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살려쓰니 아름다운 '우리 말' (48) 잔디깎이

[우리 말에 마음쓰기 366] ‘어진이’와 ‘인자’ 사이에서

등록|2008.07.09 14:11 수정|2008.07.09 14:11

ㄱ. 어진이

.. 공자 이르시되, 젊은 사람은 집에 들어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밖에 나가서는 어른을 공경하고 모든 일에 삼가하여 신용이 있게 하고 널리 대중을 사랑하되 특히 어진이와 친할 것이니 이를 실행하여 남은 틈이 있거든 학문에 힘을 쓰라 ..  《국역 논어》(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1959)

 성균관대에서 펴낸 《국역 논어》 1959년치에는 ‘인자’가 아닌 ‘어진이’로 나옵니다. 요즈음 나온 판은 들여다보지 못했는데, 예전 판에 옮겨진 대로 ‘어진이’라고 적을는지, 아니면 한자말 ‘인자’로 적을는지 모르겠습니다.

 ┌ 어질다 : 마음이 너그럽고 착하며 슬기로운 데다가 바르다
 │    <어진 사람이 들려주는 말이니 잘 새겨듣는다 / 어질게 살고자 힘쓰다>
 ├ 인자(仁者) : 마음이 어진 사람
 └ 인자(仁慈) : 마음이 어질고 자애롭다
      - 인자한 마음씨 / 인자한 미소 / 인자한 성품 / 어머니의 인자한 음성

 한자말 ‘仁者’와 ‘仁慈’는 한글로 적으면 모두 ‘인자’입니다. 이 한자말은 한자를 밝히지 않으면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글흐름을 살피면 어느 낱말을 넣었는가를 가릴 수 있겠지만, 한 낱말만 덩그러니 ‘인자’라 적으면 헷갈릴밖에 없습니다.

 ┌ 어질다 + 사람(이) = 어진사람 / 어진이
 ├ 착하다 + 사람(이) = 착한사람 / 착한이
 ├ 슬기롭다 + 사람(이) = 슬기사람 / 슬기로운이
 ├ 바르다 + 사람(이) = 바른사람 / 바른이
 └ …

 어질게 살아가니 ‘어진사람’이요 ‘어진이’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짓는 낱말은 국어사전에 안 실립니다. ‘착한이’, ‘나쁜이’, ‘좋은이’, ‘못된이’ 모두 국어사전에는 안 실립니다. “어진 사람”을 가리키는 ‘仁者’는 국어사전에 싣지만, 토박이말로 지은 ‘어진이’는 안 싣습니다.

 ― 仁 + 者 = 仁者

 ‘인자’라는 한자말도 ‘仁 + 者’일 뿐입니다. ‘어진이’라는 토박이말도 ‘어질다 + 사람’일 뿐입니다.

 있는 그대로입니다. 쓰는 그대로입니다. 생각하는 그대로입니다. 꾸밈없이 담아내는 말이요, 어렵게 비꼬지 않으며 쓰는 글입니다. 손쉽게 가지를 치면서 새로운 말을 빚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국어사전입니다.

 영어사전이나 유럽말사전을 보면, ‘가지 치는 낱말’을 한 올림말 밑에 죽 달아 놓곤 합니다. 우리도 이런 틀거리를 배워서, ‘어질다’ 하나를 올림말로 삼은 다음, 이 낱말에서 가지를 치면, ‘어진이-어진일-어진사람-어진뜻-어진마음-어진넋’처럼 쓸 수 있다고 해 놓으면 한결 나으리라 봅니다.


ㄴ. 잔디깎이

 2003년 1월, 국립국어원 인터넷방에 들어가서 이모저모 살피다가 어느 분이 올린 글을 하나 읽습니다. 글을 올린 분은 ‘잔디를 깎는 기계가 있는데, 이 기계를 가리킬 때 ‘손톱깎이’처럼 ‘잔디깎이’라고 해도 되겠느냐’고 묻습니다. 이에 국립국어원에서는 ‘잔디 깎는 기계’를 가리키는 말을 쓰자면, 이 낱말은 국어사전에 실려 있지 않으니 ‘잔디 깎이’로 띄어서 쓰라고 답변을 달아 놓습니다.

 2006년 7월 10일, 어느 분이 글을 하나 올립니다. ‘잔디 깎는 기계를 공구상에서 ‘잔디깎기’로 적고 있는데 ‘잔디깎이’라 해야 올바르지 않겠느냐’고. 이때 국립국어원에서는 오래도록 답변을 달지 않다가 두 주가 지난 7월 24일, 비로소 ‘잔디깎이’로 적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달아 놓습니다.

 지난 2003년에는 ‘잔디깎이’라는 말을 쓸 만하느냐 쓸 만하지 않느냐를 놓고 아무런 대꾸가 없이 띄어쓰기 문제만 밝혔으나, 그 뒤 세 해가 흐른 뒤에는 띄어쓰기 문제는 말을 하지 않고 ‘잔디깎이’로 쓰면 좋겠다고 밝힙니다.

 다시 세월이 흐른 2008년. 우리 나라 국립국어원은 ‘국어사전에 실리지 않은 낱말은 띄어서 쓰도록’ 잣대를 세워 놓고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 “잔디 깎는 기계”를 ‘잔디깎이’로 쓰면 좋겠다고 밝혔다면, 이 낱말은 그사이 국어사전에 실렸어야 합니다. 그러나, 정부가 펴낸 국어사전인 《표준국어대사전》을 뒤져 보나 ‘잔디깎이’는 실리지 않습니다.

 ┌ 손톱 + 깎는 + 연장 = 손톱깎이
 ├ 잔디 + 깎는 + 연장 = 잔디깎이
 ├ 풀 + 깎는 + 연장 = 풀깎이
 ├ 머리 + 깎는 + 연장 = 머리깎이
 ├ 연필 + 깎는 + 연장 = 연필깎이
 └ …

 머리를 깎는 연장은 ‘머리깎개’라고도 가리킵니다. ‘바리깡(bariquant)’이나 ‘이발기(理髮器)’ 같은 낱말도 쓰이고 있으나, 우리 나름대로 ‘머리깎개’라 하면 됩니다. 또는 ‘머리깎이’도 올림말로 삼아서 두 가지 낱말을 쓸 수 있습니다.

 ┌ 수염 + 깎는 + 연장 = 수염깎이
 ├ 털 + 깎는 + 연장 = 털깎이
 └ 수염 + 깎는 + 칼 = 수염깎이칼

 수염이 자라는 어른들은 ‘면도기(面刀器)’나 ‘면도칼(面刀-)’을 씁니다. 수염을 깎으니 ‘수염깎이’일 터이나, 굳이 한자말로 옮겨서 ‘면도’라는 이름을 붙이고 맙니다.

 아이들이 쓴 글을 보면 더러 ‘수염깎이’라는 말이 보입니다. 어느 글을 보니, 아버지가 “얘야, 면도기 좀 가져와라.” 하고 심부름을 시키니, 그 아이는 “면도기가 뭐예요?” 하고 물었고, 아버지는 “수염 깎는 게 면도기지 뭐야.” 하니까, 아이는 다시 “수염을 깎으면 수염깎이지, 왜 면도기예요?” 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제야 아버지는 “그렇구나, 수염을 깎으니 수염깎이네.” 하고는 미안하다고 말했다더군요.

 그렇지만 우리 나라 국어사전에 ‘수염깎이’라는 말은 실리지 않습니다. 오로지 ‘면도기’만 실립니다. 일본사람들이 쓰는 ‘예초기(刈草器)’ 같은 낱말을 함부로 국어사전에 싣지는 않으나, 길가 풀을 벨 때 쓰는 ‘풀깎이’ 같은 낱말도 국어사전에 싣지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