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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아직 '승리'하지 않았다

'천민 자본주의'의 '천민'에 맞설 구심점 절실

등록|2008.07.07 14:46 수정|2008.07.07 14:46

▲ 6일 청와대에서 교도통신·BBC와 합동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 청와대 제공


"촛불 시위가 계속될 경우 한국경제의 미래에 매우 해롭다."


일본 방문을 앞둔 이명박 대통령이 6일 <교도통신> 등과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외국정부와의 협상은 물론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한 외국투자자들의 인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란다.

그랬다. 그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두 달 넘게 타오른 촛불에서 그가 배운 것은 고작 '국민의 눈높이'였다. 하지만 그것조차 잘못 배웠다. 촛불이 바다를 이루었을 때, 그는 국민의 눈높이를 미처 몰랐다고 언죽번죽 '해명'했다. 국민이 너그럽게 넘겨줬지만, 기실 얼마나 오만방자한 말인가. 

'국민의 눈높이' 들먹였던 대통령의 오만방자 여전

최근 들어 말을 아낀다고 하지만, 톺아보면 결코 아니다. 집요하게 촛불 시위를 비난해왔다. 국민의 눈높이를 여전히 잘못 읽고 있어서다. '경제 살리기'를 강조하면서 촛불을 들먹이는 언행이나, 현 상황을 '성장통'으로 언구럭 부리며 소폭으로 한 '땜질 개각'도 그 연장선이다.

그래서다. 상황과 문맥을 이해하고 있지만 단호하게 말하련다. 지금은 '승리'를 선언할 때가 아니다.

물론, 이미 60회 넘게 타오른 촛불 시위가 무장 타오르기란 어려운 일이다. 새로운 전환점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아직 '승리'하지 못한 사실을 승리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보라. 이명박 정권의 신자유주의 논리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의 '경제 살리기'에 국민 건강권은 여전히 뒷전이다. 노동자와 농민의 아우성도, 청년실업자들의 절규도 마찬가지다.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고 공기업을 사영화하고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겠다는 '목표'는 지금도 내심 서슬 푸르다. 대운하를 않겠다는 공언에도 '국민이 원하면'이라는 조건이 붙어있다.

이명박식 경제성장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촛불이 물어왔지만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촛불은 청와대와 한나라당, 부자신문이 합창하는 경제 살리기가 '위선'임을 이미 밝혔다. 저들의 경제, 저들의 살림살이는 지난 10년 동안 결코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누가, 내각의 누가, 지난 10년 동안 어렵게 살아왔던가. 되레 재산을 불려오지 않았던가. 부익부 빈익빈을 더 심화시키겠다는 게 바로 지금 저들의 '경제 살리기'다. 전형적인 '천민자본주의자'들의 작태다.

최근 대하소설 <녹두장군>을 복간한 송기숙 선생을 무등산 자락에서 만났을 때다. 군사독재 시절 해직과 옥고의 고통을 겼었던 작가는 "줄곧 천민자본주의를 비판해왔는데, 천민자본주의의 바로 그 천민이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다"고 개탄했다.

작가는 촛불을 든 시민들의 열망은 녹두의 횃불과 이어져있다고 <녹두장군> '복간 후기'에서 강조했다. 오늘의 촛불문화제처럼 그때도 민중은 횃불 아래 자유토론을 벌이고 축제마당을 열었다.

촛불시민 주체로 새로운 연대의 틀 만들어 갈 때 

그 뒤 지금까지다. 이 땅에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민중의 꿈은 아직 실현되지 못했다.

그렇다. 지금은 '국민승리'를 선언할 때가 아니다. 참으로 '국민 승리'를 선언할 그 날을 준비할 때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 나오는 새로운 사회는 한 판의 승부로 오는 게 아니다.

촛불의 열망을 '승리'로 구현할, 한국 정치에 온전히 반영할 길을 찾을 때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 박원석 상황실장이 "국민대책회의를 넘어서는 연대의 틀이 필요하다"고 토로한 데 공감하는 이유다.

그 연대의 틀을 만들 누군가를 기다릴 때가 아니다. 촛불을 든 모든 민주시민이 연대의 틀을 만들 주체다. 촛불 시민 개개인이 그 틀을 만드는 데 기꺼이 나서겠다는 결기와 슬기가 절실한 오늘이다. 아래로부터 민주-진보세력의 큰 단결을, 연대를 일궈갈 때다. 인터넷을 활용해 '천천히' 구심점을 만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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