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 원로 물먹인 대전시장?...'거짓 약속' 논란
"부시장 통해 답변하겠다더니...찾아가니 문전박대"
▲ 대전지역 시민사회 원로들이 7일 오후 대전시장실을 방문했으나 '부시장을 통해 책임있는 답변을 하겠다'고 한 박성효 대전시장의 약속과는 달리 "그런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는 비서진의 대답만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 14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월평공원 갑천지키기 주민대책위원회 농성장' ⓒ 오마이뉴스 장재완
14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월평공원갑천지키기주민대책위원회(대표 조세종) 농성장을 방문한 박성효 대전시장이 실천되지도 않을 '거짓 약속'으로 시민사회 원로들을 '헛걸음'하게 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현재 대전시청 북문 앞에서는 조세종 주민대책위 대표를 비롯한 주민 김윤기, 선창규씨 등 3명이 14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또한 이들과 함께 공평공원 주변의 주민들이 매일 릴레이로 단식농성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단식농성에 들어간 이유는 대전시가 추진하고 있는 동서대로(일명 월평공원 관통도로) 건설을 막기 위해서다.
지난 2년간 월평공원 관통도로 건설 반대운동을 벌여 온 주민들은 대전시가 올해 초 금강유역환경청으로부터 사전환경성 검토를 마치고, 최종 행정절차인 '도시계획위원회' 통과만을 남겨 두자 이를 막기 위해 지난달 24일부터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대책위는 "아파트 미분양 사태와 대전시 주택수급상황 등을 고려할 때, 월평공원 관통도로 개설의 근거가 되고 있는 서남부권 개발 규모의 축소가 불가피하다"며 "최소한 서남부 개발 2·3단계가 확정되기 전까지만이라도 월평공원 관통도로 개설을 유보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주민들의 주장과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는 대전시가 맞서면서 단식 농성은 10일을 넘기게 됐다.
이에 대전지역 시민사회 원로들이 나서게 된 것. 김조년 한남대 교수와 김종기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장, 남상호 대전대 교수, 박안드레아 천주교 대전교구 총대리 신부, 유낙준 성공회 나눔의 집 지도신부, 윤정현 그레고리 성공회 대전교구 총사제 신부, 황장곡 백제불교회관 관장 등 대전지역 시민사회 7명의 원로들은 7일 오후 2시 대전시청에서 '주민단식농성 해결을 위한 중재안 발표 기자회견'을 열어 "대전시와 시민사회,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사회적 협의기구를 구성해 이 난관을 함께 해결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원로들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박성효 대전시장에게 '제안서'를 전달하기 위해 시장실로 향했으나 박 시장이 출타중이어서 만나지 못했다. 문제는 여기에서 일어났다.
농성장 찾은 박성효 시장 "부시장 통해 책임있는 발언하게 할 것"
▲ 조세종 월평공원갑천지키기주민대책위원회 대표가 메모한 일지. 이 곳에는 박성효 대전시장이 6일 오전 11시 10분경 농성장을 방문, '부시장이 참석해 책임있는 발언을 할 것'이라는 메모가 기록되어 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박 시장은 지난 6일 오전 11시, 농성장을 방문하여 "내일 원로들이 방문할 때에는 제가 출타중이어서 만나지 못하므로, 부시장이 참석해 책임 있는 발언을 하게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는 것.
이러한 박 시장의 약속은 농성장에 있던 조세종 대표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함께 들었고, 조 대표가 작성한 농성일지에도 정확히 메모되어 있다.
이러한 대전시장의 약속만 믿고 출타한 시장을 대신해 박찬우 행정부시장과의 면담과 책임 있는 답변을 기대했던 시민사회원로들은, "우리는 그러한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는 비서진의 이야기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실제, 대전시에 확인한 결과, 박 시장의 약속과 관련한 지시를 받은 부서는 아무 곳도 없었다.
결국 '제안서'를 시장 비서실에 전달한 원로들은 발길을 돌려 농성장으로 향해야 했고, 농성장에서는 박 시장을 성토하는 비난이 쏟아졌다.
주민 대표 "하루만에 약속 뒤엎고, 원로들 문전박대"
조세종 대표는 박 시장과의 대화를 메모해 놓은 일지를 보여 주면서 "휴일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직접 농성장을 방문해 '부시장을 통해 책임 있는 답변을 하겠다'고 말해 너무 고맙게 생각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하루만에 약속을 뒤엎고, 어렵게 나선 원로들을 문전박대하는 대전시장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 선창규씨는 "냉대도 이런 냉대가 어디 있느냐"면서 "이는 주민들을 무시하고, 시민사회를 무시한 처사로, 어떤 방식으로든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이번 원로 선언을 주선한 김종남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도 "정말 황당한 일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시민들은 이 뜨거운 폭염 속에서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데, 지켜지지도 않을 약속으로 이렇게 실망을 안겨 주고, 힘을 뺄 수 있느냐"고 분개했다.
원로 선언에 참여했던 김조년 교수는 "원로들이 나서서 어렵게 단식하시는 분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 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어 대단히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했고, 장곡 스님은 "우리 원로들의 무게가 덜 나가서 그런가 보다,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전시 "황당하다... 그런 지시 받은 바 없다"
반면, 대전시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시장비서실 관계자는 "시장님이 그러한 지시를 한 바 없고,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바도 없다"고 말했다. 부시장 비서실 관계자도 "처음 듣는 이야기이고, 부시장님은 처음부터 별도의 일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대책위와 의사소통을 해 온 도시관리과 관계자도 "시장님의 그러한 지시를 들어 본 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부시장과의 면담을 애초에 주선하려고 했으나 환경단체 쪽에서 부시장과는 면담을 하지 않겠다고 했었다"며 "이제 와서 갑자기 부시장과의 면담이 성사되지 않았다고 반발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송용한 대전환경운동연합 간사는 "부시장과의 면담을 원하지 않은 것은 대전시장의 책임 있는 답변을 기대하기 때문 아니냐"며 "시장이 직접 농성장에 찾아와 부시장을 통해 책임 있는 답변을 하겠다고 말한 것보다 더 확실한 약속이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장의 '거짓 약속'과 실무진의 '모르는 일'이라는 태도에 시민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난했다.
"시민사회 협의기구 구성을 제안한다" 대전지역 시민사회 원로 7인의 제안서 내용 요약 |
▲ 7일 오후 대전시청 브리핑룸에서 '시민사회 협의기구' 구성을 제안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대전지역 원로들. 왼쪽 부터 장곡 스님, 김조년 한남대 교수, 유낙준 성공회 신부. ⓒ 오마이뉴스 장재완 7명의 시민사회원로는 이날 발표한 '박성효 대전시장님과 주민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을 간곡히 호소합니다'라는 제목의 제안서를 통해 '시민사회 협의 기구 구성'을 제안했다. 이들은 제안서에서 "우리는 월평공원과 갑천의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한 주민들의 2년에 걸친 진정 어린 노력을 지켜보았다"며 "주민 여러분의 한결같은 노력으로 월평공원의 생태적 가치는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지역과 언론에서도 월평공원을 새롭게 조명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어 "대전시 또한 이러한 주민들의 외침과 노력에 답하여 생태적 피해의 최소화를 위해 금정골 계곡을 피하는 노선을 개발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무엇보다 월평공원과 갑천지역을 생태경관보전지역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하기로 실무적인 협의 절차를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전시와 주민들은 의견의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대전시는 여전히 올 해 안에 월평공원 관통도로를 공사를 시작하겠다는 입장이고, 주민들은 마지막 행정절차인 도시계획위원회를 앞두고 단식농성으로 맞서고 있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졌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면서 원로들은 우선 주민들을 향해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자신의 몸과 건강을 해치며, 이웃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면서 "지난 14일간의 노력으로도 여러분의 마음이 충분히 대전시민들에게 전해졌으니 이제 삶의 터로 돌아가 이웃들과 함께 월평공원과 갑천을 지켜내는 길을 찾아볼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고 요청했다. 이들은 또 대전시장에 대해서도 "지금껏 성의를 다해 노력해왔듯 월평공원 관통도로 문제 또한 적극적인 대화와 소통을 통해 묘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면서 "시정의 가치와 방향을 결정함에 있어 오늘 당장만 아니라 먼 미래를 함께 고민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끝으로 "지금은 우리 대전의 미래를 위해 서남부개발은 물론 장기적인 대전의 발전계획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때"라면서 "대전시와 시민사회 그리고 주민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협의기구 구성'으로 이 난관을 해결해 나갈 것을 제안드린다"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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