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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고, 누가 저기다 내 이름을 적어놨데!”

사랑하는 큰누님과 세 번째 데이트

등록|2008.07.12 12:47 수정|2008.07.12 12:47
열사병으로 사상자가 속출하고, 전기 사용량이 사상 최대를 경신할 정도로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11일 노인성 치매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큰 누님과 부산 UN 묘지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왔습니다. 지난달 20일쯤 가겠다고 약속을 했었는데 무엇이 그리 바쁜지 이제야 다녀왔습니다.

▲ 부산 대연동에 있는 UN군 묘지 입구. 입구 비석에 안내문과 함께 ‘정숙’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는데 이름이 같아서인지 저보다 큰누님이 먼저 발견했습니다. ⓒ 조종안


병원 원장의 소견에 따르면 큰 누님은 기이한 행동이나 퇴행 정도는 그리 심하지 않은 편인데, 비현실적이고 비논리적인 사고의 정도가 높고, 기억력 및 판단력이 많이 손상됐으며 자해 위험이 높아 지속적인 치료와 보호가 필요한 분입니다.

사리 판단이 뛰어났고, 여행을 무척 좋아했으며 낙천적이었던 큰 누님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법, 꾸준한 관심과 사랑으로 가까이 가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큰 누님을 위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저를 위하는 일도 되기 때문입니다.

큰 누님은 누구보다 육십(六十)갑자(甲子)를 잘 꼽았습니다. 그러나 30여 년전 가톨릭 영세를 받더니 성지순례도 다녀오고 고향을 방문했을 때도 일요일 아침이면 근처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러 갈 정도로 신앙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정신과 병원에 입원하는 걸 보면서, 굳이 종교를 가져야 하는지 회의가 들기도 했지만, 탓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침에 형수님이 싸주신 부침개를 보니까 큰 누님 얼굴이 떠오르더라고요. 아마 제삿날 큰 누님이 참석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해서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12시쯤 면회가 가능한지 물었더니 좋다고 해서 점심이나 하면서 고향에 다녀온 얘기나 하고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에서 큰 누님이 입원한 병원까지는 40분이 소요되기 때문에 11시쯤 집을 나섰습니다. 지난 3월14일 입원하고 세 번째 데이트라서 이번에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가족과 함께 만났을 때와 둘만이 오붓한 시간을 가지며 관찰하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지요.

병원에 들어서니 호텔의 커피숍을 떠올리게 하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과 그윽한 커피 향이 가장 먼저 반겨주었고, 여직원이 원무과로 안내하기에 따라갔더니 담당 과장이 입원 후 6개월마다 하는 ‘계속입원심사 청구서’에 사인을 부탁했습니다. 환자의 동생이고 보호자로 등록되어 있으니까 부탁했던 모양인데 정중히 사양을 했습니다.

엄연히 아들이 있는데 삼촌이 대신 사인을 하는 것은 조카에게 예가 아니라는 생각에 전화했고 조카가 사인을 하기로 했습니다. 담당 과장도 알겠다며 퇴원해야 할 환자를 강제로 입원을 시키고 있는지 확인하는 서류라며 친절하고 자상하게 설명해주더군요. 그는 폐쇄병동이기 때문에 환자의 인권에 중점을 두고 병원을 운영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큰누님과의 만남

▲ ‘늘씬한 미인’ 소리를 듣던 30대 시절의 큰누님. 이 사진을 찍을 때만해도 지금처럼 병원에 입원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에서 병(病)이 빠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 조종안

원무과에서 일을 보고 삼층 입원실로 올라가니까 큰 누님은 이미 외출준비를 마치고 간호사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누님, 오랜만이에요!”라고 했더니 저를 힐끗 쳐다보더니 “왜 혼자 왔대?”라며 서운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여럿이서 오는 것으로 알았던 모양이지요.

잠시 간호사와 인터뷰를 했는데, “그동안 병원생활에 잘 적응하고 계시고, 환자들과의 관계도 전보다 좋아졌어요”라며 “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니 외출하시면 즐겁게 지내고 오세요”라고 인사를 하더라고요. 지난번 왔을 때보다 심하지 않다는 말에 그나마 위안이 되었습니다.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설명을 듣고 가벼운 마음으로 큰 누님과 잠시 대화를 하면서 어머니 제사를 지내고 왔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나 엊그제 어머니 제사지내러 군산 형님댁에 다녀왔어.”
“누구 누구가 왔대?” 
“응, 평택 막내 누님하고 미원동 누님하고 매형들, 그리고 상규 부부하고 종관이 부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왔더라고···.”
“평택이 누구더라?”
“소정이 아빠하고 소정이 엄마 몰라?”
“글쎄 이름을 잊어버려서 봐야 알지 몰라 옛날에는 영리혔었는디 다 잊어버려 가꼬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던 큰 누님은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형님과 동생 이름을 말하더라고요. 놀라고 기쁜 마음에 “그럼 혜진이랑, 호진이랑, 유진이도 알겠네?”라며 물었더니 이름은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얼굴은 모르겠다고 해서 얼마나 허탈했는지 모릅니다.

큰 누님은 화장실을 가거나 신발을 신을 때 옆에 있던 간호사가 도와주면 “미안혀서 어떻게 헌데”라며 깍듯이 인사를 챙깁니다. 식당에 가서도 음식을 시키면 “너무 비싼 것은 시키지 마”라며 제 호주머니 사정을 염려해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버릇처럼 되뇐다는 것이지요.

'UN 묘지'에서 데이트를 즐기다

큰누님은 식당에 가면서도 "지금 다들 어디에 와 있느냐?", "지금 어디로 가는 거냐?"라며 묻기를 반복했습니다. 같은 말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걸 보며 기억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평화공원 분수대에서 포즈를 취한 큰 누님. 30대였던 40년 전 사진과 비교가 되는데요. 우리 모두는 나이를 먹으면 이렇게 늙어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망각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 조종안


식사를 하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예전과 변화가 없더라고요. 예상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만족할 수도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입원하던 날 “기적이 일어나면 몰라도, 현재 상태가 더욱 악화되지 않으면 다행입니다”라고 했던 원장선생님의 말을 생각하며 마음을 달랬습니다.

UN묘지가 있는 평화공원에 가려고 택시를 타려는데, 갑자기 “핫따 돈도 많네!”라며 비꼬는 투로 말을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나쁘기보다 오히려 살갑게 들렸습니다. 젊어서부터 말을 삐딱하게 하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에 옛날의 누님을 보는 것 같아서였지요.

택시를 타고 공원으로 가는데 라디오에서 ‘꽃나비 사랑’ 가요가 흘러나오니까 ‘노래가 참 재미있다’라며 좋아했는데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몇 번을 반복했는지 기억을 하지 못하겠네요. 이러한 경우는 환자들이 좋아하는 가요를 감상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UN묘지에 도착, 단정하게 정돈된 공원길을 걸어가며 큰누님 손을 살며시 잡았습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흘러 애인의 피부도 닿는 게 싫을 정도인데, 큰누님의 손목은 보리목을 태우는 등겨불처럼 따사하고 고소했습니다. 그래서 형제요, 피붙이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평화공원 분수대 벤치에서 쉬고 있는데 자꾸 ‘푸른아파트’ 얘기를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왜 그러나 했는데 알고 보니 근처 아파트 단지와 학교건물이 큰 누님이 살던 동네 분위기와 비슷하고 도로도 비슷하게 나있어서 ‘푸른아파트’가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UN군 묘지 정문 옆에는 검은 돌에 음각으로 ‘정숙’이라고 새겨져 있었는데 큰 누님이 “하이고, 누가 저기다 내 이름을 적어놨대!”라며 신기한 듯 바라보더라고요.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설명을 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큰 누님이 얼마나 불쌍하게 보이던지···. 처음 보는 노인이었다면 불쌍하기는커녕 웃고 지나쳤을 것입니다.

무더위 속에서도 큰 누님과의 세 번째 데이트를 즐겁게 하고 오후 4시쯤 병원에 도착, 병동의 간호사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데 큰 누님이 갑자기 따라 나왔습니다. 엄마를 따라가겠다고 투정을 부리는 아이 같아 얼굴을 마주할 수가 없더라고요.

전에는 “또 언제 온대? 언제까지 기다려야 허는디···”라며 서운한 표정만 지었지 따라나서는 일이 없었거든요. 무척 당황스럽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해서 “그럼 내일 또 올게요”라고 했더니, “아녀 나도 갈꺼여. 오늘 갔다 내일 같이 오면 되잖여”라고 우기며 아래층까지 따라오는 큰 누님을 외면하고 오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같은 얘기를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큰 누님은 자아를 상실한 것과 다를 게 없는데요. 그런 누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친구일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친구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해서 큰 누님과의 데이트 횟수를 늘려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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