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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등등했던 정부·여당, 종교계 궐기에 '당혹'

시국미사 침묵지킨 한나라당... 청와대는 '사제단' 추켜세워

등록|2008.07.01 18:37 수정|2008.07.01 18:37

▲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총에 참석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미국산 쇠고기 추가협상 관련 의원들의 질문에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 유성호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등 종교계의 궐기가 정부여당의 강경대응을 잠재웠다.

한나라당은 1일 내내 촛불집회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는 야당의 국회 등원을 압박할 대책만이 논의됐고, 오후 의원총회에서도 민생문제에 대한 얘기만 오갔다고 한다.

전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불법 폭력시위는 공동체의 평화와 이익을 깎아내리는 해충"(강재섭 대표), "광기 어린 폭력집회"(권영세 사무총장)라는 가시돋힌 발언들이 나온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임채진 검찰총장만이 "더 이상 불법을 용인하거나 폭력을 눈 감는 모습을 다음 세대에 넘겨 줘서는 안된다"고 강경 입장을 재확인했지만, 너나없이 '촛불'을 짓누르려고 했던 정권 핵심의 기류에 일단 제동이 걸린 것은 분명하다.

유인촌 문화부장관 같은 이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 출연, 광우병대책회의와의 대화는 물론이고, 구속자 석방 논의 필요성까지 언급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도 기자들을 만나 "누구하고라도, 가능한 모든 대화를 해야 한다"고 온건론에 힘을 실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사제단을 "5~6공 시절 민주화할 때 많이 애쓴 분들"이라며 "비폭력과 자제를 강조하고 정부 잘못도 지적하시고 정말 잘하셨다"고 추켜세워 눈길을 끌었다.

반면, 여당의 한 당직자는 "(강경대응하는) 정부가 잘 대응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지만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조중동 보수신문의 '축소 보도'만 보고 전날 시국미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군중이 서울광장을 가득 메웠고, 일부 시민들이 가두행진에 합세했다"는 전언을 듣고 표정을 구겼다.

문화부 장관 '구속자 석방' 거론... 정부의 원칙없는 대응에 '비판' 목소리도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 등원 협조를 얻어내기 위해 강기갑 민주노동당 원내대표를 찾아가 "(촛불이) 거의 꺼져가고 있다"고 얘기했다가 강 원내대표로부터 "끈 게 아니라 곳간에 기름을 부어 다 태웠다"는 핀잔만 듣고 돌아섰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가 상황의 반전을 가져온 것이 여의도에서도 분명히 느껴진다.

사제단 미사에 이어 개신교와 불교계의 서울광장 집회가 줄줄이 잡힌 데 대해 여당 내에서는 "정부와 종교계가 싸우는 구도로 가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종교인들의 분노를 잠재울 해법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불교계의 '마당발'로 꼽히는 주호영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진보성향 불자들의 4일 시국대법회 소식을 듣고 "그런 걸 하기로 했냐? 나는 몰랐다"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촛불집회 원천봉쇄와 불법시위 근절 방침을 천명했던 정부여당이 하루 만에 사제단의 시국미사와 가두행진, 천막 설치 등을 맥없이 허용한 것을 놓고 "동일한 시위를 놓고 시위 주최에 따라 이중잣대를 적용함으로써 정부의 신뢰만 떨어뜨렸다"고 비판하는 의원도 있다.

그러나 촛불시위대와 '정면승부'를 하려는 여당의 방침에 변화의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반성과 쇄신이냐, 지지기반을 결집해 (보혁) 대결구도로 가느냐의 두 가지 선택이 있는데 당은 후자로 가고 있다"며 "오늘 의총에서도 '당이 이렇게 가서는 안된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주변의 만류로 생각을 접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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