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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서 숨진 재중동포 노인, 1년째 장례 못 치러

[동포아리랑 ⑥]1년 넘도록 영안실 냉동고 안치...아들은 어디 있나요!

등록|2008.07.08 18:43 수정|2008.07.17 22:16

▲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입원 당시의 한재준 할아버지. ⓒ 조호진

1년 전 조국에서 숨진 한 재중동포 노인이 영안실 냉동고에 안치된 지 지난 7일로 1년째이지만 자식이 종무소식이어서 장례를 치를 수 없는 안타까운 처지다.

한재준(사망 당시 77·흑룡강성 오상현) 할아버지는 2002년 9월 아들 부부와 함께 조국 땅을 밟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고국을 찾은 기쁨도 잠시, 2006년 2월 병든 그는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에 버려졌다.

노인을 데리고 온 40대 여성은 며느리란 사실을 감춘 채 오갈 데 없는 노인을 봉양하는 맘씨 좋은 아주머니인 척했다고 한다. 며느리는 링거 한 대만 맞춰달라고 부탁한 뒤 종적을 감추었다. 결국 병원 관계자와 자원봉사자들이 자식을 대신해서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다.

노인은 아들이 언젠가 데리러 올 것이라고 믿었다. 자식이 원망스럽지 않느냐고 질문할 때마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며느리는 2007년 설날에 과일 등을 사들고 병원을 한 차례 찾았다가 슬그머니 사라졌고, 같은 해 11월에는 고향 사람이라는 여성이 찾아와 노인의 안부를 묻고 갔지만 아들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노인은 지난해 7월 7일 사망했다. 견우와 직녀도 일 년에 한 번 만난다는 칠월칠석, 노인은 오매불망 기다리던 아들을 영 만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사망한 지 1년이 지나도록 하늘나라로 떠나지도 못한 채 차디찬 영안실 냉동고에 누운 노인은 여전히 아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아들을 찾습니다... "한국과 중국정부의 도움 시급"

노인을 돌보던 '외국인노동자의집/중국동포의집'(이하 외노집)은 아들을 찾기 위해 중국대사관과 출입국사무소 등으로 수소문했지만 벽에 부딪쳤다. 중국대사관 측은 "유가족이 한국에 온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힐 뿐이고, 출입국사무소는 "개인정보를 알려줄 수 없고, 확인도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딱한 외국인노동자들의 장례를 무료로 돕고 있는 H장례식장도 화가 났다. 지난 4월 24일  외노집에 시신처리를 촉구하는 최후 통고서를 보내면서 "오랜 안치로 시신의 부패가 시작되고 있다"면서 "부득이 법적인 조치를 취하기 전에 시신을 즉시 처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주한 중국대사관의 무성의한 태도도 문제다. 외노집은 그 동안 수백 통의 전화로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지만 미온적인 답변에 그치자 지난 5·6월엔 2차례에 걸쳐 통고서를 발송했다. 사망 1주기인 7월 7일까지는 유족을 찾아 장례를 치를 수 있게 하거나 아니면, 장례를 대신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중국대사관은 "사체를 원만히 해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답변에 그쳤다.

누구도 돌보지 않는 중국동포 및 외국인노동자 시신 1600여구를 처리해 온 외노집 대표 김해성 목사는 병든 아버지를 버리고, 황천 가는 길까지 외면한 비정한 '코리안드림'에 안타까워하고 있다.

김 목사는 "비록 아버지를 버리고 간 자식이지만 한국에 사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데 유가족 동의 없이 장례를 치를 수는 없는 일 아니냐"며 "하루라도 빨리 유가족을 찾아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한국과 중국 정부의 도움이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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