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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피해자 특별법, 일본 넘어서는 진보적 법안"

[인터뷰] 특별법 청원한 강주성 원폭공동대책위 집행위원장

등록|2008.07.11 14:52 수정|2008.07.11 14:52
지난 7월 2일 국회에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와 피해자 자녀 환우의 진상규명 및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을 청원한 '원폭피해자와원폭2세환우문제해결을위한공동대책위(아래 원폭공동대책위)' 강주성 집행위원장을 7월 10일 인사동에서 만났다.

지난 17대 국회에서도 한국인 원폭피해자2세 환우였던 고 김형률씨가 이 법안을 청원하기 위해 국회에 방문했을 때 동행했던 그다. 법안의 주인공은 사라져 없고, 강 위원장 자신도 대한민국의 아픈 이들을 위하여 제약회사 및 거대 병원을 상대로 맞서며 오랜 세월 몸담았던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직을 얼마 전 그만두었다. 그러나 그는 한국인 원폭피해자와 2세 환우의 문제만은 아직도 놓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시민사회에서도 “마이너 중의 마이너”로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이번 특별법에 대하여 속 깊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한국인 원폭피해자2세 환우였던 고 김형률 씨와의 깊은 인연으로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를 지낼 때부터 원폭피해자 지원활동과 특별법 제정을 위해 노력해온 강주성 위원장. ⓒ 전은옥


-이번 특별법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60여년 동안 방치돼온 한국인 원폭피해자에 대하여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와 지원을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또한 1세만이 아니라 2세, 3세를 포함해 각종 후유증과 질병을 앓고 있는 후대까지도 피해자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일본 정부의 보상규정까지도 넘어서는 진보적인 법안입니다."

-'후대'까지 피해자로 규정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원폭의 피해가 대물림된다는 사실입니다. 부모가 원폭피해자라고 해서 그 자녀에게 100% 피해가 유전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30% 이상의 후세대가 부모의 피폭에 대해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일반인보다 원폭피해 2세의 유병률은 100배 이상에 달합니다. 각종 질병을 동반한 다양한 후유증은 원폭피해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원폭피해의 대물림 현상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조사하되, 그에 앞서 우선적으로 당장 피해를 겪고 있는 이들에 대해 구명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입니다. "

-한국인에게 '원폭'의 문제, 그리고 이번 법안이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십니까?
"해방 후 63년이 지나도록 국가 차원에서 자국민 피해자에 대한 어떠한 국가보상과 진상규명도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이제야 법안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는 핵에 대한 피해, 전쟁에 대한 문제, 반전·반핵·평화라는 주제에 대해 국가가 법을 통해 한 차원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17대 국회 때 강제동원진상규명 특별법이 통과되었을 때, 원폭피해자에 대한 진상규명과 지원에 대한 문제는 왜 소외되었을까요?
"우선 강제동원진상규명 관련법에서 일제강점하 원폭피해자가 배제된 것은 원폭피해자의 70~80%가 강제동원으로 도일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평택에서는 강제동원되어 갔다가 원폭피해를 당하신 분들이 있는데, 이분들은 원폭피해자로서가 아니라 강제동원 관련법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가 가장 많았던 합천 지역은 토지를 빼앗기거나 일제의 식민지정책으로 인하여 먹고 살기 힘들어서 생계의 절박함 때문에 일본에 건너간 사람이 많습니다.

또 원폭피해자 지원을 위해 제출했던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도 못한 까닭은 원폭피해자가 60년 동안 이 사회에서 차별받아 온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피해자들은 아픈 사람들이고 노령화되어 있습니다. 자기 목소리를 내기도 힘들고, 사회적 차별과 압박 때문에 내고 싶어도 낼 수가 없습니다. 정부의 무관심과 피해자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딱 맞아 떨어지면서 상호작용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사회적 구명이 늦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정부 내에서도 일제강점시기에 대해 문제되는 각종 사안은 1960년 한일협정체결 때 전부 배상이 완결되었으므로, 일본이 저지른 일에 대해 일본 정부에 배상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진상규명과 보상에 드는 예산을 만들기가 어렵다는 현실도 작용했습니다. 국가 예산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한국정부의 태도는 '일본과 먼저 논의하라'는 입장입니다. 한 가지 더, 2세를 비롯한 후대에 대물림된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규명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법을 통과시키더라도 후대의 문제는 배제하거나 다른 차원에서 논의하려고 하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 7월 2일 국회민원실 의안과에 청원서를 제출하고 있는 강주성 공대위 위원장(오른쪽). 왼편은 한국원폭피해자협회 김용길 회장. ⓒ 전은옥


-특별법 청원 후 법안 발의와 심의과정을 앞두고 가장 걱정되는 점은 무엇입니까?
"정부의 인식 수준이 척박하다보니 정부가 순순히 법을 만들고 피해자 구명에 앞장 선 선례가 없습니다. 원폭피해문제뿐 아니라 어떤 사항이든 피해자가 힘겹고 외로운 싸움을 통해 법을 얻어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피해자들은 너무나 어려운 시간들을 견뎌왔지만 앞으로도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법을 둘러싸고 많은 갈등이 예상되는데,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후대에 대한 피해를 사회가 인정하느냐의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겠지요. 정부는 현실론을 바탕으로 하여 '유전 문제는 의학적 규명이 안 되어 있다', '지금 1세에 대한 규명과 지원이 우선적이니까 단계별로 나가자. 1세에 대해 먼저 해주고, 후대는 다음 기회에 논의해보자'라는 식으로 2세, 3세에 대해서는 미루고 배제시킬 수 있습니다. 정부의 이런 논리를 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국 아픈 사람들, 소수자가 정부뿐 아니라 이 사회의 나머지 모든 사람들과 싸우는 과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픈 이들, 직접적으로 '문제'와 '피해'를 갖고 있는 이들을 소외시키는 행동은 도덕적으로도 지탄받을 것입니다."

-앞으로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문제가 어떤 방향으로 해결되기를 바라십니까?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실제 병을 앓고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1세, 2세를 막론하고 아픈 사람들이 피해자입니다. 이 피해자들에 대한 사회적 구명과 진상규명, 명예회복을 국가와 사회 차원에서 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피해자들이 직접 반전·반핵·평화의 주체가 되어, 전사회적으로 역사의식과 인권의식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를 바랍니다. 원폭피해자 문제에 대한 접근은 누구에 의해 피해를 당했냐는 사실 자체보다 '인권' 차원의 구명이 중요합니다. 돌아가신 김형률씨가 주장했던 것도 이것입니다.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문제를 단순히 '피해자'라는 단어에 매몰되지 않고, '인권' 차원에서 주목해야 합니다. "

-공동대책위의 향후 활동계획은 무엇입니까?  
"공동대책위를 재정비하여 원폭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환기시킬 수 있는 논의 구조를 확립해 나가는 것이 시급합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8월 6일을 즈음하여 최대한 서둘러 법안을 발의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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