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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와 함께 다녀온 고난의 여행

개 보느라 남편은 박물관도 못 들어가고

등록|2008.07.10 13:21 수정|2008.07.10 13:21

▲ 지난 해 춘천 강원대에서 열렸던 강아지 축제에서 장애물 달리기를 준비중인 우리 분이와 작은 애. 그런데 사람들에 가려서 잘 안 보인다. ⓒ 김은주



친정 식구들과 함께 경주를 여행하기로 했습니다. 엄마와 형제들을 만나 그동안 쌓아놓았던 수다도 풀어놓고 맛있는 것도 먹고, 또 애들은 물놀이 할 생각에 마냥 신나 있지만 어디서 자라고 있는 종기마냥 마음 한 쪽에 걱정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걱정이란 다름 아니라 우리 집 강아지 '분이'입니다. 분이를 어떻게 해야 할 지 그게 참 난감했습니다. 애견호텔에 맡기고 가면 되겠지만, 거기가 참 마음이 안 내키는 곳입니다. 말이야 번지르하게 호텔이지, 우리나라 애견 숍이던 동물병원이던 어느 곳에도 이 화려한 이름에 걸맞게 강아지를 돌보는 곳은 없습니다.

좁은 케이지 안에 하루종일 가둬놓으면서 어떻게 ‘호텔’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내가 강아지가 안 돼 봐서 이 상황이 강아지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정말 내키지가 않습니다. 만약 내가 강아지라면 낯선 사람과 낯선 공간에서 하루종일 갇혀 있다면 정말 심한 고통을 느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통을 느끼는 건 사실인 모양입니다. 강아지를 키워봤던 사람들이 하는 말이 애견호텔 맡겼다가 집에 데려오면 강아지들이 정서가 불안해져서 며칠간은 오줌을 못 가린다고 하더군요. 오줌을 못 가릴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는 뜻이지요.

그렇다고 집에 놔두고 가는 것도 마음이 편치가 않습니다. 빈집에서 혼자 이제나저제나 식구들이 오나 하고 애가 타게 기다릴 우리 분이를 생각하면 이것도 못할 노릇입니다.

대부분 시설에서 강아지를 거부

이런 처지다 보니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시설에서 강아지를 거부합니다. 콘도는 물론이거니와 음식점도 그렇고, 국립공원도, 사찰도, 박물관이던 공연장이던 대부분의 시설에서 강아지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시설에는 강아지를 거부한다는 마크가 입구에 부착돼 있습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에서 보면 상점들 앞에 유태인의 출입을 제한한다는 표지가 있었는데, 그것처럼 우리나라 대부분의 시설에서는 애완동물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열약한 상황에서 강아지와 함께 여행한다는 것은 정말 강아지 주인으로서는, 불 속에 뛰어드는 것처럼 고통스럽습니다. 허나 강아지와 함께 고통을 분담한다는 생각에서 불나방처럼 불속으로 뛰어들기로 했습니다.

먼저 콘도에 들어가는 게 문제였습니다. 콘도에 따라서 1층을 강아지 동반 투숙객에게 내주며 융통성 있게 운영하는 콘도도 있지만, 이번에 우리가 예약한 콘도는 강아지 출입을 금했습니다. 강아지 출입을 금지한 이유는 아마도 짖는다거나 로비 아무데서나 오줌을 갈긴다거나 하는 이런 행동으로 강아지를 키우지 않는 다른 손님에게 피해를 줄 걸 염려해서 그런 조치를 취했다고 볼 수 있는데, 우리 강아지는 절대로 아무데서나 오줌 안 싸고 안 짖는다고 제발 들어가게 해달라고 빌어봐야 헛짓이라는 걸 알기에 범죄를 저지르기로 했습니다.

강아지 콘도 들어가기 007작전

007작전과 다름없었지요. 우선 프런트로 가서 예약을 확인하고 키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남편은 강아지를 커다란 여행 가방에 넣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빛의 속도로 로비를 통과했습니다. 다행히 우리 분이는 소리를 낸다거나 꼼지락거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프런트 앞을 지날 때는 가슴이 완전히 미친 듯이 뛰었습니다.

객실로 들어와 강아지를 가방에서 꺼내고서야 한시름 놓았습니다. 어떻게든 방으로 들어왔으니까요.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도둑질도 처음이 무섭다고, 하다 보면 간이 커져서 대담해진다고 한다는데, 이번이 두 번째 범죄인데 처음 보다는 덜 긴장되더군요.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데 이러다 어느 날엔가 들통 나는 건 아닌지 좀 걱정은 됩니다.

친정 엄마와 형제들은 “개는 왜 데리고 왔냐”고 모두 한 소리씩 했습니다. 왜냐하면 초인종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강아지를 숨긴다고 난리여서 그게 몇 번 반복되자 동생은 “개 때문에 우리 모두 범죄자가 된 것 같다”는 말을 할 정도로 우리는 공범이 돼서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다음날 먼저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날씨가 굉장히 덥더군요. 이 날은 경주의 기온이 33도 정도 되더군요. 습도도 꽤 높고 정말 후덥지근했습니다. 이런 더운 날씨에 돌아다니는 것도 힘들어서 에어컨이 틀어져 시원한 박물관에 갔습니다.

여기서도 우리 분이가 문제였습니다. 강아지를 데리고 들어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입구에서 강아지를 봐주지도 않겠다고 하니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었습니다. 강아지를 차에 놔두거나 누군가 강아지를 데리고 밖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33도의 무더위에 강아지를 차에 놔둘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남편이 강아지를 데리고 매표소 앞 나무 아래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남편이 좀 불쌍하더군요. 그런데 이 마음은 애들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입니다. 나중에 하는 말이, 자기들도 아빠와 함께 기다릴까 생각했다더군요.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박물관에서 선사시대 유물, 황룡사 모형도 등을 구경은 했지만 더위 속에서 기다리고 있을 사람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다행인건 남편이 앉아있는 곳이 그늘이어서 땀은 덜 흘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이번 여행의 마지막 여정인 첨성대 뒷골목에 있는 쌈밥집 중 유명한 집을 찾아갔습니다, 음식점이야말로 가장 강아지를 경계하는 곳이고, 여기는 당연히 못 들어갈 걸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입구에서 한 사람씩 강아지를 지키며 교대로 먹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애들 둘이서 교대로 강아지를 지키기로 했습니다. 강아지를 지키는 게 시원한데 앉아 마음 놓고 음식 먹는 것에 비하면 힘들고 괴로운 일이지만 그래도 애들은 자기 임무를 잘 수행했습니다.

이렇게 강아지와 여행하는 일은 여행이라기보다는 고생이었습니다. 차라리 강아지 혼자 고생하는 게 낫지 모두들 고생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루 정도 혼자 집에 놔두거나 이름만 좋은 애견 호텔에 맡겨야겠다는 유혹도 잠깐 느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럴 상황이 되면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고생을 바가지로 하더라도 아마 지금처럼 또 강아지를 데리고 여행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강아지를 데려가지 않아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 건 똑 같기 때문에 차라리 함께 고생하는 길을 택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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