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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헌법 69조 '대통령 선서문'을 아십니까?

[다섯 번째 편지] '대통령'은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 이일까를 고민하면서

등록|2008.07.02 09:02 수정|2008.07.02 09:02
지금 ‘거리국회’ 무대로 자주 쓰이는 서울시청 앞 광장은 이제 대통령님의 서울시장 시절과는 무관한 곳이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다들, 그저 누구나 오고가며 누구나 자유롭게 말하며 의견을 주고받는 곳이 되어야 할 ‘광장’이 시민들 손에 다시 놓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제껏 광장이라기보다는 대형 화단에 불과했던 곳에 어느 순간부터 본래 주인이던 시민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시면, 이는 참 좋은 일입니다.

대통령께서 서울시장 재임 시절 가꾸어놓으신 ‘화단’이 망가져 아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서울 광장이 본래 시민들을 위한 것임을 생각할 때 너무 아쉬워만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주변으로 수없이 자동차만 오가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대형 잔디만 덩그러니 남아있던 외로운 서울 광장에 사람들이 그득하니 오히려 기뻐하실 일이기도 합니다.

대통령께서는 5월 22일과 6월 19일 두 번이나 대국민담화를 하셨습니다. 물론 한 번은 갑작스레 특별기자회견 하에 발표되었지요. 어쨌거나, 대통령께서는 취임 100일을 전후로 두 번이나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리셨습니다. 그러나, 대통령께서는 지금 똑같은 국민 앞에서 다시 머리를 곧추세우고 눈빛마저 날카롭게 세우고 계십니다. 놀랍고도 황당하기 그지없는 ‘변신’을 보며, 이제 다시 대통령께 몇 말씀 드립니다.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의 목소리'입니다

쉼 없는 촛불문화제를 통해 거듭 국민 뜻이 모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께서는 늘 국민 뜻을 유심히 듣지 않으셨습니다. 국민 뜻을 헤아리지 못했음을 시인하신 듯하면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서울광장’을 외면하셨습니다. 지금 청와대는 마치 대통령 눈을 가리거나 세상을 왜곡하는 색안경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민주시민의 목소리가 아무런 메아리도 없이 다시 거리에 내동댕이쳐지는 상황을 보며,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국민 앞에서 머리를 숙이셨던 그 때를 헌 종이 조각 구기듯이 구겨서 주머니 속 깊숙이 박아두었습니다. 행여 다시 볼 일이 있을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런 날은 쉽게 오지 않을 듯합니다. 대통령님의 5년 임기가 참기 힘든 고역이 될까 두려울 정도입니다. 어떻게 좀 해결해주십시오.

여기서 잠시 헌법 제 1조를 함께 외워 보실까요?

제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요즘 거리 어디서나 ‘헌법1조’를 듣습니다. ‘헌법1조’는 이제 대한민국 ‘거리국회’의 핵심이 된 지 오래입니다. 그 안에 서면 대통령님마저 평범하기 그지없는 한 시민이 되셔야만 합니다.

그렇게 다시 평범한 한 시민이 되시는 게 영 못마땅하신 것인지 몰라도, 대통령께서는 여간해서는 청와대 시각, 한나라당 시각, ‘이명박’ 시각을 버리지 않으시려는 듯합니다. 한 번 세운 계획에 대해서 ‘추가 합의’는 있어도 ‘전면 수정’은 없다는 식의 행동을 반복하고 계시는 것을 보면 국민이 세상을 보는 시각과는 사뭇 다름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혹시 요즘 헌법을 보십니까? 그렇게 곳곳에서 ‘헌법1조’를 울려드리는데 설마 헌법 한 번 다시 살펴보지 않으신 것 아니겠죠? 국민 모두 헌법을 통해 민주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다시 생각하는 이 때에, 대통령께서도 같은 헌법을 통해 대통령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헌법 제69조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세'입니다

제69조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저는 수없이 울려 퍼지는 ‘헌법1조’를 듣다 문득 헌법 어딘가에 대통령 선서문이 있다는 걸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찾아보았더니 제가 기억하던 그 내용은 헌법 제69조에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알고 대통령직에 오르셨을 텐데, 설마 대통령직 취임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헌법69조를 모르시진 않겠지요?

헌법 제69조는 말합니다.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그리고 대통령께서 헌법을 준수하셔야 한다는 말은 국가를 보위하고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며 국민의 자유와 복리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은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되어야 할 것임도 뚜렷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는 국가 보위를 그저 대통령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가 있는 듯합니다. 어떤 이는 국가 보위를 그저 청와대를 지키는 것 정도로 이해하는 이가 있는 듯합니다. 남북 분단이라는 상황을 늘 무슨 ‘무기’처럼 사용하여 국가보위와 대통령직 안위를 정당한 인과관계 없이 연결시키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 보위에 대하여 대한민국 시민들이 아는 바는 사뭇 다릅니다. 대한민국 시민들이 헌법에 따라 이해하는 국가 보위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온전히 이해하고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충실히 따르는 대통령에게서만 제대로 실현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을 모르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대통령을 대한민국 시민들은 더 이상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연기되어 온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에 관한 고시가 결국 강행된 바 있습니다. 국민 목소리를 듣겠다고 하면서도, ‘폭력시위’라는 이름으로 국민 대다수의 목소리를 덧씌우며 처음 태도로 되돌아가신 꼴이 되었습니다. '폭력진압' 논란을 불러온 일련의 '변신'들이 그것을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국민 이름을 앞에 두고 읽으셨을 헌법 제69조의 ‘대통령 선서문’은 사실상 ‘일부 국민’이나 ‘다른 국민’ 앞에서 하신 셈이 되었습니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경찰과 시민들은 대통령님 대신 서로 얼굴을 맞대고 시국을 논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평소 같으면 웃으며 함께 어울렸어야 할 경찰과 시민이 얼굴을 붉히는 일들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대통령께서는 진정 무어라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지금 거리에서는 날마다 ‘헌법1조’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제, 대통령께서는 헌법 69조를 외우시고 되새김질 하실 때가 되었습니다. 되새김질 하지 않는 헌법 69조는 죽은 문구가 되어버리고 말 겁니다.

헌법 69조를 잘 읽으시고 되새김질 하신 후, ‘거리국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대한민국 국정 방향에 대해 전면 재고해주십시오. 언젠가 대한민국 국민들은 ‘헌법1조’ 노래에 ‘헌법69조’를 후렴으로 넣어서 부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헌법 69조는, 그 내용이 말해주듯, 대통령께서 먼저 읽으시고 불러주셔야 합니다. 물론, 대통령께서 헌법 69조를 어떻게 읽으시고 어떻게 되새김질 하시는지를 국민들은 또 지켜볼 것입니다. 그리고 헌법 1조는 평소처럼 곳곳에 또박또박 울려퍼지고 있을 겁니다.

대통령님 덕분에(!) 헌법을 조목조목 다시 보는 계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저부터 헌법 곳곳을 천천히 되새김질 할 것을 약속합니다. 대한민국을 파고든 모든 슬픔과 상처가 치료받고 모든 다툼과 나눔이 사라지길 바라며 이 편지를 보냅니다. 고맙습니다.
덧붙이는 글 다들 헌법 1조와 헌법 69조를 같이 보시면 좋겠네요. 청와대와 대통령을 새삼 다시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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