국정현안 설명회'라는 이름으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이들을 불러들였다.

오전 9시부터 세종문화회관 앞엔 40·50대로 보이는 공무원들의 줄이 세 갈래로 길게 이어졌다. 이들의 양복에는 각 지자체의 로고가 붙어있어, 이들이 전국에서 올라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앞 유리에 '국정현안설명회 참석 차량'이라고 쓰인 버스들이 공무원들을 끊임없이 토해냈다.

설명회가 열리는 세종문화회관 앞엔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선전전도 이뤄지고 있었다. 노조는 한미 쇠고기 협상·물 사유화·공무원 구조조정 등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자료집을 공무원에게 뿌렸다. 공무원들은 이들의 자료를 찬찬히 살펴봤다.

정용천 공무원노조 대변인은 "전국의 각 읍·면·동장을 동원하는 건 80년대 이후 처음"이라며 "국민들 다수가 비판하는 내용을 놓고, (정부가) 공무원들만 불러다놓고 긍정적으로 홍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운천 장관, 공무원 앉혀놓고 <PD수첩> 공격

▲ 30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전국 읍·면·동장 3500여명이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의 한미 쇠고기 추가협상 결과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김주성


설명회 시작 30분 전, 이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3000석은 공무원들로 가득 찼다. 자리를 잡지 못한 공무원들은 대극장 바깥 로비로 나와, 극장 안 상황을 중계해주는 TV 화면 앞에 모였다.

여기서 만난 한 공무원은 국정현안 설명회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 경북에서 올라왔다는 그는 "읍·면·동장들이나 지역 공무원들 불러올려도 효과가 없다, 주민들이 다 TV 보고 우리보다 더 잘 알지"라고 지적했다.

공무원들 손에는 농림수산식품부와 통상교섭본부에서 나눠준 미국산 쇠고기 후속대책, 추가협상 결과 자료가 쥐어져 있었다. 지금껏 발표된 보도자료와 큰 차이가 없었다. 어떤 자료들은 아예 '보도자료'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설명회가 시작되자, 눈을 감는 공무원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 30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전국 읍·면·동장 국정설명회에서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3500여명의 전국 읍·면·동장들에게 한미 쇠고기 추가협상 결과 등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단상에 오르고 있다. ⓒ 연합뉴스 김주성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산 쇠고기 추가협상 결과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는 "제대로 된 나라라면 국민건강을 최우선으로 한다"며 "여러분들이 추가협상 결과를 잘 이해해, 주민들의 우려를 해소시켜 달라"고 전했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이날 설명회 자리에서MBC <PD수첩>을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농식품부는 이미 명예훼손 혐의로 <PD수첩>을 수사 의뢰한 상태. 정 장관은 "<PD수첩>은 다우너 소 영상을 내보내놓고, 청소년이 받을 심리적 충격에 대한 어떤 지도방송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스산한 배경음악까지 깔고, 다우너 소를 광우병이 걸린 것으로 느껴지도록 하는 영상을 14분씩이나 방영했고, 아레사 빈슨의 사인은 인간광우병(vCJD)인 것으로 전달했다"며 "(<PD수첩> 때문에) 중고생들에 광우병 공포가 확산됐다, 가슴이 아팠다"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또한 "미국산 쇠고기 협상은 이전 정부 때 이미 협의한 것이고, 그 때 뼛조각 문제로 한미 간 신뢰가 깨졌다"면서도 "인수위 때 미국이 사료조치를 강화하면서 미국산 쇠고기 협상이 타결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무원들 "우리 불러봤자 소용없다, 주민들이 더 잘 아는데"

▲ 30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열린 '전국 읍·면·동장 국정 현안 설명회'가 끝난 시각, 전국공무원노조 소속 10여명이 '미친소 졸속협상 부당 홍보 거부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안홍기


세종문화회관 로비에는 설명회가 끝나기도 전, 몇몇 공무원들이 대극장 바깥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전남 곡성군청에서 올라왔다는 공무원은 "새벽 5시에 출발했는데 졸려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고 전했다. 옆에 있던 공무원에게 "들어보니까 좀 어떠냐"고 물어보니, 그는 "여기 좋아서 온 사람 아무도 없다, 더 얘기하지 말자"고 손사래 치면서 돌아섰다.

낮 12시 국정현안 설명회가 끝나고, 많은 공무원들이 세종문화회관을 빠져나왔다. 많은 공무원들은 "설명회 내용에 새로울 게 없었다"고 지적했다. 전북에서 올라왔다는 한 공무원은 "원래 다 알고 있던 얘기인데, 새로운 것 없어서 밖에 나왔다"고 전했다.

경기도의 한 동사무소에서 올라왔다는 공무원은 "긴급 현안에 대해서 설명회를 갖는 건 나쁘지 않다"면서도 "내용이 피부에 와닿거나 일선에서 크게 도움이 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정현안 설명회가 '공무원 동원'"이라고 비판하는 공무원이 적지 않았다. 광주광역시에서 올라왔다는 그는 "공무원 사회에서 정부가 촛불시위를 대응하는 것을 보면 공안정국과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얘기한다"며 "이렇게 동원하는 것도 별로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기자를 보자 "완전히 5공으로 돌아갔다"고 지적했다. 전남의 한 농촌에서 올라왔다는 공무원은 "어제 올라와 여관에서 잔 후 오늘 설명회를 들었다"며 "현장에서 소값 떨어져 많은 농민들이 죽을 맛이다, 설명을 들었지만 아직 걱정이 많이 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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