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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보다 더 실감나는 민중 이야기 '민담'

<세계민담전집> 한국편을 읽고

등록|2008.07.10 11:05 수정|2008.07.10 11:05
'민담'은 한 민족이 수천 년 삶을 살아오면서 체득한 지혜를 담은 이야기다. 민담을 접하면서 이름 없이 태어났다 이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민중들이 자신들 삶 속에서 자연관, 인생관, 우주관, 사회의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
손자·손녀가 할머니 무릎에 누워 들었던 옛 이야기를 시간이 지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손자·손녀에게 이야기해주면서 민담은 만들어져 왔다. 민담에는 환상과 현실, 웃음과 해학을 통하여 자연과 우주, 인간을 보는 인식이 배여 있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선조들이 사고했던 세상을 만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민담은 지배세력과 기득권 세력이 승리한 역사를 문자로 기록하고 해석한 정사(正史)와 실록과는 다르다. 사실이 아니기에 역사로 신뢰할 수 없지만 민중은 정사와 실록보다는 자기 선조들이 상상과 현실, 웃음과 해학이라는 민담 속에 새겨진 자연과 우주, 인간을 만날 수 있기에 정사와 실록보다는 더 정감이 있다.

민담은 이런 의미에서 듣고, 읽기에 가치 있는 이야기이다. 출판사 <황금가지>가 펴낸 <세계민담전집>-2008년 6월 현재 16편(이란편)-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민담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 <세계민담전집-한국편> ⓒ 황금가지

<세계민담전집 1권>은 우리나라 민담을 엮었다. 구비문학을 연구하면서 <역사인물연구>를 펴냈고, <한국구비문학의이해>와 <한국인의 삶과 구비문학>을 공저한 건국대학교 신동흔 교수가 우리 민족이 전해온 이야기들을 구술자나 채록자의 1차 자료로부터 직접 뽑아 실었다.

<세계민담전집-한국편>은 3부로 구성되어있다. 1부 ‘신비와 경이의 세계’로 현실과는 동떨어진 환상세계를 이야기하는 민담을 실었고, 1부는 ‘일상사의 씨와 날’에는 환상과 상상세계보다는 현실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민담, 3부 '웃음은 죄가 없다'에는 희극과 해학이 깃든 민담을 엮었는데 모두 59편이다.

환상과 현실, 희극이 어우러진 민담을 편집하여 우리 민담이 어떻게 전해져 왔는지 알 수 있게 한다.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환상만을 담은 민담이 아니라 현실을 반영하고, 웃음과 해학이 넘치는 민담 속으로 들어가다보면 10대, 20대, 30대 선조 할머니 무릎 위에 누워 직접 듣는 느낌을 받는다.

현실이지만 현실이 아닌 상상과 환상으로 우리를 이끈다. 한 편 한 편을 읽어갈 때마다 현실성과는 매우 동떨어졌지만 현실 세계 속에서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상상의 나래를 만끽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삼면인 바다로 된 반도 국가다. 반도 국가는 대륙 문화와 바다 문화를 잇는 다리 역활을 한다. 우리나라는 중국-한국-일본으로 이어진 문명 고리를 형성했고, 불교와 도교, 유교가 농업문명권인 우리 민족 속으로 들어오면서 우리 선조들은 다양한 민담을 만들어 전해주었다.

우리 민족은 물질의 풍부함과 풍성함보다는 결핍과 고난을 더 많이 겪었다. 민담에는 재산과 명예, 배필 등등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박탈당한 주인공들이 많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선녀와 나무꾼>에서 나오는 나무꾼은 나이 서른이 넘도록 각시를 얻지 못하고, 외로움, 작은 오두막집, 움직이는 것은 자기 몸 하나밖에 없는 궁핍한 삶을 살아간 사람이었다.

선녀를 만나면서 일어난 많은 일들은 읽는 이들에게 가슴 아리고, 눈물을 흘리게 한다. 마지막에는 하늘나라 사위로 인정받아서 예쁜 아내와 귀여운 두 자식을 데리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지만 고난과 결핍을 견디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다.

<우뚜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세상은 살기 아주 어려웠다. 권력자들이 자기 욕심을 차리기에 눈이 멀어 백성들 생활은 안중에도 없었다. 대궐에 있는 벼슬아치들은 뇌물을 받고 원님들은 자리를 팔았고, 원님은 백성들을 쥐어짜서 자기 배를 불렸다. 그라니 백성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었다."(166쪽)

우뚜리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자기배만 채우는 지배세력에 저항했다. 우뚜리 죽음으로 인민의 피를 빨아먹은 지배세력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지만 인민들은 새로운 자각을 하게 된다.

"우뚜리의 그 죽음을 결코 헛되이하지 않겠다고, 기필코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말겠다고."(172쪽)

<선녀와 나무꾼>이 환상담 같아 현실세계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지만 <우뚜리>는 현실에서 지금도 일어나는 일들이다. 지배세력이 민중을 착취하는 것은 어제일만 아니라 오늘도 일어나는 일들이다.

독자는 <우뚜리>를 읽고 마지막 백성들이 했던 말을 가슴에 새길 수밖에 없다. '기필코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말겠다'는 다짐은 어제와 선조들 문제가 아니라 오늘과 바로 자신에게 처한 일임을 알게 된다.

이런 저항을 담은 민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문제를 낼 때마다 우연히 해결책을 내는 머슴 이야기를 담은 <머슴의 꿈과 신비한 금척>, 단지 길을 다녀오는 것만으로 모든 행복을 한꺼번에 얻는 <구복여행>, 근심이라는 근심은 다 피해가는 <무소웅> 등을 통하여, 행복은 철저한 준비와 성실함으로만 일어나는 현실세계와 조금 달리 '저절로' 이루질 수 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정승을 골려주는 대가를 만날 수 있는 <정승 골려주기>, <지혜로운 며느리>, <통인의 지혜로운 아내> 등은 자신과 가족, 집단에 닥친 어려움과 난제를 해결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지혜를 담았다.

59편을 모두 읽고 나면 우리 민담 속에는 폭력보다는 평화, 탐욕보다는 나눔, 아픔과 슬픔을 이기는 웃음과 해학, 현실이 고통스러워 내세만을 생각하는 패배주의보다는 현실을 극복하려는 꿋꿋한 삶의 자세, 나보다는 가족과 이웃, 사회를 생각하는 공동체 정신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한 편이 8-9쪽이기 때문에 초등학교 아이들도 함께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한증막 같은 이 더운 날 우리 민담 한 편을 읽는 것은 또 다른 피서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세계민담전집-한국편> 신동흔 엮음 ㅣ 황금가지 ㅣ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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