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구본홍, 승지를 하셔야 할 분이 대사간으로 와서야..."

운명의 14일 앞둔 YTN 본사 앞, 시민과 노조원은 '여전히 하나'

등록|2008.07.12 12:23 수정|2008.07.12 13:16

▲ 11일 저녁 7시부터 열렸던 YTN 본사 앞 촛불문화제 ⓒ 박형준


그동안, 매주 화·금요일 저녁 7시 YTN 본사 앞에서는, YTN 노조와 시민들이 함께 하는 작지만 의미 있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제는 상식처럼 자리잡고 있듯이, '촛불'은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 기도에 대한 대항의 의미도 담겨 있다. YTN 노조원들과 시민들은 더불어 촛불을 들고 자유발언을 나누며 뜻을 모아왔다.

11일 저녁 7시, 그 작지만 의미 있던 촛불집회가 '마지막으로' 열렸다. 왜 '마지막'일까? 사태가 끝나서? 아니다. '본게임'이 사실상 코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오는 14일 오전 10시에는 YTN의 주주총회가 예정돼 있다. 사장으로 내정된 구본홍씨의 정식 선임을 추인하기 위한 주주총회다.

YTN과 '악연' 있었던 임종인 전 의원 참석도 '눈길'

변함없었다. '바위처럼'과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러퍼졌고, 촛불 속에서 박수와 웃음이 퍼졌다. 저마다의 진심을 담은 이야기가 오갔다.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자 기사를 쓰는 나로서도 그 변함없는 분위기에 대해서만큼은 더이상 할 이야기가 없었다. 오히려, 그 틈에서 내가 지켜봐왔던 틈새의 이야기, 그리고 어렵게 시도한 인터뷰에서 전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았다.

▲ YTN 본사 앞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임종인 전 의원 ⓒ 박형준


일단, 참석자 중 특히나 주목받았던 인사가 있다면 임종인 전 의원이었다. 임종인 전 의원과 YTN은 소송까지 불사했던 '악연'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회에 참석해 마이크까지 잡았던 임종인 전 의원은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마이크를 잡은 그는 자세한 속사정을 간단히 이야기하면서 역시나 '본질'을 거론했다.

"사실, YTN와 나 사이에는 송사가 있었다. 내가 1승 2패였다. 법사위 소속 당시 YTN '돌발영상'이 내가 동료 의원들과 나누던 '농담'을 '막말'처럼 묘사했고, 내가 법사위에 소속된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했던 것처럼 묘사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중요한 것은 그런 과거가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언론탄압 문제다. 그래서 나는 이 자리에 나왔다."

그외에도 민주당 의원들도 자리를 함께 해 마이크를 잡으면서 박수를 얻었다. 민주당 의원들이 본격적으로 거리로 나서면서, 촛불문화제 초기와는 달리 시민들은 민주당 의원들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YTN 구성원 여러분들을 보니, 언론운동을 한 선배로서 '지못미(지키지 못해 미안해)'라는 말이 생각나 착잡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러분들이 자랑스럽다. 언론의 독립은 언론인 스스로 지켜낼 때 더욱 자랑스러워진다.

YTN의 현실은 보수와 진보의 문제도 아니고, 구본홍씨 개인에 대한 문제도 아니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 그 자체가 달린 문제다."
- 최문순 의원

"이명박 정부나 한나라당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10년 후퇴'는 예상했지만, 지금 보니 완전히 5공으로 회귀하고 있다.

지금 그들은 KBS라는 멧돼지 하나 잡으려고 감사원과 검찰 등의 사냥개들을 동원하고 있다. YTN의 낙하산 인사 문제도 그렇다.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발이자 도전이다. 가장 좋은 언론은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이다."
- 김세웅 의원

▲ YTN 본사 앞 촛불문화제에 찾아온 민주당 의원들 ⓒ 박형준


늘 그래왔듯이, 이런 자리에선 정치인들의 발언이 주목받는다. 하지만, 내가 듣고 싶은 것은 틈새의 목소리였다. 혹시 주목받더라도 보다 솔직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의 그 솔직한 목소리를 끌어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판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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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과 함께 한 YTN 노조원들의 촛불문화제 ⓒ 박형준


며칠 전, 현덕수 당시 노조위원장의 간단한 인터뷰를 이끌어냈듯이, 박경석 신임 노조위원장의 인터뷰를 시도했다. 현덕수 당시 노조위원장처럼 촛불집회의 진행을 맡은 것을 감안해 인터뷰는 가급적 간단히, 핵심만 담은 질문으로써 시도했다.

[박경석 YTN 노조위원장 인터뷰] "촛불 시민 덕분에 외롭지 않다는 것 알았다"

- 어려운 시기에 노조위원장에 선출되셨다. 많은 분들이 오는 14일로 예정된 YTN의 주총 당일의 계획, 그리고 혹시 모를 그 이후의 '만에 하나'에 대한 계획을 궁금해 한다.
"주총 당일에는 모든 조합원들이 아침 일찍 모여 1층 로비에서부터 주총이 열리는 5층으로 통하는 모든 입구와 계단, 엘리베이터 등을 봉쇄할 예정이다.

만약, 사측이 '다른 기술적 수단'을 동원해 주주총회를 열어 구본홍씨를 사장으로 선임한다면, 그때부터는 구본홍씨가 본사 건물에 출입할 수 없도록 '출근 저지 투쟁'에 들어갈 계획이다."

- 현덕수 전 노조위원장은 3일째(11일 저녁) 단식 투쟁 중이다. 박 위원장께서는 진행 도중에도 현덕수 전 위원장의 단식 투쟁을 거론하면서 '말리고 싶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래도 단식을 강행하는 현덕수 전 위원장을 보면서 생각하게 된 감회나 각오가 있다면?
"어깨가 무겁다. 어떻게든 좋은 결과를 이끌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심하다. 조합원들 모두 문제의식으로 뭉쳐 이 문제에 임하고 있다. 조합원들이 이렇게 뭉쳤으니 못할 게 없다. 우리는 이길 수 있을 것이다."

- 지난 9일, MBC 노조가 여의도 MBC 본사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진행했을 때, 박성제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장을 인터뷰했던 적이 있다. 당시 박 본부장은 'YTN의 낙하산 사장 저지 투쟁'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지지'를 이야기했다. 화답의 목소리를 낼 수 있나?
"처음엔 외로운 싸움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촛불 시민'과 타 방송사 구성원들이 응원과 힘을 모아주면서 우리가 틀리지 않았으며 결코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지금의 현실은 YTN만의 문제가 아니다. YTN·MBC·KBS 모두 패키지로 엮여 대치하고 있는 상황 아닌가? KBS·MBC의 문제가 YTN의 문제고, YTN의 문제가 MBC·KBS의 문제다. 사업장의 한계를 뛰어넘어 언론 노동자로서 힘을 합쳐 연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여기서, 잠시 소개해야 할 현덕수 전 위원장의 발언이 있다. 3일째 단식투쟁을 벌이는 사람답지 않게 목소리에 힘이 가득 실려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현덕수 전 위원장,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뛰었던 '특보'가 공영방송사 사장으로 와선 안된다"는 이야기를 다시 강변하던 그는 이런 비유를 남겼다.

"승지를 하셔야 할 분이 대사간으로 와서야 되겠느냐."

'승지'는 조선왕조에서 임금의 '비서관'이며, '대사간'은 임금에게 바른말을 하는 기관 '사간원'의 책임자다.

밤 늦게까지 이어진 'YTN을 지키기 위한 촛불'

변함없는 풍경이었다.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 와중에 '다인아빠'의 용달차가 YTN 본사 앞을 찾아와 자원봉사자들과 힘을 합쳐 이번에는 '비빔면'을 만들어 시민들의 허기를 달래줬다.

하지만, 그 비빔면을 보는 순간 내 눈은 한 사람에게로 집중됐다. 단식투쟁 중인 현덕수 전 위원장이다. 시청 앞 광장에서 단식을 진행했던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들이 행상들이 팔던 버터구이 오징어 등의 음식 냄새에 곤욕을 치렀다는 에피소드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를 핑계로 걱정 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욕심 반, 그를 찾아가 대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그 대화 속에 더욱 의미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현덕수 전 위원장과의 대화] "고맙다. 한편으로는 두렵다."

▲ YTN 본사 앞에서 단식농성 중인 현덕수 전 노조위원장 ⓒ 박형준


- 예전에, 사제단 신부님들이 단식을 진행하면서 '버터구이 오징어'의 강한 냄새에 곤욕을 치르셨다고 들었다. 단식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잘 알고 있고, 주변 분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 것 같아 한 사람이라도 덜 귀찮게 하자는 생각에 대화하고 싶은 생각을 참았다가 지금 '비빔면'을 보고 걱정 반, 욕심 반으로 다가오게 됐다.
"단식을 하면 시작 후 이틀까지가 괴롭다. 그런데 그 이후엔 음식을 봐도 저것이 '먹는 것'이라는 생각은 하는데 위에서 식욕이 당기진 않더라. 신기하다."

- 가족 분들이 걱정이 많으실 것 같다.
"당연히 걱정한다. 그런데, 내 직업과 그에 따른 신념으로부터 비롯된 것 아닌가. 이해하더라."

- '촛불 시민'들이 오늘도 많이 찾아오셨다. 그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나?
"고마울 따름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렵다. 지금까지 YTN이 시민들께서 바라시는 보도를 구현했는지, 그리고 앞으로도 구현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그를 걱정하는 지인들이 지속적으로 찾아오면서 "월요일 아침에 뵙겠다"는 인사를 남겼다. 가장 무서운 투쟁 수단인 단식까지 불사하는 현덕수 전 위원장, 그 무서운 의지를 곱씹어볼 수밖에 없었다. 과연, YTN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번에는 이색적인 인물을 인터뷰해봤다. YTN 앞에서 집회가 열릴 때마다 늘 노트북을 들고 현장을 생중계하던 BJ '산타니온'이다.

[BJ '산타니온'과의 인터뷰] "민주주의는 말이 아닌 참여다"

- YTN 앞에서 자주 본 것 같다. 인터넷 생중계를 한 지 얼마나 됐나.
"5월말부터 했으니 한 달이 넘었다. 잘 알려지지 않고, 기성언론이나 인기BJ의 카메라가 없는 곳을 집중해 생중계하고 있다. 어차피 '인기 BJ'가 되려고 하는 것도 아니니깐 말이다.(실제로 그는 BJ '라쿤'과 진보신당 '칼라TV' 생중계 카메라가 현장을 찾아오자 방송을 접었다)

실제로, 집회에 여러번 참여하면서 알려지지 않은 곳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기성방송사가 '외면한다'는 생각이 드는 현장들이었다. YTN 앞에서 이렇듯 방송을 하면 평균 20명 가량이 시청한다. 긴장감 넘치는 대치상황이 아니라는 상황 확인 후에는 바로 생중계방을 나가는 분들이 많다."

- 느낀 것이 많을 것 같다.
"촛불 시민들, 정말 대단한 분들이다. 이분들 중에는 경찰이 강경진압을 해 피해를 입은 분들도 많다. 그럼에도 자주 나오시는 분들이다. 심지어 수원에 거주하는 76세 할아버지께서도 하시는 일까지 교대하시며 매일 찾아오신다. 이런 분들을 보면서 나는 생중계를 진행할 때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느낀다'라는 멘트를 자주 남기는 편이다.

특히, 수원에서도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시는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젊은이로서 부끄러웠고 방학을 맞이했음에도 여전히 소극적인 대학생들에게도 실망이 많다."

- BJ로서 느낀 '촛불'의 미래는 어떨 것 같나?
"언젠가 '다음 아고라'에서 '5년간 촛불 들 각오'를 이야기하는 댓글을 봤다. 그 댓글을 쓴 분으로서는 자신의 각오를 담은 댓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부는 이미 귀를 막을 대로 막고 있다. YTN만 해도 거의 매일 나와 상황을 생중계하고 있지만, 구본홍 사장 내정자를 저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실낱같은 희망'의 존재를 믿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말이 아닌 참여다. 그렇다고 촛불을 들지 않는 시민을 비난하고 싶진 않다. 다만 그 '말 아닌 참여'라는 생각을 내 스스로부터 지키고 싶다. '실낱같은 희망'은 거기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YTN, 운명의 날은 이제 이틀 앞으로...

▲ 아시는 분은 아실 것이다. YTN 본사 옥상에서 날린 종이비행기다. ⓒ 박형준


자정을 넘기면서 이제 운명의 날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14일 아침 일찍 YTN 본사 앞으로 찾아가 현장을 취재해 최대한 빨리 소식을 기사로 담겠다는 약속을 하겠다. 만일을 대비해 15일에도 14일과 같은 일정을 소화하기로 다짐했다.

박경석 신임 노조위원장이 이야기했듯이, 가장 시급한 현실을 맞이한 YTN의 문제는 반드시 YTN만의 문제는 아니다. 나아가 대한민국의 모든 방송사의 문제이며,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잘 반영될 수 있을지, 언론 전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사업장의 한계를 뛰어넘은 연대의 움직임, 그에 대한 시민들의 호응은 그래서 이어진 것이 아닐까.

운명의 날은 그렇게 다가오고 있다. 현덕수 전 위원장은 그렇게 밤을 지새워가며 단식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며, YTN 노조원들도 각오를 다지고 있을 것이다. 비가 오고 있다. 하지만 이 비가 '촛불'의 열기를 식힐 것 같지는 않다. '촛불'은 그렇듯 그 작은 불씨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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