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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발달, 대의정치 도전받아 정보 전염병은 경계해야 할 대상"

이명박 대통령 국회 개원연설... "북한과 진지하게 협의할 용의"

등록|2008.07.11 14:22 수정|2008.07.11 15:50

▲ 이명박 대통령이 11일 오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8대 국회개원식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유성호


이명박 대통령이 '광우병 쇠고기' 파동과 관련 "뼈 저린 반성"을 얘기한 지 불과 20여일만에 "정보전염병을 경계해야 한다"며 또 다시 촛불집회를 비하하는 등 180도 태도를 바꿔 논란이 예상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11일 18대 국회 개원 연설에서 "선진사회는 합리성과 시민적 덕성이 지배하는 사회"라며 "감정에 쉽게 휩쓸리고 무례와 무질서가 난무하는 사회는 결코 선진사회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한 촛불집회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은 특히 "부정확한 정보를 확산시켜 사회불안을 부추기는 '정보전염병'(infodemics)도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감정에 휩쓸리고, 무례와 무질서가 난무하는 사회..."

정보전염병은 '정보'(information)와 '유행병'(epidemic)을 합성한 신조어로 "왜곡된 정보와 엉뚱한 소문이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 자칫 정치, 안보는 물론 경제에도 타격을 주는 현상"을 말한다. 이 대통령은 두 달 이상 지속된 촛불집회의 원인이 '정보전염병'에서 기인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특별기자회견에서 "돌이켜보면 대통령에 당선된 뒤 저는 마음이 급했다"며 왜 '무리하게'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을 하게 됐는지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

당시 그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계속 거부하면 한미FTA가 연내에 처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봤고, 미국과의 통상마찰도 예상됐다"며 "그러다보니 식탁 안전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꼼꼼히 헤아리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촛불집회를 불러온 쇠고기 졸속 협상의 원인이 다름아닌 대통령 자신에게 있었음을 시인한 것이다.

그러나 20여일이 지난 지금 이 대통령은 표변했다. 촛불집회의 원인을 정보전염병에서 찾는 가 하면 촛불집회를 "무례와 무질서가 난무하는 사회" 등에 비유했다.

이 대통령은 또한 국회 연설에서 "우리 사회는 무형의 사회적 자본인 신뢰의 축적이 크게 부족하다"며 "법과 질서가 바로서지 않으면 신뢰의 싹은 자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식의 선진화는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며 "경제계·종교계·교육계 등 사회 각 분야가 함께 해야 하고, 국회도 앞장 서주길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 이명박 대통령이 11일 오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8대 국회개원식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유성호

20여일 전 "뼈저린 반성"... 지금은?

이 대통령은 "최근 '쇠고기 문제'는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과 함께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 역시 20일 전 특별기자회견 때의 태도와 큰 차이를 보였다. 당시 이 대통령은 "아무리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가적 현안이라 하더라도, 국민들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또 국민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잘 챙겨봤어야 했다"며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고 사과한 바 있다.

그러나 이날 국회 개원연설에서는 "국민의 목소리에 더 세심하게 귀 기울이는 한편, 법치의 원칙을 굳건히 세워 나가겠다"고 말해, 한편으로는 국민 여론을 수용하는 듯한 입장을 취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촛불집회에 대한 강경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거듭 피력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국민의 신뢰를 얻는 일에 국정의 중심을 두겠다"며 "더 낮은 자세로 일하겠다"고 말해, 스스로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상실했음을 시인했다.

또한 이 대통령이 "국민들의 적극적인 정치참여와 인터넷의 발달로 대의정치가 도전을 받고 있다"며 "이에 대해 정부와 국회는 능동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대의 민주주의제'는 최고의 선이 아닌 '직접 민주주의제'의 보완제로서 언제든지 국민의 직접 정치참여가 보장되어야 함에도, "대의정치가 도전받고 있다"는 식의 인식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날 개원 연설에서 쇠고기 파동에 대한 유감 표명을 끝내 하지 않은 이 대통령은 "먹거리 문제만큼은 '국민건강 안보' 차원에서 접근하겠다"며 국무총리 산하에 민간이 참여하는 '국민건강대책기구' 추진 의사를 밝히는 것으로 대신했다.

"6·15공동선언, 10·4정상선언 이행 위해 북과 협의"

▲ 이명박 대통령이 11일 오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8대 국회개원식에서 시정연설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 유성호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국회 연설에서 "과거 남북 간에 합의된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 공동선언, 6·15공동선언, 10·4정상선언을 어떻게 이행해 나갈 것인지에 관하여 북측과 진지하게 협의할 용의가 있다"며 전향적인 대북 기조를 밝혔다.

이 대통령은 또 "비핵화의 진전과 함께 실질적인 남북협력이 활발해질 것이며, 더불어 잘 사는 한반도 시대도 열릴 것"이라면서 "이를 위해 남북당국의 전면적인 대화가 재개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또 "남북한 간 인도적 협력 추진을 제의한다"면서 "정부는 동포애와 인도적 견지에서 북한의 식량난을 완화하고 주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남북관계도 이제는 새로운 사고, 새로운 방향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특정 정권 차원이 아니라 민족 장래의 관점에서 남북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365일 불 켜져 있는 의사당 되길"

이 대통령은 '쇠고기 파동'으로 40여일간 공백 상태였던 국회를 의식한 듯 "365일 의사당에 불이 켜지고 국민을 위한 정책이 생산되는 '창조의 전당', 고함 대신 타협의 박수 소리가 들리는 '소통의 전당', 대립과 갈등, 백가쟁명을 녹여내는 '통합의 전당'이 되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향후 '물가 안정' 중심의 경제운용 기조를 밝힌 뒤, "국회의 협조를 얻어 지난해 세계잉여금 중 10조원 정도를 민생 안정에 투입할 것"이라며 "영세업자와 소상공인, 농어민, 축산농가 등을 지원하는 데 쓰겠다"고 밝혔다.

규제 개혁과 공기업 선진화, 한미 FTA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공공부문의 선진화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면서 "전기·수도·건강보험 등 민간으로 넘길 수 없는 영역도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등 경영 효율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위기에 빠진 우리 경제가 놓쳐서는 안 될 기회의 하나가 바로 한미 FTA"라면서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대승적 결단으로 한미 FTA 비준을 조속히 처리해 주실 것을 당부 드린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비정규직 근로자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논란이 되고 있는 비정규직보호법은 노사 양쪽의 견해를 모두 반영하여 보완·개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이명박 대통령이 11일 오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8대 국회개원식에서 시정연설을 마친뒤 김형오 국회의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 이명박 대통령이 11일 오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8대 국회개원식에서 시정연설을 마친뒤 민주당 의원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저항의 의미가 있는 빨간 색 넥타이와 머플러를 착용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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