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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FTA 재협상 요구는 거절할 자신 있나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이명박 정권에 닥칠 '치명적 상황'

등록|2008.07.02 16:42 수정|2008.07.02 16:49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최근 쇠고기 파문에 유감을 표명하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 청와대 제공

'이명박의 퇴진을 반대한다!'

오늘(2일) 한 신문에 실린 기명 칼럼 제목이다. 조·중·동에 실린 칼럼이 아니다. <한겨레>에 실린 박명림 교수(연세대·정치학)의 칼럼이다.

그가 이명박 퇴진에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퇴진은 민주주의의 결정적 후퇴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그의 이런 판단의 준거와 타당성은 그 자체로 논의해볼만한 주제다. 하지만 오늘 칼럼의 주된 취지는 그게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퇴진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지만, 지금과 같은 식물대통령으로는 앞으로 정상적 국정수행도 불가능한 만큼 그 타개책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정치적·정책적 탄핵 상태'

박명림 교수의 오늘 칼럼에서 사실 주목되는 것은 이 대통령의 '정치적 상태'에 대한 분석과 그가 자초했거나 앞으로 직면하게 될 '자가당착적 상황'에 대한 예시다. 그것을 통해 박교수는 두 달여 동안 지속되고 있는 촛불민심의 근원을 추적해보고 있다.

박 교수는 이 대통령이 사실상 식물대통령 상태라고 진단한다. 박 교수는 이를 "헌법적 제도적 임기보장에 관계없이 '정치·정책적 탄핵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정리했다.

정치적 탄핵 상태란 임기 초에 10~20%로 곤두박질친 이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를 말한다. 임기초 10~20%의 낮은 지지도는 민주화 이후 처음이자 한국 정도의 민주주의가 진행된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낮은 지지도라는 것. 이런 '정치적 탄핵' 상태에선 향후 5년 동안 국정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것.

정책적 탄핵상태란 이명박 대통령을 국민들이 선택한 이유인 대선 핵심공약들이 모두 철회·중단·악화·역전된 상태를 말한다. 박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대선 공약인 '747공약'을 비롯해 '한반도 대운하' 공약 모두 파탄나거나 철회 상태라고 지적했다. 한미동맹을 복원하겠다는 공약 역시 쇠고기 추가 협상에 대한 미국의 태도(선고시-후서명)나 미 대통령 방한 철회·연기로 실종됐다고 지적했다(부시 미대통령의 방한 일정이 8월 5~6일로 확정됐다. 그러나 7월 초 방한일정의 연기가 백악관에 의해 일방적으로 발표된 데 이어 8월 방한일정 역시 백악관에서 일방적으로 발표해 한미동맹의 내용과 그 수준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의문케 하고 있다).

사실 새삼스런 내용은 아니다. 박 교수는 따라서 '이성적' '민주적'으로 쇠고기 국면을 끝내야 한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그 방법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교수가 든 다음의 두 가지 '자가당착적 상황'은 쇠고기 국면의 이성적·민주적 마무리는 곧 '재협상'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그가 제시한 자가당착적 상황은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과 그 '문제점'을 적확하게 짚어낸 것이기도 하다.

첫 번째 자가당착적 상황은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에 대한 이중적 태도다.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개방 협상의 잘못 등을 인정하면서 국가 간에 이미 체결한 '합의'여서 재협상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집했다. 박 교수는 그렇다면 기존의 남북 정상간 합의에 대한 태도는 무엇이냐고 묻는다. "'국가원수의 합의'인 6·15 공동선언과 10·4 합의는 '재협상'은 고사하고 '인정'조차 않"고 있지 않느냐는 물음이다.

정상간 합의도 백지화하다시피 하고 있으면서, 왜 그보다 훨씬 격이 낮은 '장관급 협정'에 대해서는 '국격'을 들어 재협상하지 못하겠다고 하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심각한 '자기부정'이자 국가의 '국제행위준칙'에 대한 부인이라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박명림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이 때문에 앞으로 더 결정적인 자충수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한미자유무역협정 전반의 재협상을 공언하고 있는 버락 오바마 미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상하 양원을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과 대통령에 당선된 버락 오바마가 한미자유무역협정의 재협상을 요구할 경우 이명박 대통령은 '재협상은 안된다'는 지금과 같은 원칙에 따라 미국의 재협상 요구를 거부할 것이냐는 물음이다. 그렇게 재협상을 거부할 경우 결국 한미FTA는 파탄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한미대결=동맹위기'로 갈 것인데, 이를 감수할 용의가 있겠느냐고 물었다.

비록 오바마 후보가 당선된다는 전제를 한 것이기는 하지만 박명림 교수의 지적은 날카롭다. 지금 당장 '촛불'을 진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박 교수가 예견한 것과 같은 상황이 돼 미국측과 '재협상'을 논의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명박 대통령은 '치명적인 상황'을 맞게 된다. 그 때는 파국적인 상황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쇠고기 파동'과 관련한 특별기자회견을 하며 답변자료를 보고 있다. ⓒ 연합뉴스 조보희

대통령 역할 재조정해 권한 내려놓아야

박명림 교수는 그래도 '이명박의 퇴진을 반대한다'고 했다. 앞서 말한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정치적·정책적 탄핵 상태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인 만큼 차선의 대안으로 '대통령의 역할'을 재조정할 것을 제안했다.

첫째 방안은 대통령의 정치적·정책적 후퇴 또는 퇴진이다(박 교수가 이 문장에서 사용한 퇴진이란 용어는 대통령직 사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책임총리를 임명해 역할분담을 하거나 국제·남북·교육 등의 국정분야를 내려놓고 경제회생과 민생증진에 집중하는 방안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나 민생 문제 정도만 챙기라는 이야기다.

두 번째 방안은 의회에 정책결정의 많은 권한을 내주는 준대통령제의 실시다. 의회(정당)와 내각간 정책 합의제도를 두어 주요 정책을 여기에서 결정하면 대통령이 이를 수용토록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특히 국민 이해와 직결된 사안에 대해서는 "대통령 개인 견해의 과도한 투입이나 반영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대통령의 헌법적 퇴진이나 현 상황의 지속 둘 다 모두 대한민국이나 대통령으로서는 '불행'한 일이어서 그 타개책으로 박 교수가 제시한 것이 바로 대통령 역할의 재조정이다. 그러나 이런 방안은 이명박 대통령이 권력의 절반 이상, 아니 사실은 이명박 대통령이 마음을 완전히 비워야 가능한 방안들이다. 현실적으로 무망해 보인다. 그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이 과연 이 쇠고기 국면을 합리적-이성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지 조차 의문이다.

그래도 '이명박의 퇴진을 반대한다'는 그의 주장에 주목하게 되면서도 향후 전망이 불투명한 이유다. 박명림 교수가 지적했던 것처럼 "현 정부는 임기 내내 정치·정책적 탄핵 상태에서 국정을 집행하거나,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지금으로서는 더 커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목부터 그렇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이 꼭 읽어보아야 할 칼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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