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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천에서 '선정'과 '폭정'을 생각하다

연산군, 광해군의 도주로로 쓰인 북문을 보며

등록|2008.07.06 10:59 수정|2008.07.06 11:42
지난 6월 29일 일요일 창덕궁으로 나들이를 갔다. 관람 예약을 하던 한 달 전만 해도 시원한 바람과 함께하는 '도시락 소풍'을 기대했건만, 6월의 마지막 일요일은 뜨거운 햇볕으로 손부채질 하기 바빴다.  언제 또 특별관람을 해 보겠냐며 비교적 입장이 자유로운 일반관람을 제치고, 정해진 시각의 옥류천 특별관람을 예약한 것이 화근이다. 오전 10시 시작인 관람을 위해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전력 질주,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며 닫힌 문을 기어이 다시 열고 들어간 시각이 오전 10시 3분.

부용지안내원이 부용정과 주합루 사이의 부용지를 설명하고 있다. ⓒ 손은영

정각에 입장해야 관람이 가능하다는 '관람객 협조사항'을 무시했으니 미리 도착한 관람객들의 눈총을 받아도 싸다.

"지금 오시는 분들도 일반관람을 하지 않으셨나요? 이 옥류천 코스는 일반관람이 필수예요. 학문 연마의 공간으로 쓰인 비밀화원을 '별다른 설명 없이' 마음으로 느끼는 코스거든요."

꼭 지각에 숙제까지 안 해 온 초등학생의 심정이었다. 별수 있나. 함께 온 남자친구와 "우리 다음엔 꼭 일반관람하자"라며 소근소근 다짐하는 수밖에.

그렇게 헐레벌떡 시작된 옥류천 관람에도 불구하고 오전의 숲 속 공기는 상쾌하기만 했다.

창덕궁의 정문격인 돈화문을 시작으로 관람은 시작되는데, 돈화(敦化)는 '(큰 덕은 백성들을) 가르치어 감화시킴을 도탑게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궁 정문의 이름으로 이처럼 '덕'을 강조한 걸 보면, 통치자가 백성을 감화시킬 가장 정확한 방법이 '공권력'이 아닌 '덕'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듯하다.

동양의 전통적 우주관을 표현했다는 '부용지'에서 잠시 숨고르기를 했다. 정조가 규장각 신하들과 낚시를 즐겼다는 곳인데, 개인적으론 은밀한 느낌의 옥류천보다 탁 트인 호수인 이곳이 더 아름다웠다.

부용정 옆의 주합루엔 임금이 지은 글이나 글씨, 임금의 초상화 등을 보관했었다고 한다. 이렇게 신성시 되던 곳이 나중엔 일본 관인들의 접대소로 변질됐었다고 하니, 국가의 자주성 상실이 얼마나 치욕스러운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실감했다.

부용정에서 존덕정과 폄우사를 지나면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우거진 숲으로 햇살 한 줌 들어설 공간 없이 이어진 길은 비밀화원이란 말을 실감케 한다.

옥류천 바위전날 비가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고인 채 흐르지 못하고 있다. ⓒ 손은영



"조금 힘드시죠? 예전의 왕과 선비들은 이 길을 산책하며 나라를 걱정하기도 하고 독서도 했을 겁니다. 관람이라는 생각보다 산책하는 마음으로 걸으세요."

아직 이마에 땀이 맺히진 않는다. 그래도 다리가 불편했다면 적잖이 힘들었을 길이다. 끊임없이 달라붙는 모기와 벌레에 손이 바빴지만, 서울 한복판에 이런 숲 속 산길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물론 궁의 모습은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그 모습이 서양식으로 많이 변해버렸다고 한다. 옛 성인들이 '변절을 상징한다'고 하여 심지 않았던 단풍나무도 이제는 창덕궁의 멋진 가을풍경에 한몫을 하고 있다.

지하의 고인들이 탄식할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다행 아닌가. 이 마저도 없었다면 조선 고궁의 모습은 서양의 선교사가 찍은 사진, 혹은 한국과 일본의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궁내 유일하게 물이 흐르는 곳인 옥류천은 전날 비가 왔음에도 채 흐르지 못하고 고여있었다. '후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간직하여 많은 임금들에게서 특히 사랑받았던 곳'이라곤 하지만 맑게 쏟아지지 못한 채 갇힌 인공폭포는 쓸쓸해 보였다.

옥류천 옆 북문안내를 듣지 않으면 모르고 스쳐지나갈 정도로,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북문의 모습이 작게 보인다. ⓒ 손은영



옥류천을 내려오는 길목에 나무로 가려져 거의 보이지 않는 문이 올려다 보인다. 궁의 가장 은밀한 문인 북문이다.

"예부터 북쪽은 음기가 흐르는 쪽이라 해서 저 문은 거의 열지 않는 문입니다. 주로 궁궐에서 죽은 궁녀나 내시들의 주검이 나갈 때 몰래 열리는 문이죠. 궁 안에서는 왕 이외엔 누구도 죽을 수 없거든요. 그런 은밀한 장소라 전쟁 중의 도피로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반정에 의해 쫒겨난 연산군과 광해군이 이 문으로 탈출을 시도하다 실패한 역사도 있습니다."

▲ 울창한 나무로 하늘을 다 보기 힘이 들 정도다. ⓒ 손은영

역사 속엔 선정을 펼쳐 후대에 '-대왕'으로 칭송받는 왕이 있는 반면, 폭군으로 가려져 '-군'으로 기록된 왕이 있기도 하다.

업적이라는 개념은 현 세대에 평가해 바로 결론을 내기가 어려운 면이 있다. 전, 후 몇 년이 아닌 수 십년의 역사를 조심스럽게 따져봐야 그의 옳고 그름을 겨우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현 정권은 바쁘기만 하다. 당장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실물경제'를 따져 실세를 잡더니, 눈가리개를 쓴 경주마처럼 코앞의 길만 보고 달린다.

국민들이 한 목소리로 아니라고 말해도 도무지 멈추질 않는다. 이러다 궁지에 몰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연산군과 광해군처럼 수하의 몇몇 신하의 호위만 받으며, 좁고 은밀한 북문으로 도망칠 것인가.

창덕궁을 나오며 오늘도 어김없을 촛불시위를 고민했다. 청와대 주인이란 명목으로 뒷산에 올라 민중의 촛불만 감상할 게 아니라, 선선한 오전에 창덕궁을 거닐며 '선정'과 '폭정'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어떨지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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