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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근과 월굴이 한가로이 왕래하니

에로틱한 분위기가 넘쳐나는 산, 순창 회문산

등록|2008.07.08 11:51 수정|2008.07.08 12:08

회문산으로들어가는 길 옆으로 회문산에서 내린 시원한 계곡이 따라 흐르고 있다. ⓒ 전용호


회문산의 첫인상, 친절한 안내

7월5일 아버지 모시고 아내와 함께 순창 회문산(回文山)에 가기로 했다.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올라가다 곡성 옥과 나들목에서 27번 국도를 타고 순창으로 향했다. 길 옆으로는 7월의 싱그러운 논들이 초록 물결로 일렁인다. 참 편안한 풍경이다. 올망졸망한 산들 사이로 비집고 가다보니 순창이 나온다. 고추장이 생각나는 고을. 순창하면 고추장. 단순한 것 같지만 엄청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순창 읍내를 지나 북으로 올라가니 임실군을 살짝 걸쳐 회문산자연휴양림으로 들어간다. 회문산에서 내린 물줄기는 바위들을 만나면서 하얗게 부서진다. 골이 깊다. 시원스럽게 굽이치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니 휴양림 매표소가 나온다.

"산에 갈려면 어디로 가야 되요?"
"일단 내려서 이리 오세요."

"산행을 즐기시려면 빙 돌아오는 4시간 코스가 있고요, 중간까지 올라갔다가 등산로 따라 돌아오는 2시간 코스, 힘드시면 헬기장까지 차가 올라가니까 1시간이면 다녀올 수도 있습니다."

매표소 직원은 안내도를 펼쳐 보이며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비목공원, 누구를 위한 공원일까?

시간이 낮 12시를 넘어선 지 오래라 휴양림까지 차로 올라갔다. 산림문화휴양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왼쪽으로 난 임도로 길을 잡았다. '6·25양민학살위령탑'이 하늘을 보고 서있다. 부끄러운 역사를 인정한 상징물이다.

위령탑과 비목공원6.25 양민학살 위령탑 뒤로 비목공원을 조성하여 놓았다. 비목 숲길을 따라 가면 '비목' 노래비와 '비목을 위하여' 시비가 있다. ⓒ 전용호


위령탑 뒤 비목공원으로 난 산길을 따라 올라가니 '비목의 숲' 표지와 함께 너무나 유명한 '비목' 노래비가 있다. '초연이 쓸고간 깊은 계곡 ♪~~' 숲길을 따라가니 작은 광장에 '평화의 탑' 조형물이 양손을 붙잡고 멀거니 서있다. 아래에는 '화합과 평화를 상징하는 기도'라고 써있다. 주변에는 나무를 십자로 만든 비목을 세워 놓았다.

누가 쏜 총알이었는가
동족상잔의 서러운 역사
소쩍새 애절한 울음으로
구천을 헤매어 온
한 맺힌 원혼이여 - 권진희 <비목(碑木)을 위하여> 일부

우리나라 오대명당, 오선위기혈

비목공원을 가로질러 임도로 나왔다가 다시 등산로로 들어섰다. 장마철 잔뜩 머금은 습기가 온몸을 감싼다. 땀이 줄줄 흐른다. 사우나가 따로 없다. 휴양림에서 달아 놓은 명찰은 나무를 다시 보게 한다. 곰의말채, 다름나무 등 처음 들어보는 나무 이름도 있고, 방금 비목공원을 지나왔는데 비목나무라는 명찰도 있다.

하늘을 덮은 숲길산이 깊다. 물기가 촉촉히 젖은 숲길을 따라 올라가는 길 ⓒ 전용호


구름에 쌓인 회문산그리 높은 산은 아닐진대 구름이 산을 덮는다. ⓒ 전용호


하늘을 가린 숲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임도와 다시 만나고, 주능선인 헬기장이 나온다. 산길을 걸은 지 45분 정도 됐다. 늦은 산행에 점심시간도 훌쩍 지났다. 아버지는 점심을 먹으면 올라가지 못한다고 그냥 올라가자고 한다. 싸온 수박을 몇 조각 먹고 정상으로 향했다.

오르는 길 중간중간 묘들이 많다. 묘에는 어김없이 털중나리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회문산은 우리나라 오대 명당의 하나로 24명당과 다섯 신선이 바둑을 두는 오선위기혈(五仙圍碁穴)이 있다고 해서 많은 묘들을 썼다고 한다. 잘 정돈된 묘들도 있지만 묵어버린 묘들도 보인다. 명당은 땅에 있는 게 아니라 후손들의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닐까?

에로틱한 분위기가 넘쳐나는 산

헬기장에서 30여분 올라가니 소나무가 하늘로 가랑이를 벌린 여근목(女根木)이 묘한 형태로 유혹하고 있다. 안내판에는 6·25전란 전후 빨치산 토벌을 위해 온 산이 불바다가 됐음에도 살아남은 영험한 나무라고 소개하고 있다. 가랑이 가운데 작은 구멍에는 물이 고여 있다.

"이거 보려고 이산에 오잖게 아니야?"

아내가 장난스럽게 눈을 흘긴다.

여근목육감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는 여근목 ⓒ 전용호


바로 위 작은지붕(봉우리 이름)을 지나 구름에 싸인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15분 정도 올라가니 반듯한 바위에 큰 글자를 써 놓았다. 천근월굴(天根月窟). 전서체로 쓰인 글씨는 1900년 초 정읍 태인 사람인 동초(東樵) 김석곤(金晳坤, 1874~1948)이 명산을 두루 다니면서 새긴 글씨 중 하나라고 한다.

천근월굴의 유래는 중국 송(宋)나라 때 시인인 강절(康節) 소(邵) 선생의 유가의 시 가운데 주역(周易) 복희팔괘(伏羲八卦)를 읊은 다음 싯귀 중에 나오는 글로써 음양의 변화·조화를 말하고 있다고 하며,

天根月窟閑往來(천근월굴한왕래)
三十六宮都是春(삼십육궁도시춘)

천근(天根)은 양(陽)으로 남자(男子)의 성과 월굴(月窟)은 음(陰)으로 여자(女子)의 성을 나타내어 음양(陰陽)이 한가로이 왕래하니 소우주(小宇宙)인 육체가 모두 봄이 되어 완전하게 한다는 뜻이라고 안내판에 쓰여 있다.

천근월굴근자에 남자의 거시기. 굴자는 여자의 거시기를 잘 표현하고 있다. 글자에까지 야릇한 분위기가 넘쳐난다. ⓒ 전용호


글자모양을 자세히 보면 남자의 거시기와 여자의 거시기를 잘 묘사해 놓았다. 뛰어난 상상력이다. 어찌 후끈 달아오르는 기분이다.

큰지붕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정상

정상이 가까워지고 있는가 보다. 안개가 점점 많아지고 바람이 소리를 낸다. 헬기장에서 50분정도 걸렸다. 산 밑에서는 한시간 35분 정도. 적당한 산행 거리다. 정상(837m)에는 작은 안테나가 서 있으며, 큰지붕이라는 표지를 세워 놓았다.

회문산 정상정상에 아담한 안테나. ⓒ 전용호


회문산 정상큰지붕이라는 표지를 달고 있다. 아버지는 무슨 기원을 드리고 있을까? ⓒ 전용호


아버지는 정상이 어디냐고 물으시더니 가져온 술과 음식을 간단하게 차려 놓고서 예를 차린다. 안개에 싸인 정상은 산 아래를 보여주지 않는다. 늦은 점심을 먹었다. 쌈채소에 돼지고기 복음과 갈치속젓을 싸서 먹으니 맛이 너무나 좋다.

내려가는 길은 반대쪽으로 잡았다. 여전히 하늘을 보여주지 않는 산길은 완만하게 계속 이어진다. 간간한 산들바람을 맞으며 도란도란 한참을 내려오니 작은 샛길이 보인다. 정상에서 출발해 40여분을 걸었다. 작은 표지판에는 안내 문구가 없었지만 걸어온 거리상 이정도에서 내려서야 할 것 같아 아래로 내려섰다.

빨치산, 그들은 실패한 선택이었을까?

약간 경사진 편안한 숲길을 20여분 내려서니 사방댐이 나온다. 휴양림에서 여름에는 풀장으로 활용하나 보다. 작은 다리를 건너니 시멘트 도로가 나온다. 맞은편으로 빨치산사령부라는 안내판이 서있다. 안내판에는 빨치산을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나라 빨치산은 일제에 의한 징병, 징용을 피하고 그들과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처음이었다. 우리가 말하는 빨치산은 남한의 단독선거, 단독정부 수립에 맞선 제주도 4.3사건과 1948년 10월 여순반란사건에서 비롯되어 조직화, 본격화된 좌익 빨치산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세력을 규합하여 지리산을 은거지로 삼아 6·25 사변을 전후하여 군·경과 민간인들에게 많은 재산과 인명피해를 주면서 그들의 앞날에도 피의 죽음을 가져다준 장본인으로 되고 말았다.

빨치산 사령부안보 홍보용으로 복원해 놓은 빨치산 생활 모습. ⓒ 전용호


이곳 회문산에는 빨치산 전북 도당 사령부와 정치훈련원(노령학원)이 있었다. 당시 칠백명 정도로 추정된 빨치산들이 활동하였으나 1954년 완전 진압되었다고 한다. 컴컴한 굴 입구에 전등을 켜고 들어섰다. 처참했던 당시의 모습을 안보학습용으로 복원해 놓았다. 얼떨결에 따라 들어온 꼬마는 음산하고 무서운 분위기에 엄청 울어버린다.

빨치산, 그들은 잘못된 선택을 하였을까? 당시 그 많은 사람들이 사상만으로 빨치산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몸부림이었으나 성공하지 못했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회문산에는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으며 입장료를 받는다. 어른 1000원, 청소년 600원, 어린이 300원. 주차료는 승용차 기준 3000원/1일.
휴양관 이용료는 비수기 4만원~6만원이며, 성수기에는 7만원~9만8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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