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이런 된장... 뭐가 이렇게 많이 올랐어?"

안 먹고 덜 먹고 건너뛰고 안 되면 얻어 먹고...이렇게만 살 수는 없다

등록|2008.07.04 10:20 수정|2008.07.04 15:08
난 매일 아침 출근길에 고2 딸애를 학교까지 태워다 준다. 착한 아버지라서가 아니다. 딸애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도 아니다. 통학버스비 3만원 주는 게 아까워 내가 조금 돌아 가면 되니까 그리한다.

요즘 시험기간이라 애 얼굴도 말이 아니다. 학교서 야간자율 학습 마치고 다시 독서실 갔다가 새벽에 온다. 딴에는 그게 또 안쓰러워 줄까말까 잔머리 굴리다가 만 원을 슬쩍 건넸다.

"무슨 영어 한 과목이 25만원씩 하는데..."

▲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학원가 ⓒ 성낙선

그런데 고맙다는 말대신 대뜸…,
"아빠, 학원비 내야 하는데요."
"얼만데?"
"25만 원."
"지난번에 20만 원이었잖아."
"아빠는 참, 그게 언젠데 그래. 원어민 강의가 더 늘어서 그렇단 말야."

요즘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데 그런 말씀이냐는 투다. 요즘 너그들이 잘쓰는 말로 '이런 된장'이다. 25만 원이라는 소리가 어찌 저리도 쉽게 나올까.

내게는 25만 원이 마치 25kg짜리 역기가 내 가슴을 짓누른 듯 했건만 딸애는 아무 감정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그렇지, 무슨 영어 한과목에 25만 원씩이나 하는데?"라며 버럭 목청을 높였다. 순간 딸애가 도끼눈을 흘기기에 아차 싶었다.

"알았어, 오늘 퇴근하면서 카드 밀고 올게."
"창피하게 뭐 학원까지 오시고 그래요. 그냥 입금하든지 현금 주시면 되잖아."

'이놈의 기집애야, 그래 너 주고 싶다. 아니 너 돈 주는 건 위험하니 무통장으로 입금해도 된다. 그런데 왜 내가 일부러 학원 가는줄 아냐. 말하기 거시기 하지만 3개월 할부하려고 한다, 왜. 매달 몇천 원 할부 수수료 내는 게 낫지 한꺼번에 25만 원이 어느 동네 도그 이름인 줄 아냐.'

나 원참 말은 못 하고 속으로만 씩씩거리고 있는데 이놈의 차까지 밥 달라고 불이 껌벅껌벅거린다.

"1500원 받은 지 한참 됐거든요"

"주유 끝났습니다. 4만8000원입니다."
"네? 4만5000원이면 됐는데…."
"손님 뉴스도 안 보세요. 오늘부터 리터당 50원 올랐잖아요."

또한번 속으로 '이런 된장'을 궁시렁 궁시렁거렸다. 뉴스도 안 본 한심한 놈됐다. 도대체 뭐가 이리도 많이 오르는가. 내려가는 건 배고파 홀쭉해진 내 배 위에 걸친 바지뿐 그 외는 다 오른 것 같다. 애를 내려다 놓고 나니 그 생각에 갑자기 배가 고프다. 학교 앞 분식가게가 보인다.

"1500원입니다."
"천원 아닌가요?"

잘못 들었나 싶다가도 이것도 뉴스에 나왔던가 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한번 더 물어 봤다.

"1500원 받은 지 한참 됐거든요. 그동안 한번도 안 사 드셨어요?"

이런 '왕된장'. 곳곳이 된장밭이네. 김밥 한 줄에 천원 하던 걸 1500원 받다니…. 돈도 그렇지만 50% 인상 이게 말이 되나? 진짜 김밥 옆구리 터진다. 남자가 쫀쫀하게 뭘 그만 일에 열받고 신경 쓰냐고 타박할 수 있다. 더 벌면 되잖으냐고 할 수도 있다.

애들 교육비에 매년 인상되는 각종 공과금, 삼베바지 방귀새듯 슬그머니 다 올라 버린 음식값. 예전에는 가끔 빈지갑이라도 막소주 한잔에 내일을 기약하며 직장 다니고, 애들 키워 나름 재미가 있었는데 어느덧 아, 옛날이 돼버렸다. 이제는 돈 달라는 자식이 '웬수'처럼 보여 내가 부모 자격 없는 건 아닌지 혼란스럽다.

돈 달라는 자식이 '웬수'처럼 보여...나 부모 맞아?

▲ 소주 한 잔 하며 쓰린 속을 달래본다 ⓒ 김귀현


다들 못살겠다, 죽겠다 난리들이다. 그러니 나만 어려운 게 아니고 나만 못나서 그런 거 아니니 그냥 묻혀서 살면 된다. 하지만 내 주변의 모든 남자들, 솔직히 남자로서 말못할 고민들을 저마다 가슴속에 큰바위 얼굴처럼 들어앉혀 놓고 있을 것이다. 가정과 사회 곳곳 어디라도 어려움에 어려움이 겹치니 환장하겠다.

퇴근 무렵 지친 기운 다소라도 '업'시켜 보려 사무실 근처 술집에 들어갔다. 조선 천지 어디가도 3000 원에 먹을 수 있는 우리의 국민주 '소주'. 이놈도 언제부턴가 도수가 낮아지면서 한 병이 두 병, 한 병 반이 세 병으로 늘어나 내 주머니를 갈취한다.

"아줌마 옛날 것 25도짜리 없어요?"

말한 내 입이 무안하다. 된장 된장, 정말 이러다가 점심 때마다 수도꼭지에 입 대고 한끼 건너 뛰는 건 아닌지 술이 확 깬다.

안 먹고 덜 먹고 건너뛰고 얻어먹고 그래도 안 되면 졸라매고. 늘 그리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남자라는 이유로' 엉덩이 밑에는 찔레 가시를 깔고 앉더라도 어쩔 수 없이 내가 사주면서 허리띠 풀어야 할 때도 있건만 요즘 같은 때는 참으로 답답하다.

"야, 나는 요즘말야 마누라가 한번 하자케도 하고나면 배 꺼질까봐 모른척 돌아누워 자삣다."

술잔 기울이던 친구놈 이야기에 웃다가 배가 더 꺼진 오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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