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천 상동주민센터가 조성한 시비거리 상동주민센터는 아파트와 공원, 학교가 밀집되어 있는 거리에 아름다운 시가 담긴 시비를 세워 시민들의 감성 지수를 높여주고 있다. ⓒ 최정애
1908년 최남선이 잡지 <소년>의 권두언에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한 것을 기점으로 보면 2008년은 현대시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다. 현대시가 한 세기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불고 있는 시 열풍이 오래오래 불었으면 좋겠다. 거친 언어가 난무하는 요즘 시인들이 뿜어내는 정제된 시어를 통해 언어의 미학을 배웠으면 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부천 복사골문화센터 문화사랑 카페에서 열린 이 행사에서 정 시인은 ‘시가 말을 걸었다’라는 주제 강연을 했다. 시인은 “자신의 시를 소개하는 것이 매우 부끄러운 일이지만 한 편의 시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7편을 들고 나왔다”며 시의 탄생 과정을 꼼꼼히 짚어주었다.
그는 “20대에 처음 시 쓰기를 시작해 25년 동안 시를 써 오고 있지만 무엇을 쓰고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문제는 여전한 숙제다. 그러나 이런 순간을 경험하다보면 ‘맞아, 바로 이거 다’라는 감이 올 때가 있다”고 귀띔했다.
▲ 정끝별 시인 25년 동안 시를 써 왔지만 무엇을 쓰고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문제는 여전하다며 오기와 끈기를 가지고 몰입하면 '바로 이거 다'는 순간이 온다고 강조했다. ⓒ 최정애
“꾀를 부리면 몸이 물에 잘 잠기지 않습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일수록 수심의 깊이를 빨리 깨닫지요. 저의 경우 미술관이나 영화관을 자주 다니고 화집도 접하며 심신을 말랑말랑한 젤 상태로 만듭니다. 딱딱한 겔 상태에서는 기록갱신이 어렵습니다. 시인은 기록갱신을 하겠다는 오기와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어 “시인은 머리가 좋아야 한다. 그 머리는 학습능력은 아니다. 좋은 시인은 말하지 않는다. 건너뛰어도 이심전심으로 맑게 통하는 글을 쓰기 위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시인보다 더 시답게 쓰는 사람이 많지만 삶 자체가 시의 텍스트나 시인이 되지 않는다. 언어에 대한 기술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음악 미술, 철학 등을 두루 섭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대학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본 화집에서 모티브를 잡아 1988년에 쓴 데뷔작 ‘칼레의 바다’를 소개했다. 1347년 영국군대가 칼레(프랑스)를 점령한 뒤 시민이 시의 열쇠를 가지고 와 사형을 받을 것을 요구하는 장면에서 시인이 겪은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떠올린 것. 광주항쟁에 관한 내용은 지금까지 많은 시인이 다루었다. 정 시인은 이 문제를 다른 시인과는 어떻게 다르게 쓸 것인가를 위해 깊은 잠수 끝에 칼레의 바다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시도 과학이라고 정의한 그는 “문학은 시, 공간, 인물 등을 설정한 후에 과학적인 서술이 수반되어야 한다”며 유산의 아픔을 겪고 쓴 ‘옹관’을 소개했다. 여성의 자궁이 아이의 무덤이 되기도 한다는 데 착안해 옹관(甕棺)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풀이했다.
▲ 목요문학나들이에 초대된 정끝별 시인 6월 26일 부천 복사골문화센터 문화사랑 카페에서 열린 목요문학나들이에서 정끝별 시인은 '시가 말을 걸었다'라느 주제로 강연했다. ⓒ 최정애
‘먼 눈’을 쓸 때는 제목을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단다. 눈을 소재로 한 많고 많은 작품과 차별화할 수 있는 장치 하나는 눈을 비릿하게 본 점이다. 생선에 비린내가 난다고 하면 산문이지만 생선에 향기가 난다고 표현하면 시가 되는 것처럼 순백의 눈에서 비린내가 나고 먼눈으로 설정한 것이 이채롭다.
시는 때로 '그 분'이 오셔야 잘 써지는 데 '먼눈'은 시인이 쓴 것이 아니라 그 분이 와 들려준 것을 그대로 받아적기만 했다고 고백했다. 기자가 취재원에게 꼬치꼬치 정황을 묻는 모습을 빗댄 ‘그만 파라. 뱀 나온다’도 소개했다.
정 시인은 “시인은 보통 사람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것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고통이 시인의 양식이다. 고통을 시로 승화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로 2시간의 강의를 마쳤다.
한성희 주부는 “목요문학나들이가 열리는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은 문학소녀였던 꿈이 되살아난다. 지금까지 73회가 열리는 동안 빠짐없이 참여해서 작가들의 문학세계를 접한 결과 내 안에 꿈틀거리는 시가 쏙 나올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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