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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붓은 이건희의 돈보다 맛있다

[만화미담 오미공감 ③] '빨간 자전거' 김동화 만화가의 세 번째 이야기

등록|2008.07.14 09:20 수정|2008.07.18 15:49
'엄마 김치'가 브랜드 김치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가족 맛'은 '외식 맛'으로 바뀌고 있다. 그만큼 서민들이 접할 수 있는 손맛 가짓수는 줄어드는 추세다. 상대적으로 인간미(人間味)에 대한 그리움도 커지고 있다. 꺼벙이, 고인돌, 맹꽁이 서당 등 추억의 만화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는 사람이 적지 않은 현상도 그 중 한 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만화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작품에 나타난 인간미의 소중함을 재확인하고, '맛'의 현재적 의미를 모색하는 기획시리즈 '만화미(味)담 오미공감'을 마련했다.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편집자말]
'세상은 요지경'이란 노래가 있다. 세상이 알쏭달쏭, 묘하게 보이는 이유를 한 마디로 정의하는 노래다. 여기도, 저기도 '짜가'가 판을 치기 때문이란다. 노래에 드러나지 않는 그 이유 또한 짐작할 수 있다. '돈'이 진짜 행세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문제는 돈이 아닌 '돈맛'이란 요 놈에 있다.

돈맛에 속지 않으려면... "남의 길과 자꾸 비교하지 말라"

▲ 만화가 김동화 선생 ⓒ 이정환


그 맛은 무척이나 자극적이다. 그래서 '돈을 쓰거나 벌거나 모으는 재미'를 제어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만화가 김동화(58·한국만화가협회 회장) 선생은 "남의 길과 자꾸 비교하지 말라"고 권유했다. '머털도사' 이두호 선생과의 교감부터 소개한다.

"이두호 선생님이 홍익대를 졸업했는데요. 4년 학비로 그때 합정동 근처 땅을 사놨으면 최소한 수천억원이 되지 않았겠냐고, 과연 그만큼 가치를 이제까지 생산해냈는지 모르겠다며 웃으시더군요.

돈 벌려고 했으면 다른 일을 했어야 한다는, 남의 길을 볼 필요가 없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이었죠. 그렇죠? 만화 그려서 이건희 회장만큼 돈 벌 수 있겠어요?

자꾸 비교하니까 내가 늘 부족해 보이는 겁니다. 100억 가진 사람이 200억 가진 사람 앞에서 주눅 든다. 이게 말이 되냐구. 죽는 순간까지 불행할 수밖에 없죠. 다른 사람은 얼마짜리 관에 들어가는데 하면서…. 숫자놀이만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작 중요한 것은 내가 만족하는 숫자가 얼마냐죠. 그 이상 숫자는 짐만 되니까 말입니다."

허름한 음식점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

각자 나눠야 할 짐은 분명 따로 있다. 그 이상 '숫자'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고민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기업가다. 선생 말처럼, 만화가에게 필요한 고민은 '돈을 그리지 않고 작품을 그리는 것'이다. '좋은 작품', 명작도 그래서 탄생하게 된다.

"소위 명작이라는 것, 백년이 지났는데도 왜 읽히겠습니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굶으면 배고파지는 것은 똑같듯이, 지금도 변치 않는 사고나 사상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죠. 돈을 초월하는 좋은 작품을 내놓겠다는 마음이 작가들에게는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심지죠. 그런데 어떤 순간 배고프다 해서 비겁해지고, 또는 배부르다고 오만해지고 하면 심지가 없는 것입니다. 쉴 새 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죠."

밥만큼 세월을 초월한 '명작'이 또 있을까. 음식을 만드는 이와 만화가는 서로 통하는 바가 많다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모두 세상에 '양식'을 내놓는 사람들, 김동화 선생도 "오래된 맛집"을 예로 들며 만화가의 '손맛'을 강조했다. 찌그러진 냄비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도 했다.

"다소 불편하고 허름해도 사람들이 즐겨 찾는 음식점, 그런 집들 많이 있잖아요. 맛이 있기 때문이겠죠. 작품에도 맛이 있습니다. 작가마다 '손맛'은 다릅니다. 작가에게 '손맛'은 사상이자, 가치관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야 장맛이 나는 메주처럼, '손맛' 역시 사물에 대한 해석이 겹겹이 쌓여야 합니다. 누구 이야기면 그건 이론일 뿐이죠. 사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 트랜드가 어떻게 간다고 그걸(손맛) 바꾼다? 말이 안 되죠. 물론 '찌그러진 냄비'는 바꿀 수 있습니다. '찌그러진 냄비'라서 그 맛이 나는 건 아니니까요. 손맛을 그대로 갖고 가되, 표현이나 스타일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저 내 맛이 좋다고, 버려도 되는 '구닥다리'를 고수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민들레' 외치던 이상무 선배 잊을 수 없어"

좋은 '양식'을 만드는 데 필요한 3요소가 다 나왔다.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마음, '심지'가 첫 번째요. 누구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사상, '손맛'이 그 다음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작가의 표현이나 스타일이 담길 '냄비' 또한 꼭 필요하다. 이와 함께 선생은 한 가지를 더 강조했다. 바로 작가 자신의 '맛', 인간미다.

"금방 목욕하고 나와 아주 말끔한데도 왠지 껄끄럽고 피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참 꼬질꼬질하고 못생겼는데도 오랫동안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단 말이죠. 같은 돈을 주고 물건을 샀는데도 감동을 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거 바가지 쓰지 않았나 의심부터 생기게 만드는 사람도 있어요. 작가 자신이 어떤 맛, 어떤 인간미의 소유자인가가 중요합니다."

▲ 만화가 김동화 선생 ⓒ 이정환


- '인간미'하면 떠오르는 동료 만화가가 있으신지요.
"한 번은 작가님들과 설악산에 함께 간 적이 있어요. 한 사람이 먼저 돌아가야 해서 속초 터미널까지 배웅을 나가는 길이었죠. 1월인가, 2월인가, 굉장히 추운 날씨였어요. 갑자기 맨 뒤에서 비명소리가 나는 거예요. 이상무 선배였죠. 축대 돌 사이에 피어난 민들레를 보고 외친 거였어요. 그냥 다들 별 생각 없이 보고 지나갔는데, 유독 그렇게 소리를 지르더라구요.

독고탁 답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상무 선배가 사람이 참 맑아요. 우리는 나름 영악해서 초상집 가면 슬프지 않아도 슬픈 표정 짓습니다. 하지만 독고탁은 그게 아니죠. 초상집 가서 박장대소하고 잔칫집 가서 대성통곡하잖아요. 그런 식으로 작품 속 주인공이 자기스러웠고, 이야기 풀어나가는 과정 역시 따뜻했어요. 그 자연스러움이 너무 좋았습니다."

"망가지기 싫다면, 악착같이 꽃 심을 자리 찾아라"

- 내년이 한국만화 100주년입니다.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단독 주택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여기 살면서 재미나고 아름다운 것들을 얼마나 많이 느끼는지 모릅니다. 우리집에 나비가 참 많이 와요. 아파트 살 때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이유는 간단하죠. 내가 꽃을 심었으니까 나비가 오는 겁니다. 쓰레기를 어질러 놨다면, 초대하지 않아도 파리가 오겠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이 고우면 나비가 오고, 내 마음이 어지럽고 더러우면 파리가 꼬입니다. 진짜 아름다움은 크거나 높거나 비싼 것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되찾아야 하고, 잃어버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인간미입니다. 정말 자신의 마음에 나무 심을 자리를, 악착같이 꽃 심을 자리를 찾아야 해요. 스스로 망가지기 싫다면."

▲ 김동화 선생의 '요정핑크' 진이의 날자 우리만화 블로그 ⓒ blog.naver.com/yang3995


만화가 김동화 선생은 1950년생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1975년 소년한국일보에 '나의 창공'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1985년 <보물섬>에 '요정 핑크'를 발표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이후 '곤충소년', '천년 사랑 아카시아' 등으로 국내 대표 만화가로 자리매김했다. '요정 핑크'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MBC를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만화가 '김동화'의 미덕은 '순정만화'에만 있지 않다. '우리 어머니들의 옛 시절 이야기'를 담은 황토빛 이야기나 주옥같은 한국 단편을 만화로 재구성한 '만화로 보는 한국단편문학선집' 등의 작품 활동을 통해 '토종 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특히 한적한 시골마을을 왕래하는 우체부 이야기를 다룬 '빨간 자전거'는 2005년에 한국 최초로 프랑스 만화비평협회 선정 대상 후보작에 오른 작품. 2002년 <조선일보>를 통해 처음 발표됐던 '빨간 자전거'는 2006년 <미디어다음> 연재를 통해서도 많은 누리꾼들의 사랑을 받았다.

올해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김동화 선생은 한국만화의 고급화, 독자의 다변화, 한국만화의 세계화 등 3대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지금 우리 만화계가 어렵다고 실망하기보다는 도끼를 갈아 펜촉을 만드는 인내로 희망을 갖고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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