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고기를 먹지 않는 스님들이 거리로 나선 까닭은

시국법회에서 횃불 치켜 올린 승병의 자화상... '국민의 뜻이 부처의 뜻'

등록|2008.07.07 09:30 수정|2008.07.07 09:30
이야기로 듣거나 책에서 본 승병들이 여러 장면으로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머리띠 질끈 동여매고 창검을 휘두르며 질풍노도와 같은 기개로 침략군을 물리치던 모습, 도력을 시험하려 살점이 쩍쩍 묻어 날만큼 불을 땐 방문을 열었을 때 고드름이 주렁주렁한 모습을 보였다는 위풍당당한 어느 승장의 일화 등을 머릿속으로 그렸습니다.
지난 7월 4일 여간해서는 서울에 올라가지 않는 나그네가 서울에 올라갔습니다. 책에서나 본 승병들, '상구보리하회중생'이라는 승가 본연의 모습에서 벗어나 뭇 중생들이 당면해 있는 작금의 '미친소'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궐기하는 승병들을 볼 수 있는 기회기에 대한민국의 불교 1번지인 조계사를 기꺼운 마음으로 찾았습니다.  

▲ 참구정진 중이어야 할 산승들이 서울 한 복판, 서울광장에 모여 108배를 올리고 있다. ⓒ 임윤수

남들이야 뭐라고 할지 모르지만 세속이 제아무리 시끄러워도 어떠한 목소리를 내지 않던 수행출가자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시국법회를 연다는 소식은 승병들의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참구정진 중이어야 할 스님들이 서울광장으로 모인 것은 승병의 기개

조금 이르게 도착한 조계사는 평소일듯합니다. 나무그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법당에서 경전을 펴놓고 뭔가를 열심히 읽는 이들도 있습니다. 여기에 108배라도 올리는지 연거푸 절을 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어우러지니 도심 산사에서 느낄 수 있는 평온한 분위기입니다.

오후 4시쯤이 되니 각지에서 출발하였을 스님들이 속속 도착합니다. 부산에 있는 금정산, 원주에 있는 치악산이나 충남에 있는 덕숭산 선방에서 참구정진 중이어야 할 스님들이 조계사 대웅전에 들려 참배를 합니다.

▲ 2008년 7월 4일 2만여 불자들이 촛불 아래 모였다. ⓒ 임윤수

참배를 올리는 스님들의 뒷모습은 결전을 앞둔 전사의 비장함만큼이나 지극합니다. 5시가 되니 지금껏 도착한 스님들이 대웅전 앞마당으로 모입니다.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과 활짝 열어젖힌 문짝을 통해 마주 선 스님들 사이의 계단에 걸개 된 '국민의 뜻이 부처의 뜻입니다'라는 글귀에서 시국법회에 나선 스님들의 다짐이 드러납니다.

'국민의 뜻인 부처의 뜻'을 지키고 옹호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고난도, 어떠한 시련도 용맹정진을 하듯 기꺼이 실천하고 극복하리라는 결연한 각오쯤으로 들리는 삼귀의와 어둑한 세상을 밝혀 줄 광명의 빛줄기가 들어있는 반야심경을 독송하는 것으로 시국법회의 전의를 다짐합니다.

시국법회에 임하는 스님들의 자세는 오롯한 침묵이며 평온입니다. 결전에 나서는 용사들이라면 창검이나 죽창을 움켜쥐어야 할 손에 연등이 들리고, 외마디 함성으로 기선을 제압하거나 승전을 알려야 할 입에는 묵언을 물었습니다.

▲ 조용한 조계사에 '이명박 정부는 기독교공화국?'가른 걸개가 걸려있다. ⓒ 임윤수

조계사를 출발하는 스님들의 행렬은 장엄하고도 비장합니다. 누구 하나 외마디 소리 내지 않았지만 산천을 움직일 만한 울림이 일었고, 어느 누구도 분개한 얼굴빛 하나 보이지 않았지만 어리석은 치자(治者)들을 나무라는 사자후 같은 불호령이 서려있었습니다. 

'국민의 뜻이 부처의 뜻입니다'

광화문 거리를 빼곡하게 메울 만큼 엄청난 수의 스님들과 불자들이 함께하는 행진이라서 그런지 도도하기만 한 대하의 물결입니다. 오로지 걸으며 기도하고, 오로지 침묵하며 염원할 뿐이니 졸졸거리며 흘리던 치자들의 도랑물 같은 꼼수쯤은 무시해 버릴 것 같은 대하의 도도함입니다.

가다 서다를 반복지만 흐트러짐도, 넘쳐나지도 않는 대오의 물결입니다. 사거리를 지나고 청계천을 건너는 동안 시국을 걱정하는 구국의 일념은 가일층 오롯해지고, 침묵의 함성은 더 큰 울림이 되어 대오의 행렬을 늘려갑니다.

▲ 죽창검 대신 연등을 밝혀 든 스님들의 모습은 승병의 기개였다. ⓒ 임윤수

입술을 꾹 다문 채 걷고 또 걷기만 하는 스님들, 고기를 먹지 않으니 쇠고기문제와는 상관없을 것 같은 스님들이 이렇듯 세속의 거리로 나선 것은 조계사 뜨락에 걸개 되었던 '국민의 뜻이 부처의 뜻'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찌감치 서울광장에 모여든 사람들이 침묵하며 걷는 스님들을 환호성으로 맞이합니다. 시민들이 입 모아 내는 환호성이 외로움의 울부짖음이며 항거의 외침, 담벼락을 흔들 만큼의 함성이었다면 그때까지도 흔들리지 않는 스님들의 침묵은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위정자들을 후려치는 천지를 흔들어 버릴 장군죽비의 불호령이며 일전불퇴의 단호함을 내보이는 뇌성벽력의 할파(喝破)였습니다.

서울광장으로 집결을 한 스님과 불자, 시민들이 시국법회를 엽니다. 금빛 번쩍이는 불상 하나 모시지 않았고, 사람들의 시선을 모을 만한 괘불탱화 하나 내걸리지 않았지만 '국민의 뜻을 부처의 뜻'으로 자리매김한 법회라서 그런지 여느 법회보다 장엄하고도 지극한 예불입니다.

문제를 보는 혜안과 분명한 해답이 담긴 스님들의 법어

시국법회의 공동추진위원장인 수경 스님은 "국민의 정당한 주권행사가 국가 권력의 폭력에 의한 공포 때문에 주저앉고 말면, 앞으로 우리 국민의 삶은 생존 자체가 굴욕이 된다"며 "불제자로서 이러한 상황을 그냥 지켜본다는 것은 여러 부처님과 조상님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는 말로 시국법회를 열게 된 배경과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 주위가 어두워 질수록 연등빛은 점점 밝아졌다. ⓒ 임윤수

수경스님은 이어진 법어에서 "대통령은 보수언론의 방패에 숨지 말고 진솔한 모습으로 국민들과의 진정한 소통을 해야 한다"라며 "국민들이 바라는 소통의 형태는 불가항력적 상황에서 항복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진심으로 국민에게 사과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계속되는 법어에서 수경스님은 "물로 불을 끄려면 모두가 패배자가 되고마니 더 큰불로 세상을 밝히자고 대통령께서 제안하십시오. 그러면 국민들은 믿음으로서 지혜를 드릴 것입니다." "IMF때 금모으기를 하고, 얼마 전 태안 기름 유출사건 때 자발적으로 현장에 달려가던 국민과 촛불을 든 국민이 다르지 않으니 당신이 섬겨야 할 국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라는 말로 문제해결의 열쇠를 대통령에게 건넸습니다.

스님께서는 "사부대중 모두는 오늘의 모든 허물을 나에게로 돌리는 참회의 기도를 통해 하늘과 땅, 자연이 감응하여 우리 모두를 돕도록 하자"는 당부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 참가한 스님 중에는 눈푸른 납자, 외국인 스님도 있었다. ⓒ 임윤수


이어진 법어에서 조계종 교육원장인 청화스님은 "쇠고기는 보면서 광우병을 보지 못하고,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보면서 한국의 국민들은 보지 못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촛불시위의 허물은 보지만 대통령의 잘못은 보지 못하고 추가협상까지는 보지만 재협상은 보지 못하고 뼈아픈 반성까지는 보지만 고쳐야 할 것은 보지 못합니다" 라는 말로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한 눈을 감았거나 아니면 대통령이라는 콩깍지가 씌어서 한 쪽 눈의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로인해 한 가지만 보거나 한 쪽만 보는 잘못이 있습니다"라는 주장을 부연하였습니다,

청화 스님 역시 다음과 같은 말로 지혜의 해답을 건네십니다.

"캄캄한 방에 촛불을 밝히면 일시에 어둠이 사라지듯, 잘못을 깨달으면 그 잘못의 허물도 금방 일소됩니다. 양쪽을 다 보지 못하고 한 쪽만 본 것 때문에 쇠고기 협상에 있어서 대통령으로서 막을 것을 막지 못하고 지킬 것을 지키지 못한 점, 그러면서 반대급부도 없이 오히려 주기만 하고 물러서기만 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시력은 정상적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따라서 두 눈으로 보면 미처 보지 못한 것도 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재협상의 당위성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국민의 뜻을 좇아 재협상을 선언하고 그로인해 부정적으로 보였던 모든 고정관념이 해소되어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대통령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 연꽃등을 밝혀 든 손들이 아름답다. 이런 모습 어디에 폭력성이 있는가? ⓒ 임윤수

청화 스님의 법어가 끝나니 법어의 일부분이 사회자의 선창으로 참가자들의 이구동성이 되어 서울 하늘에 울림으로 퍼져갑니다. 청와대에서도 들렸을 이구동성의 울림 속에는 작금의 시국을 해결하는 백효의 열쇠가 담겼습니다.   

한 눈으로 보면 / 촛불만 보이지만 / 두 눈으로 보면 / 촛불 속의 영혼까지 보입니다. /씽씽 바람이 되는 이여 / 알아야 합니다. / 영혼이 있는 촛불은 / 폭풍도 끄지 못한다는 것을. / 이 촛불 앞에서 / 두 눈으로 보면 / 안 보이던 종달새의 / 노래 소리도 다 보이는데 / 그대는 어찌하여 / 한 눈을 감고 / 두 뿔로 들이 받는 쇠귀신은 보지 못하면서 / 안 보이는 금송아지 꼬리만 보인다 합니까.

어두워질수록 오색광명으로 빛나는 연등과 촛불

법회가 진행되는 내내 분위기는 진지하면서도 화기애애합니다. 상존이 어려울 것 같은 엄숙과 발랄함이 공존하는 오묘한 질서입니다. 스님들이 법어를 내리니,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전종훈 신부님은 "성불하십시오"라는 인사말로 화답합니다.

신부님께서는 "고기도 안 드시는 스님들이 왜 화가 났나?"라면서 "지금의 쇠고기 사태는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것이다. 소수의 통상이익에 눈이 먼 대통령과 정부의 굴욕적 협상의 결과다. 우리 종교인의 책임이 제일 크다. 이 자리는 참회로서 새 희망을 낳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라고 종교의 벽을 훌쩍 뛰어 넘는 찬조연설을 하였습니다.  

조계사에서 서울광장까지

ⓒ 임윤수

앙증스러움이 뚝뚝 흘러내릴 것 같은 유치원생들의 합창에 사부대중은 발랄한 박수와 합창으로 힘을 모으고, 득도한 고승만큼이나 무애한 문규현 신부님의 신앙심은 108배의 동참으로 이어집니다.  

법회를 마친 스님들과 시민들은 가두행렬을 시작합니다. 주위는 컴컴해졌고, 주위가 어두워질수록 스님과 참가자들이 밝혀 든 연등과 촛불은 또렷한 광명으로 밝아집니다. 창검이나 죽창을 대신해 주위가 어두워질수록 밝아지는 연등을 손에 든 스님들과 불자들, 기선을 제압하려는 외마디 함성보다는 침묵을 선택한 불자들과 시민들의 발걸음은 승병의 기개를 넘어선 용맹스러움이며 도인의 도력을 초월한 구도자의 참구였습니다. 

상상하던 승병의 모습,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고 죽창검을 든 승병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신음하는 시국의 대열에 동참해 '국민의 뜻을 부처의 뜻'으로 받들려는 스님들과 불자, 시민들이 마음이야말로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며 구국의 일념으로 횃불을 치켜 올린 승병의 자화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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