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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미완성이 아름다운 법이지

[여행] 석모도 자전거 하이킹

등록|2008.07.11 09:27 수정|2008.07.16 11:39

▲ 새우깡을 기다리는 외포리 선착장의 갈매기들. ⓒ 조미선

강화도에서 배를 타고 5분 남짓 들어가야 하는 석모도에 요즘 자전거하이킹을 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는 소문은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타고난 역마살에 자전거라면 놀이기구보다 좋아하는 나는 첫 하이킹 여행지로 석모도를 주저 없이 선택했다.

서울에서 가는 건 어렵지 않다. 신촌에서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석모도행 배가 있는 외포리 선착장까지 가는 직행버스가 있기 때문. 외포리 선착장에는 매시간 정각과 30분마다 석모도로 들어가는 배가 있다. 배를 타면 5분 남짓이지만 차도 싣고 갈 수 있는 큰 배여서 섬에 들어가는 기분을 제법 즐길 수 있다.
석모도에 들어가는 배를 탈 때 필수품이 있으니 바로 '새우깡'. 장수를 누리던 새우깡이 얼마 전 이물질이 들어간 사건으로 불황을 맞았으나, 이곳 선착장에선 새우깡을 박스 채 뜯어놓고 팔고 있었다. 말 그대로 새우깡의 불황이 없는 곳이었다. 이 새우깡은 바로 배 옆에서 사람들이 타기만을 줄서서 기다리고 있는 갈매기 떼들의 것이다.

갈매기들이 새우깡만 먹고 살아 성인병에 걸려 죽을 거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서울역 광장 주변에 살찐 비둘기인 이른바 '닭둘기'들이 있다면, 이곳엔 살찐 갈매기들이 있다. 갈매기들은 섬에 들어가는 내내 배와 함께 속도를 맞춰 쫓아온다. 처음엔 사람 무서운 줄 모르고 마구 다가오는 갈매기들이 무서웠으나 곧 익숙해져 현대판 고수레를 했다. 새우깡으로 말이다. 갈매기들과 놀다보면 배는 곧 섬에 도착한다. 선착장에서 내리자마자 자전거를 빌려 생애 첫 하이킹을 시작했다.

▲ 힘들면 잠시 쉬어가도 좋다. 석모도에서 발이 되어준 자전거의 사진도 찍어주면서. ⓒ 조미선


석모도는 자전거하이킹 하기에 좋은 곳이라고 들었다. 도로에 차가 별로 다니지 않고, 오르막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출발한 지 얼마 안 돼 친구 자전거의 브레이크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우리가 빌린 자전거가 마지막이었음으로 바꿀 수도 없는 노릇에 그냥 설렌 마음만 갖고 하이킹을 시작했다.

첫 갈림길에서 우린 평지를 택했다. 물론 당장 눈앞의 어려움만 생각한 얄팍한 판단이었다. 얼마가지 않아 오르막에 들어섰다. 구불구불한 산길이었는데, ‘코너를 돌면 내리막이겠지, 이렇게 힘든 코스는 없다고 들었는데’하고 생각하며 코너를 돌면 또다시 오르막이었다.

친구와 헉헉거리며 자전거를 끌고 오르고 올라도 내리막길은 보이지 않았다. 지도를 폈다. 맙소사, 우리가 간 곳은 이 섬의 유일한 고개인 ‘진드기 고개’였다. 그 말처럼 발  끝에 진드기가 붙었는지 한 걸음 한 걸음 떼기가 힘들었다.

애초에 완주가 목표는 아니었으니 우린 쉬엄쉬엄 가기로 했다. 지치면 자전거를 세워두고 사진을 찍고 모처럼 산에 올랐으니 삼림욕도 하는 기분으로 숨도 크게 들이쉬면서 말이다.
오르막 끝엔 반드시 내리막이 있다고 했던가? 인생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진드기 고개의 오르막이 끝나자 긴 내리막길이 보였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전거를 갖고 있는 친구가 이 길을 어떻게 내려올지 걱정은 됐으나 나는 단숨에 내리막길을 달렸다. ‘정말 이 기분에 하이킹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시원한 바람이 머릿속 잡념마저 씻겨주는 것 같았다.
내리막길 끝에서 브레이크가 되지 않아 조심조심 내려오고 있을 친구를 기다리기 위해 근처 초등학교에 자전거를 세웠다. 점심도 먹을 겸이었다. 운동장에 들어서니 바다가 보이는, 작지만 아름다운 학교였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보기 힘든 책 읽는 소녀의 동상, 그리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한 이승복 어린이 동상이 있었다.

맙소사, 이곳 아이들이 공산당이 먼 줄 알기나 할까. 옛 추억을 고스란히 담아놓은 곳이었지만 과거의 편협적인 사상조차 고스란히 남은 곳이었다. 그러고 보니 38선에 가까운 섬이라 그런지 유독 안보에 관련된 홍보물을 많이 보았다.

▲ 석모도 보문사에서 보는 일몰 ⓒ 조미선


석모도를 도는 동안 느낀 것이지만 이곳은 섬이라기 보단 한적한 농촌처럼 느껴졌다. 도로 옆에 밭이나 논이 줄지어 있기 때문이다. 민머루 해수욕장을 가기 위해 해안가로 갈 때는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습지도 볼 수 있었다. 민머루 해수욕장은 드넓고 파도치는 해수욕장을 연상시키면 실망하기 십상이다. 모래사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잔잔한 파도가 이는 아담하고 조용한 곳이다.

민머루 해수욕장에서 나와 다시 일주하는 도로로 돌아오니 이 섬의 유명지인 보문사까지는 차도 없이 한가롭고 평탄한 도로가 계속 이어져있었다. 섬이라 바람이 불어오는 것인지 아니면 내 자전거가 바람을 가로지르는 것인지 모르지만, 볼을 시원하게 스쳐지나가는 바람에 하이킹의 기분을 맘껏 낼 수 있었다.

보문사가 있는 산자락 밑에 도착하자 멀리 보문사의 명물 눈썹바위가 보였다. 눈썹바위는 크게 이는 파도처럼 생긴 바위인데, 그 모습이 눈썹과 비슷하다고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눈썹바위에는 마애관음보살상이 새겨져 있는데 강화 8경에 드는 명승지로 꼽힌다. 강화 8경에는 들어갈까 모르겠지만 보문사에 올라오면 섬이 한눈에 내려다 보여 바다를 맘껏 볼 수 있다. 특히 이곳에서 보는 낙조는 석모도에서 볼 수 있는 풍경 중 가장 으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포리에서 보문사까지의 일주는 섬을 반만 돈 것이나 마찬가지다. 민머루 해수욕장까지 다녀오려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중간에 어항까지 길을 잘못 들어서기도 했으니 말이다. 애초 완주가 목표는 아니었지만 우리는 해가 저물어가고 바람이 차가워져도 자전거 페달에 다시 발을 올렸다. 하지만 보문사에서 얼마가지 않아 또 다른 언덕이 보였다. 진드기 고개를 넘어온 우리는 다시 고개를 넘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고개가 보이는 갈림길에서 해안가로 방향을 바꿔 마지막으로 바다를 보고 하이킹을 끝냈다.

비록 일주는 하지 못했지만, 흡사 인생의 축소판을 본 듯한 여행이었다. 진드기 고개를 넘었을 때처럼 인생에서도 가끔 오르막 뒤엔 내리막이 아닌 또 다른 오르막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오르막 끝엔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에서 브레이크가 고장이 날 수도 있다.
때론 길을 잘못 들어 헤맬 수도 있다. 이제 대학 졸업을 앞 둔 우리들처럼 갈 길이 어딘지 좀처럼 보이지 않듯이. 하지만 길을 잘못 들어 헤매고 되돌아갈지라도 결국엔 목표한 곳으로 갈 수 있다.

인생이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다. 우리가 섬을 일주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린 다음에 와서 남은 반 바퀴를 돌자고 약속을 하고 미련 없이 하이킹을 끝냈다. 우리의 다리도 덜덜 떨려왔고 날도 저물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어려움이 닥칠 때, 때론 포기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완성미가 주는 만족감도 좋지만 미완성이 주는 아쉬움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걸 깨닫게 해준 여행이었다. 사람은 그리고 인생은 때론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더 사랑스러운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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