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 그 배짱의 근거는 뭔가
[지역언론 별곡 236] 패배하면 업계 전체에 불똥... 지역신문은 심란하다
▲ '다음'에 뉴스를 공급하고 있는 언론사 명단에 조중동의 이름이 빠져있다. ⓒ 다음
당시 라디오 방송사엔 보도국이 따로 없었고 진행자가 통신기사나 신문에 난 기사를 읽어줬다. 앵무새 저널리즘의 전형을 보여주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신문사가 일방적으로 뉴스 공급을 중단했으니 속보에 사활을 거는 방송사들로써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방송과 신문의 전쟁, 신문의 승리로 끝나는 듯했지만
그런데 그 조건이란 굴욕 이상의 것이었다. 방송은 하루에 오직 10분간만 뉴스를 보도할 수 있고, 그 10분 뉴스조차도 광고를 붙여서는 안 되고 신문이 배달된 뒤에 보도할 수 있었다. 신문과 방송의 갈등은 뉴스 경쟁일 뿐 아니라 광고 경쟁이었기에 방송사들의 치욕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표면적으로는 신문의 일방적 승리 같이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신문은 더 강력한 경쟁자를 키웠다. 이 전쟁을 계기로 방송사가 자체 보도국을 신설하고 독자적 뉴스망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문기사나 베껴쓰고 통신뉴스나 읽던 방송들은 방송의 특성를 살리는 속보성 있느 뉴스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이어 아나운서가 읽는 뉴스에서 방송기자가 육성으로 보도하는 '리포팅' 뉴스로 바뀌게 되면서 상황은 역전되기 시작했다.
결국 새로운 '방송 언론'이 탄생하면서 신문은 더 큰 강적을 만나게 되고 말았다. 그 결과, 신문은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전파 미디어의 속도를 활자 미디어가 따라잡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광고시장에서도 속보성과 영향력이 강한 방송사들에게 속속 영역을 내주고 말았다. 이래저래 신문은 방송과의 전쟁에서 참담한 패배를 감내해야만 했다.
그런 1920년대식 신문과 방송의 전쟁을 연상케 하는 상황이 지금 국내에서 펼쳐지고 있다. 신문과 인터넷 포털과의 전쟁이 그것이다.
1920년대식 신문-방송 전쟁, 한국에서 펼쳐지나
지난 7일부터 <조선일보> <위클리조선> <중앙일보> <동아일보> <주간동아> <여성동아>의 기사가 포털사이트 '다음'에 전송되지 않았다. 이들 조·중·동은 다음의 토론광장 '아고라'의 네티즌이 미국산 쇠고기 사태와 관련해 자사 광고주의 제품 불매운동을 펼치는 것에 반발해 '다음'에 기사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지난 1일 특정신문의 광고중단 댓글에 대해 일부 위법 판결을 내린 후 <조선> <동아> <중앙>이 포털 다음을 향해 총공세를 벌이고 나선 것이다. 조·중·동은 이날 사고와 기사 등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밝혔다. 사실상 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다.
▲ 포털사이트 <다음>지난 7일 조중동의 뉴스 서비스 중단에 관한 <다음>의 공지글. ⓒ 다음
<조선>은 이날 1면에서 "작년 12월 말로 '다음'과의 뉴스 제공 계약이 만료됨에 따라 최근까지 재계약을 협의했으나, 최근 '다음'의 비합법적 비도덕적 행위가 계속되어 부득이하게 뉴스 공급 중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동아>도 1면 기사에서 "3대 신문사는 다음이 뉴스 콘텐츠의 저작권 침해 방지 노력이 미흡했고, 뉴스 콘텐츠를 자의적으로 배치하면서 사회적 여론의 왜곡을 불러왔다고 판단해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중앙>은 2면 사고와 기사 등을 통해 "뉴스 저작권 침해와 포털의 책임성 부족 등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협상은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조·중·동과 포털 <다음>과의 전쟁이 언제 어느 방향으로 불똥이 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국면이다.
이들 과점 보수신문들의 뉴스공급 중단은 신문의 입장이 우월한 상황에서 시작됐다. 1920년대 미국 신문의 악몽을 완전히 잊은 것일까. 만일 포털이 뉴스보도 기능을 자체적으로 강화하고 나설 경우 방어기제는 있기나 한 걸까. 신문의 우월적 위치나 승리를 끝까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듯하다.
포털사이트의 뉴스 서비스는 다분히 인터넷신문에 준하는 언론성을 띠고 있음에도 언론중재법과 신문법 등 관련 법규의 적용을 받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의제 설정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에서 과거 방송사들이 신문과의 전쟁에서 그랬던 것처럼 취재력과 뉴스보도 기능을 강화한다면 신문은 또 한 차례 치욕적인 패배의 쓰라림을 맛보게 될 것이다.
포털사이트가 언론매체로서의 자체적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지만 주류 언론의 뉴스보도에 비해 그 영향력이 날로 증대되고 있는 것만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최근의 사례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수용자 만족도·신뢰도에서 모두 인터넷 '승'-신문 '패'
▲ 기자협회보기자협회는 7일 조중동의 다음 뉴스공급 중단과 관련된 기사를 즉각 홈페이지에 실었다. ⓒ 한국기자협회보
매체별 만족도에 있어서도 인터넷(3.46)에 이어 지상파TV(3.38)-라디오(3.20)-케이블TV·위성방송(3.18)-전국종합신문(3.05)-지역일간신문(2.89)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수용자 의식조사 결과를 요약해 보면 인터넷의 영향력과 신뢰도는 상승하는 데 비해 신문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것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특정 사안에 대해 신문·TV·잡지·라디오·인터넷 매체가 동시에 보도했을 경우 어떤 매체의 보도를 가장 신뢰하는지 알아본 결과에서도 "TV를 가장 신뢰한다"는 응답이 61.7%로 가장 많았고 인터넷(20.0%)-신문(15.0%)-라디오(2.7%) 등의 순이었다.
또한 언론 수용자들은 '가장 친근하고 중요하며 유익한 매체' '가장 재미있고 영향력 있으며 필요하고 편리한 매체'로 방송을 꼽았고, '가장 풍부하고 신속한 매체'는 인터넷을 꼽았다. 더 재미있는 결과도 있다. 신문 정기구독자는 <조선일보(25.6%)>, <중앙일보(19.7%)>, <동아일보(14.3%) 등 상위 3개 신문의 점유율이 59.7%에 달했으나 이는 지난 2006년의 62.3%보다 많이 낮아진 것이다.
신문의 이같은 약세와 달리 포털사이트 '네이버'나 '다음'이 강세를 보인 것은 젊은 층과 30대 층에서 인터넷의 영향력이 각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수정 한국언론재단 조사분석팀 차장은 위 조사와 관련, "인터넷 하면 포털로 인식되고, 순위 안에 든 인터넷 매체는 결국 포털의 뉴스서비스를 의미한다"고 말한 바 있다. 현재 포털이 보수신문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기는 하지만 막강해진 위력의 여세를 몰아 취재 보도기능을 대폭 강화하고 나설 경우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80여 년 전 방송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신문의 콧대가 또 한번 여지없이 꺾일 수도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신문의 치욕스런 패배로 끝난다면 그 결과는 너무도 참담할 것이다. 지금은 그 때와는 환경이 또 다르다. 디지털 뉴미디어 시대를 맞아 종이신문이 광고나 판매 등에서 갈수록 위기를 맞고 있는 국면이다.
"조·중·동-포털 전쟁, 어디로 불똥 튈지"
그래서일까. 조·중·동이 포털사이트 '다음'에 뉴스 콘텐츠 공급을 중단하자 네티즌들은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다. "일방적인 편향기사를 보지 않아도 돼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의 글들이 눈에 띈다. 포털사이트 관계자는 "60개 매체에서 뉴스를 공급받고 있기 때문에 3곳의 기사가 빠졌다고 해서 별다른 영향이 있지 않다"고 말할 정도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에 궁금하다. 만약 조·중·동 기사서비스 중단의 여파로 방문자수가 감소한다면 '다음'으로서는 특별한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조중동의 배짱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 자못 궁금하다. 조·중·동이 패하게 되면 상황은 매우 복잡해진다.
조·중·동이 자초한 전쟁인 만큼 그들의 피해를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지역의 수많은 활자매체들까지 피해가 도미노처럼 확산될 공산이 크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이 때문에 조·중·동과 포털과의 싸움이 확산되는 국면을 바라보는 지역 신문사 사주들의 마음은 편치 못한 것 같다.
지역소통의 채널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많은 지역 신문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포털들이 사즉생의 각오로 똘똘 뭉쳐 신문에 대항하게 되면 어찌될 것인가. 여기에 취재 보도기능을 자체적으로 확충함으로써 뉴스 영향력이 더욱 강화될 경우 신문은 참담한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조·중·동의 경솔함이 종이신문 전체 업계에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 과거 기세등등했던 신문의 영향력과 신뢰도는 이미 바닥을 치며 상승력을 잃은 상태다. 촛불정국 이후 진보신문들과도 전쟁을 펼치고 있는 조·중·동이 이젠 포털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어쩐지 자꾸만 1920년대 '신문과 방송의 전쟁'을 연상케 한다. 당시 우월적 입장에 늘 서왔던 신문들이 어느 날 무릎꿇지 않았던가. 특별한 방어기제로 여겨왔던 언론 수용자들의 태도변화에서도 야릇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선샤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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