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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노동청 안전불감증이 그들을 죽였다"

주공 안산 신길지구 건설현장, 노동자 2명 잇따라 안전사고 사망 파문

등록|2008.07.02 14:08 수정|2008.07.02 14:08

▲ 지난달 27일 김아무개(39)씨가 철근에 찔려 사망한 안산 신길지구 K기업 건설 현장. 숨진 김씨는 붉은 색 숫자로 표시된 1구역에서 2구역으로 이동하다 추락해 변을 당했다. ⓒ 건설노조 제공



대한주택공사가 시행하는 안산 신길지구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최근 일주일 사이에 노동자 2명이 잇따라 안전사고로 사망해 '안전 불감증' 파문이 커지고 있다.

안전관리 감독기관인 경인지방노동청 안산지청은 사고가 발생하자 해당 건설사들에 대해 작업 중지명령과 함께 안전진단조치를 내리고, 사법처리를 위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건설노조는 그동안 사고 위험을 계속 지적했음에도 일부 건설사와 노동청이 이를 묵살하고 현장 안전관리 감독을 소홀히 해 사망사고로 이어졌다고 주장하고 나서 안전 불감증 파문이 감독기관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일 주일 사이 신길지구서 건설노동자 2명 안전사고로 목숨 잃어

최근 전국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와 관계기관에 따르면 6월 27일 오전 9시 40분쯤 대한주택공사 안산 신길지구 6공구 K기업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B건업 소속 철근공 김아무개(39·안산시 사동)씨가 작업장을 이동하다 약 1.5m 높이에서 추락했다.

이 사고로 김씨는 오른쪽 옆구리에 콘크리트 벽체에 세로로 박혀 있던 직경 1cm, 길이 45~50cm의 이음용 철근이 관통하는 중상을 입고 인근 H병원으로 옮기는 도중 숨졌다. 병원 관계자는 "김씨는 사고 당일 오전 9시 55분쯤 우리 병원 응급실로 긴급 실려 왔으나 이미 사망한 상태였으며, 사인은 철근에 의한 복부막 파열로 진단됐다"고 말했다.

▲ 콘크리트 벽체에 박힌 이음용 철근. K기업 현장에서 숨진 김아무개(39) 씨는 약1.5m 높이에서 추락하면서 이런 이음용 철근에 옆구리를 찔렸다.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철근 끝에 캡을 씌워야 하지만 그대로 방치돼 있다. ⓒ 건설노조 제공



건설노조가 목격자 진술 등을 근거로 자체 조사한 사고발생 경위에 따르면 이날 사고는 안전통로가 확보되지 않은 가운데 김씨가 602동 상판에서 작업을 하다 다른 작업구역으로 갱폼(벽체 전용 대형 거푸집)을 넘어 이동하던 중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일어났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사고 당시 602동 바깥쪽 가설계단은 회사 측이 자재를 쌓아 둬 작업자들이 다닐 수 없었고, 안쪽 비상계단은 해체작업 잔재로 오히려 더 위험한 상태였다"면서 "이 때문에 김씨 등 작업자들은 갱폼을 넘어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앞서 6월 21일에는 신길지구 4공구 S건설 현장에서 작업인부 김아무개(60)씨가 이동식 타워크레인에서 떨어진 무게 2.55t이 넘는 건설자재에 깔려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이날 사고 역시 안전 불감증이 빚은 참사였다. 사고는 오전 10시 30분쯤 305동 12층 옥상에서 갱폼 발판과 강관 등 건설자재를 내리는 과정에서 중량(2.4t)을 초과한 무리한 작업으로 크레인의 보조붐이 꺾이면서 건설자재가 아래로 떨어져 발생했다.  

건설현장에는 산업안전보건법 등에 따라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안전통로를 만들고, 추락 및 낙하물 방지망 등을 설치해야 된다. 또 철근에 찔리거나 긁히는 사고 방지를 위해 이음용 철근 등에 캡을 씌워야 하는 게 원칙이다.

▲ 건설노조의 경인지방노동청 안산지청-건설사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규탄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 자리에는 국제노동단체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 김한영



"건설사-노동청, 수차례 위험 지적 묵살"

그러나 이들 건설현장에서는 이 같은 안전조치가 미흡하고 관리감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노동자들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건설노조는 "지난 2월부터 위험한 환경에서 작업을 강행하는 K기업 현장에 대한 안전점검을 실시해 건설사와 노동청에 수차례 위험 문제들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했지만 이를 묵살한 채 현장 안전관리 감독을 소홀히 해 사망사고를 불렀다"고 주장한다.

▲ 김태범 건설노조 부위원장. ⓒ 김한영

6월 한달만 해도 10일, 12일, 20일 세 차례나 안전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제대로 시정되지 않아 K기업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고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청 근로감독관은 제대로 현장점검조차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사고가 나면 내가 책임지겠다" "노조의 산업안전 활동이 업무방해로 걸릴 수 있다"고 말하는 등 상식밖의 태도를 보였다는 게 건설노조 측의 주장이다.

건설노조는 "노동청은 건설사와 함께 안전사고 위험을 방치하다 결국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면서 "숨진 김씨는 최소한의 안전통로 확보와 철근 캡만 씌워져 있었어도 참혹한 죽음은 피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K기업 측은 숨진 김씨가 사고를 당한 직후 이동통로가 없자 타워크레인을 이용해 김씨를 들어 옮겼으며, 병원으로 후송한 뒤에는 곧바로 사고현장을 정리하고 작업을 강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건설노조 측으로부터 "파렴치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건설노조 "건설사와 노동청은 노동자들 사망사고 책임져라"

이와 관련해 건설노조는 30일 경인지방노동청 안산지청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건설현장 안전관리 감독 소홀을 규탄하고, 재해방지대책 마련 등을 촉구했다.

▲ 피어나 국제목공노련 국장. ⓒ 김한영


이날 회견장에는 6월 29~7월 2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산업안전보건대회 참석차 방한한 피어나(스웨덴) 국제목공노련 보건안전국장과 까르나 인도건설지역노조위원장 등 외국노동단체 관계자 4명도 참석해 지지를 보냈다.

건설노조는 기자회견에서 "신길지구 현장에서 발생한 건설노동자들의 사망사고는 건설자본과 노동부의 공동살인"이라며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은 죽음의 작업환경을 만든 건설사와 안전관리 감독 의무를 다하지 못한 노동청이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태범 전국건설노조 부위원장은 "죽지 않아도 될 건설노동자들이 안전은 외면하고 이윤만 좇는 건설자본과 노동부의 무책임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면서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만이라도 제대로 운영했다면 노동자들의 참사는 없었을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국제목공노련 국장 "근로감독관, 사용자 호주머니 들어가 있으면 안 돼"

특히 연대발언에 나선 피어나 국장은 노동당국에 거침없는 쓴소리를 쏟아내 관심을 끌었다. 그는 "최근 한국 노동자 2명이 건설현장에서 죽어갔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면서 "노조와 기업, 노동부가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대화할 것"을 주문했다.

또한 "한국 노동부의 근로감독관은 기업에서 독립적이지 못하고 노동자를 존중하지도 않는다고 본다"면서 "근로감독은 공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책임성과 도덕성이 있는 사람이 수행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근로감독관은 독립적이어야지, 사용자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으면 안 된다"면서 "그것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에 침묵하고, 공적인 업무를 완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끝으로 "근로감독기관인 한국의 노동부는 노조와 대화하고, 존중해야 노동자들의 죽음을 예방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 비계 파이프 위에서 안전벨트도 매지 않고 작업하고 있는 형틀목수 노동자. ⓒ 건설노조 제공



건설노조 관계자들은 기자회견 후 안산지청을 항의 방문해 이보간 지청장을 면담하려 했으나 자리를 비워 조태환 산업안전과장과 김영선 근로감독관을 대신 만났다. 이들은 건설노동자들의 사망사고를 부른 안전관리 감독과 책임 문제 등을 따지고 대책을 물었다.

이에 대해 조 과장은 "중대 재해를 일으킨 관련 기업들에 대해서는 안전진단조치를 내렸고, 엄밀히 조사해 모두 사법처리할 방침"이라며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재해예방대책이나 책임 문제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안산노동청 "사고 건설사 작업 중지 등 행정조치...조사 후 사법처리 방침"

또 이영철 건설노조 경기중서부지부장은 김영선 근로감독관에게 "건설노조의 안전사고 위험 현장 신고를 묵살한 이유가 뭐냐"고 따졌다. 그러자 김 감독관은 "지난 3월초부터 계속해서 신고가 들어왔으나 처리기간이 늦어졌을 뿐, 할 일은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감독관은 자신이 관리하는 건설현장 2곳에서 일주일 사이 2명의 노동자가 잇따라 숨지는 안전사고가 발생함으로써 결국 현장 안전관리 감독이 허술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건설노조와 면담이 끝난 뒤 김 감독관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사고조사와 처리결과, 건설노조가 제기한 문제 등에 대해 물어봤다. 김 감독관은 "사고 발생 당일 S건설엔 일부 작업 중지 명령을, K기업에 대해서는 전부 작업 중지 명령을 내렸고 2곳 모두 안전진단조치를 취하는 등 강도 높은 행정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는 K기업 건설현장에서 사망한 김씨가 안전통로가 확보되지 않아 갱폼을 통해 작업구역을 이동한 것과 관련해 "현장 조사결과 실제로 안전통로가 없었다"면서 "해당 건설사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위해 현재 정밀 조사를 진행 중에 있다"고 말했다.   

건설노조 측이 주장한 "사고 나면 내가 책임지겠다" "노조의 산업안전 활동은 업무방해에 걸릴 수 있다"는 등의 부적절한 발언 문제에 대해 그는 "책임지고 일을 처리하겠다는 취지에서 한 발언이며, '업무방해' 관련 발언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 감독관은 그러나 "건설노조 측에 자신 있게 얘기했다가 2곳에서 연달아 사망사고가 발생해 무척 곤혹스럽다"면서 "결과적으로 현장 안전관리 감독에 소홀한 셈이 됐으며, 앞으로 현장 안전관리 감독을 더욱 철저히 하겠다"고 밝혔다.

▲ K건설현장에서 헬멧 외에 아무런 안전장비도 갖추지 않은 건설노동자들이 비계 파이프 위에서 곡예하듯 타워크레인에 매달린 육중한 갱폼을 조립하기 위해 유도하고 있다. ⓒ 건설노조 제공



건설노조, K기업 현장 안전점검... 아찔한 위험 상황 곳곳서 포착  

한편 건설노조는 지난 2월부터 K기업 현장 안전점검을 실시하면서 문제 현장들을 촬영해 노동청에 제출하고 시정을 요구해 왔다. 건설노조가 일부 공개한 자료사진을 보면 곳곳에서 위험 상황들이 포착됐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모습들이다.

지반공사 현장에서는 한 노동자가 헬멧만 착용한 채 약4m 높이의 철제 사다리 위에서 작업을 하는 모습도 잡혔고, 또 다른 현장에서는 철근 작업자로 보이는 한 노동자 머리 위로 거대한 건설자재가 크레인을 통해 옮겨지는 장면도 찍혔다. 안전벨트 등 기본 안전장비도 갖추지 않은 노동자들이 비계 파이프 위에서 곡예하듯 크레인에 매달린 육중한 갱폼을 조립하기 위해 유도하거나 망치질을 하는 모습도 있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는 근로자가 작업 중 추락 및 낙하물 등에 의해 재해를 당할 수 있는 위험한 장소에는 안전조치를 취해야 하며, 이를 위반해 근로자가 사망했을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무거운 처벌규정을 두고 있다.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경우엔 즉시 작업을 중단시키고, 안전조치를 강구한 뒤 작업을 재개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5년 이하 징역, 5000만원 이하 벌금형이다.

또 노동부는 재해위험이 있는 사업장에는 작업 중지명령을 내릴 수 있고, 중대 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은 원인규명과 함께 안전진단을 실시토록 돼 있다. 그러나 노동부의 철저한 안전감독이 없는 한 건설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노동'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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