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바보들아! 세상은 산수가 아니란 말이야!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혹 떼려다 혹 하나 더 붙인 조중동
▲ 신부와 수녀, 일반 시민들이 30일 저녁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주최로 열린 비상 시국미사를 마친뒤 숭례문을 지나 명동 앞을 행진하고 있다. ⓒ 유성호
지난 주말 전쟁터를 방불케 했던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적 진압은 전형적인 '공포의 동원' 전략이었다. 촛불집회와 시위에 참여하는 것은 말할 나위 없고, 그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험'하다는 것을 각인시키려는 듯했다.
그들의 작전은 성공 직전까지 간 듯했다. 신부와 수녀들이 촛불을 지키기 위해 나오기 전까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을 더 이상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어 '촛불의 수호자'가 될 것임을 자임하고 나섰다. 기독교계와 불교계도 잇달아 시국기도회와 법회를 연다. 촛불이 꺼질 듯하자 뒤에 있던 촛불 응원군들이 나선 것이다.
살펴볼수록 기가 막힌 촛불이다. 여중고생들이 처음 촛불을 들었을 때 그 촛불이 이처럼 크게, 또 이처럼 오래 이어질 줄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촛불이 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목소리와 문화를 이렇게 꽃피울 것을 알아챈 이도 거의 없었다. 6·10 100만 촛불집회를 정점으로 촛불이 점차 사그라지자 이제는 반전의 계기를 잡았다며 역공에 나선 조중동이나 이명박 정권도 그 진압 작전의 시나리오에 '촛불응원군'은 미처 감안하지 못한 것 같다.
사제단 미사 의미 축소·폄훼에 급급한 조중동
그래서일까? 오늘(7월 1일) <조선일보>는 경찰의 대책회의 압수수색 사실을 1면에 '촛불 대표기사'라 보도하면서 정작 어제 '촛불'의 하이라이트인 사제단 미사 소식은 3면 귀퉁이에 배치했다.
<중앙일보>는 더했다. 이미 한물간 소식인 30일 새벽의 '거리시위' 풍경을 1면 기사의 주요 내용으로 전하면서 정작 새롭고 뜨거운 소식일 수 있는 어제 사제단의 시국미사 소식은 그 기사 끝에 혹처럼 붙여 놓았다.
사제단의 시국미사를 바라보는 <중앙>의 시각과 느낌은 5면에 별도로 배치한 사제단 시국미사 기사의 제목(불법집회 봉쇄했더니 사제단 "매일 미사")과 사설에서 잘 드러난다. <중앙>은 엄정한 법집행을 재차 강조한 사설(엄정한 법집행, 늦었지만 당연하다)을 실은 데 이어 사제단에 이어 기독교계와 불교계 등이 잇단 시국 기도회와 법회를 가질 예정인 데 대해 '성직자들이 불법 부추기는 모양새는 안 돼'라는 사설을 별도로 실었다. "종교계 진보단체가 불법 촛불집회에 힘을 보태는 모양새를 우려"했다.
<동아일보>는 그래도 사제단의 미사 사진과 기사를 1면에 배치해 면치레는 했다.
그러나 이들 세 신문은 사제단이 어제 발표한 성명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진단을 하면서 그 첫 번째 요인으로 '보수언론의 폐해'를 지적한 것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사제단은 성명에서 보수언론의 폐해를 이렇게 지적했다.
"먼저 보수언론의 폐해를 지적합니다. 참여정부 시절 광우병의 위험성을 무섭게 따지고 들다가 현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미국산 쇠고기의 절대 안전을 강변하는 조선·중앙·동아일보의 표변과 후안무치는 가히 경악할 일입니다. 정론직필의 본분의 버리고 이해득실에 따라 말을 뒤집는 언론의 실상이 널리 알려진 것은 만시지탄이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중·동으로서는 혹 떼려다 혹을 하나 더 붙인 꼴이 됐다. 인터넷에서 광고주 불매운동을 벌여 광고 수익에 결정적 타격을 주고 있는 누리꾼, 사옥에 온갖 스티커를 붙이는 것은 물론이고 현판까지 떼어 낸 '과격한 시위대'에 이어 이제는 '사제단'까지 상대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됐다.
어떻게 할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사제단도 '법대로' 엄단하라고 이 정부를 다그칠까? 그러면 이 정권은 또 어떻게 할까?
이명박 정권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청와대가 검경을 총동원해 강경 진압 작전에 나선 것은 '더 이상 밀리면 끝'이라는 위기의식에 보수세력의 결집이 절실한 이 정권으로서는 그 협조가 필수적인 조중동의 거의 강압에 가까운 주문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또 나름대로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이와 사태가 이렇게 된 만큼 '촛불진압'을 발판 삼아 그동안 구긴 체면도 살리면서 '힘있는 새출발'을 도모할 수 있으리라고 내심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제단이 그 모든 계산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누구 말대로 세상은 산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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