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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표시하는 게 원칙" vs "그럼 장사 못해" "원산지 표시제 복잡" vs "방법을 연구하세요"

[현장] 단속반 동행취재... 112명이 108만 곳 단속, 허리 휘겠네

등록|2008.07.09 08:53 수정|2008.07.09 08:53

▲ 8일 오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단속반이 서울 방배동의 한 음식점에서 원산지 표시제를 단속하고 있다. ⓒ 선대식

"원산지 표시제가 잘 안 돼 있네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단속반)
"사장님 안 계세요. 말씀 드릴게요." (음식점 종업원)
"팸플릿 놓고 갈게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단속반)

8일 오후 서울 방배동의 한 음식점에 원산지 표시제 단속을 위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아래 농관원) 단속반이 들이닥쳤다. 여러 대의 언론 카메라도 뒤쫓았다. 긴장되는 순간, 단속반과 음식점 종업원 사이에 대화에서 맥이 빠졌다.

이날 농산물품질관리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공포됨에 따라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가 100㎡ 이하 음식점과 급식소에도 확대됐다. 하지만 이날 단속반이 방문한 음식점 중 원산지 표시제가 제대로 된 곳은 거의 없었다.

이에 단속반조차 "홍보하러 나온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언론사 카메라 때문에 단속반이 '영업방해'로 쫓겨나기도 하기도 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시작된 단속은 오후 4시가 돼서 끝났다. 이날 단속반이 들어간 음식점은 10여 곳에 불과했다.

내년엔 단속반 112명이 전국 108만 곳 단속해야

농관원 단속반인 김석현·이지현(가명) 주무관을 만난 건 오후 2시 서울 사당역. 이날 농관원 단속반은 홍보를 위해 여러 언론사에 단속 현장을 보여주기로 했다. 서울 사당동을 단속하기로 했지만, 이날 단속한 음식점의 소재지는 모두 방배동이었다.

농관원 단속반이 처음 단속한 A 음식점은 원산지 표시제가 잘돼 있었다. 문에서 '100% 국내산 쌀과 배추를 쓴다'고 표시돼 있었다. 100㎡ 이상 음식점에선 지난 6월 22일부터 쌀에 대한 원산지 표시제가 실시됐고, 오는 12월 22일부터는 돼지고기와 닭고기, 배추김치에 대해서도 시행될 예정이다.

식당 안을 둘러본 김 주무관은 "식당 안 메뉴 게시판에도 다소 작긴 하지만 원산지 표시가 잘 되어 있다"고 밝혔다. 언론 카메라들은 식당 한 가운데서 단속반을 인터뷰하고 식당 안 이곳저곳 촬영했다.

이에 음식점에 들어오려던 손님이 발길을 돌리자, 음식점 종업원은 "요새 어려운데, 언론사까지 데려와 단속을 하느냐, 들어오려던 손님들도 나간다, 영업방해하지 말라"며 강하게 항의했다.

쇠고기 구입 영수증을 확인하고 냉장고를 열어 쇠고기를 살펴보는 등 실질적인 단속이 이뤄져야 했지만, 결국 종업원의 등쌀에 밀려 쫓겨나듯 나왔다.

▲ 8일 오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단속반이 서울 방배동의 한 음식점에서 원산지 표시제를 단속하고 있다. ⓒ 선대식

김 주무관은 "오늘은 언론사가 붙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평소 때도 단속은 쉽지 않다"며 "음식점이 붐비지 않는 오전 10~11시, 오후 2시~4시 사이에 단속한다, 보통 10~15군데 정도 음식점을 살펴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를 포함해 농관원 서울출장소 직원은 모두 23명. 하지만 서울지역 음식점 숫자만 12만 5000개다. 9월까지의 계도기간, 10~12월 특별단속기간이 끝나면 본래 원산지 표시제 단속 업무를 맡은 출장소 직원 12명만이 이들 음식점 단속을 책임져야 한다. 김 주무관은 "1년 내내 꼬박 홍보만 해도 모자를 판"이라고 전했다.

농관원이 단속해야 할 곳은 일반 음식점·휴게 음식점·집단 급식소 등 전국적으로 모두 64만 3000곳. 대형마트 정육점 등 기존 단속 대상인 유통업체까지 더하면 모두 108만 곳을 단속해야 한다.

특별단속기간에는 농관원 직원 1000명이 투입되고 지자체, 민간 명예 감시원 3500여 명도 함께 한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농관원 단속반 112명과 명예감시원 500명만이 단속 업무에 투입될 실정이다.

김 주무관이 한숨을 쉴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12월 22일부터 돼지고기·닭고기·배추김치에 대한 원산지 표시제가 시행될 예정이지만, 인원 확충 계획은 없다. 그는 "이명박 정부는 공무원 숫자를 동결했다"며 "돼지고기·닭고기는 음식 종류도 많은데…"라며 말을 흐렸다.

100㎡ 이하 음식점, 원산지 표시 부실

▲ 8일 오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단속반이 서울 방배동의 한 음식점에서 원산지 표시제를 단속하고 있다. ⓒ 선대식

이날 농관원이 단속한 100㎡ 이하의 소규모 음식점 대부분은 원산지 표시제가 부실했다. 어떤 곳은 국내산 쇠고기만 쓴다는 팻말을 붙여 놓았지만, 정작 메뉴게시판에는 '우삼겹 호주산'이라는 표시가 분명했다.

오후 3시 단속반이 규모가 100㎡ 이하인 B 음식점의 문을 열었다. 이곳은 냉면 등 쇠고기가 들어간 음식에 대한 원산지 표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김 주무관이 "원산지 표시가 잘 안 돼 있다"고 지적하자, 음식점 종업원이 "우린 모른다, 사장님 오면 말하겠다"고 대답했다.

이에 이 주무관이 8면짜리 '음식점 원산지표시 가이드 북'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고 나왔다. 다른 100㎡ 이하 음식점에서도 같은 장면이 반복됐다.

이날 가장 많이 지적된 사항은 원산지만 밝히고 그 종류를 밝히지 않은 것이었다. 같은 국내산이라도 한우·젖소·육우 등으로 나눠야한다.

한 수입 쇠고기 전문점 사장 안아무개(54)씨는 "국내산이라도 다 한우가 아니고, 젖소·육우 등 질이 떨어지는 것도 많다, 국내산이라고 다 좋은 게 아니다"라며 "수입산을 국내산으로 둔갑하는 경우가 주위 식당에 많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4년 전부터 삼겹살집을 하다가, 지난해 8월 미국산 쇠고기 전문점을 오픈했는데 아주 망했다,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협상을 잘만 했어도 이렇게 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 "까다롭다" 아우성... "방법을 연구하세요"

이날 단속반이 방문한 음식점들은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가 까다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음은 단속반이 찾은 C 음식점에서 단속반과 음식점 종업원 사이에 오고간 대화 내용이다.

"다 한우 쓰는 거죠?" (김 주무관)
"차돌박이 같은 경우는 그날 따라 사정이 달라요. 한우 올 때도, 육우가 올 때도…." (음식점 종업원)
"법에 따라, 그날 어떤 걸 쓰느냐를 표시하는 게 원칙이에요."
"식당에서 매일 그렇게까지 해서 장사할 수 없어요."
"방법을 연구하세요."
"그걸 나라에서 알려줘야지."

음식점 종업원은 짜증을 내며 "그럼, 한우가 와도 그냥 육우로 하는 걸로 하겠다"고 말하자, 이 주무관은 "안 된다, 정확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단속반을 맞은 음식점들은 "요즘 어려운데 단속 나오고, 언론사에서도 나와 손님이 더 안 온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이들에게 불청객은 또 있었다. 이 음식점 종업원은 "요새 '당신 가게는 원산지 표시제 잘 하고 있느냐'며 전화통에 불난다, 파파라치 때문에 장사를 못하겠다"고 전했다.

이날 오후 4시 단속이 모두 끝났다. 100㎡ 이하 소규모 음식점을 대상으로 홍보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 주무관은 "사람도 없고, 앞으로 여름인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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