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1년 비정규직법, 재계 압력에 흔들
경제계 "경제난 감안 비정규직법 완화해야"... 노동계 "무력화 시도"
▲ 지난 6월 27일 오후6시 울산 북구 홈에버울산점 앞 광장에서 열린 '이랜드투쟁 1주년 울산투쟁문화제'에서 비정규직 여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울산노동뉴스
비정규직법이 시행 1년 만에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경제계가 어려운 경제상황을 강조하며 비정규직법 완화·시행 유예를 정부에 요구하고 나선 가운데, 노동계는 "친기업적인 이명박 정부가 경제계의 '비정규직법 무력화' 주장을 수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후 이랜드 사태처럼 일부 사용자가 이 법의 허점을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가 악화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노동계는 비정규직법 보완을 요구해왔지만 정부는 "지켜보자"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경제계 "비정규직 사용기간 2년→4년 연장해야"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2일 내년 7월로 예정된 100인 미만 사업장 비정규직법 시행 확대와 관련, 차별처우 금지조항 유예를 정부에 요청했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 300곳 중 77.3%가 비정규직법 시행에 대한 대응 계획이 없다는 내용의 설문조사 결과도 발표했다.
이어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4일 기획재정부·지식경제부·노동부 등에 '비정규직보호법에 대한 업계 의견 건의문'을 전달했다. 건의문엔 ▲비정규직 사용기간 4년으로 확대 ▲비정규직 사용기간 제한 예외대상 50세 이상으로 확대 ▲차별금지 조항의 100인 미만 사업장 확대 유예 등의 요구가 담겼다.
건의문에서 대한상의는 현재 최대 2년인 비정규직 사용기간과 파견기간을 4년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년은 지나치게 짧아 기업의 인력 운용의 유연성을 저해하고, 대규모 계약해지를 초래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대한상의는 "전체 고용의 78.6%를 차지하고 있는 10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차별금지 조항을 적용하면 고용시장에 심각한 위축을 초래한다"며 이들 사업장에 대한 차별금지 규정 확대 적용을 당초 계획된 내년 7월에서 3년 유예해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김기태 대한상의 노사인력팀장은 "비정규직법 시행이 1년이 되고, 개선방향 논의가 진행되는 시점에서 실태조사를 통해 비정규직법을 완화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이번에 우리 입장이 반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친기업' 이명박 정부의 노동부, 경제계 주장 수용할까?
▲ 오래만에 모습 드러낸 이영희 노동부 장관김경한(가운데) 법무부장관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 별관 4브리핑룸에서 "폭력시위 엄정 사법처리" 내용을 담은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이영희 노동부장관, 원세훈 행정안전부장관, 김 법무장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조중표 국무총리실장. ⓒ 연합뉴스 전수영
경제계의 비정규직법 완화 주장과 관련, 노동부는 아직 확실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기권 노동부 근로기준국장은 7일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전체 고용의 63%를 차지하는 5~99인 사업장에서 비정규직법이 확대 시행되는 내년 7월을 유의해야 한다"면서도 "(비정규직법 보완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을 단계가 아니"라고 말했다.
또한 이 국장은 "건의문 내용은 경제계가 지금껏 주장해왔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비정규직법의 취지는 차별해소와 고용유연성 확대에 있다"고 강조했다.
기획재정부 인력정책과 관계자는 "경제계가 우리에게 규제완화의 일부분으로서가 아닌 비정규직 완화라는 특정한 사안을 요구한 것은 처음"이라며 "노동부 등 관련 부처와 잘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친기업적인 이명박 정부 들어 경제부처 눈치만 보는 노동부가 경제계의 요구를 대폭 수용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요즘 이영희 노동부 장관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법무부가 공안 대책을 발표할 때 끝에 한 자리 차지하고 있을 뿐"이라며 "경제계의 비정규직 완화 요구에 대해 노동부가 독자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경제부처의 주장에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이영희 장관은 "정리해고가 불가능하지 않다", "현행 근로기준법이 근로자를 과보호하고 있다"는 등 사용자 쪽에 치우진 정책 추진의사를 밝혀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노동계 "중소기업 경영난은 비정규직법 아닌 강만수 경제팀 탓"
▲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 연합뉴스 박지호
우문숙 민주노총 대변인은 "비정규직법의 노동자 권리 보호는 턱없이 못 미치는 것으로, 이마저도 사용자들이 2년 이상 정규직화 내용을 악용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이 박탈되고 있다"며 "이를 4년으로 늘리자는 것은 정규직화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경제계의 주장은) 우리 사회 양극화 문제를 비정규직에게 떠넘기고 희생을 강요하고 이를 구조화하는 것"이라며 "중소기업 문제는 비정규직을 더 많이 사용해서 해결할 게 아니라, 원·하청 불공정 거래 해결 등의 정부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유선 소장은 "경제가 어려운 건 외적인 요인도 있지만 강만수 경제팀 때문에 꼬인 것"이라며 "중소기업 경영난 해소를 위해서는 경제팀 교체부터 먼저 요구해야 한다, 경제계가 비정규직법에 대해 이데올로기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며 경제계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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