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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주총 하루 앞으로...정부-언론계 첫 '충돌'

노조 "구본홍 사장 선임 맞서 주총 봉쇄"... 촛불도 밤샘

등록|2008.07.13 19:24 수정|2008.07.13 19:38

▲ 범국민촛불문화제에 참석한 학생과 시민들이 13일 새벽 서울 중구 YTN 본사 앞에서 "공정방송 사수", "구본홍 사퇴"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13일 새벽 0시께 '촛불 시민'들은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전경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폭우는 여전했다. 갑자기 누군가 소리쳤다.

"YTN으로 갑시다~"

시민들은 별로 술렁대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갑시다" 호응이 터져 나왔고 곧 시민들은 몸을 돌려 남대문쪽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2000여명이 함께 움직였다.

남대문 YTN 사옥 앞에서는 단식 4일째인 현덕수 전 노조위원장(구본홍 사장 저지 YTN 비상대책위원회 집행위원)과 촛불시민 50여명이 시민들을 반겼다. 시민들은 "YTN 힘내라", "YTN 우리가 지킨다", "우리가 지켜줄 테니 잘해~"등의 구호를 외치며 이들에게 힘을 줬다. 노조 측은 옥상에서 양 날개에 '공영방송 사수'와 '방송장악 저지'라는 구호를 적은 종이비행기 수십 개를 날리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구본홍 사장 선임되자 촛불 "YTN으로..."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방송특보를 지낸 구본홍씨가 YTN 사장으로 선임된 것은 지난 5월 29일. YTN 내부가 먼저 요동쳤다. 언론계에서는 이미 지난 4월부터 'YTN 구본홍 사장설'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소문은 현실이 됐다. 구본홍씨는 YTN 신임 사장 공모에 응모했고 YTN 이사회는 5월 29일 오후 3시 서울 시내 모 호텔에서 구씨를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이날 이사회는 원래 YTN 사옥 17층 대회의실에서 열리기로 예정돼 있었으나 장소가 갑자기 옮겨졌다.

노동조합과 언론계에서 입장을 밝히기 시작했다. "정치적 독립성을 지켜야 할 보도 전문채널 사장으로 이명박 대통령 방송 특보 출신을 앉히면 위상과 공신력이 훼손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때부터 YTN은 '일부 오피니언 리더들이 종일 켜 놓는 24시간 뉴스전문채널'이 아니었다. "뻔뻔한 논공행상 촛불이 막아내자", "윤택남(YTN)을 지켜주자"는 말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돌았고 급기야 촛불이 YTN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이후 YTN 노동조합은 화요일과 금요일 정기 저녁집회를 열었다. YTN 창사 이래 첫 '방송민주화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투쟁 경험이 일천한 YTN 조합원들이었다. 여러 모로 힘에 부쳤고 결합력도 높지 않았다. 그런데 저 멀리서 잔잔한 빛이 YTN쪽으로 왔다고 한다. 촛불이었다.

YTN 한 기자는 "촛불이 YTN 앞을 밝히게 될 줄 몰랐다"며 "처음에 우리끼리 준비하려고 하는데 촛불들이 와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의 얘기를 들으니 다들 사태의 맥락을 잘 짚고 있었다"며 "'YTN만의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국민 자존심을 지켜야 겠다' 이런 얘기들을 많이 했다, 든든한 원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 기자와 대화를 나눴던 한 촛불시민의 말처럼 YTN만의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 드라이브는 거칠 것이 없다. 이미 대선 언론특보였던 양휘부, 정국록, 이몽룡씨가 '낙하산 사장'으로 언론유관 기관에 내려갔다. 정연주 KBS 사장에 대한 전방위적 압력, MBC <PD수첩>에 관련한 검찰조사 등 현안이 한두 개가 아니다. 같은 이유로 KBS앞과 MBC 앞에도 매일 촛불이 켜지고 있다.

14일 YTN 주주총회, 언론 노동자들과 정부의 첫 충돌

14일은 YTN 주주총회 날이다. 오전 10시에 YTN 사옥 5층에서 열린다. 이사회에서 선임된 구본홍 사장이 주총에서 추인을 받으면 정식 사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YTN 노동조합은 논의 끝에 '주총 봉쇄'라는 결정을 내렸다. '주총은 허용하되 표결시 실력행사'라는 견해도 있었으나 결국 투쟁의 수위를 높인 것이다.

그러나 14일은 YTN에게만 중요한 날이 아니다. 모든 방송언론계가 YTN을 주목하고 있다. 언론노조 등 언론사회단체도 마찬가지다. 바로 정권과 언론계의 첫 '충돌'이 시작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YTN 낙하산 저지 투쟁은 굉장한 의미를 갖고 있는 싸움"이라면서 "그 자체로도 반드시 막아야겠지만, 현 정부 언론정책과 언론현장이 직접 맞붙는 첫 싸움이어서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정부와 각 방송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YTN이 맥없이 '패배'하면 이후 정부 언론정책 드라이브는 더욱 '강공'으로 흐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덕수 전 YTN 노조위원장은 "벌써 '이명박 방송'이라는 말이 돌고 있는데 이런 게 참 무서운 것"이라면서 "언론인으로 훌륭했을지는 모르겠으나 구본홍씨는 이미 정치인이다, 절대 YTN 사장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이날이 관심사다. 13일 밤에는 100개가 넘는 촛불들이 YTN에서 밤샘을 할 예정이다. 14일 오전 7시 조합원들이 정문을 봉쇄하기로 했고, 9시에는 언론노조와 시민들이 결합하기로 했다.

14일 오전 10시. '충돌'은 불가피하다. 정부와 언론 노동자와의 첫 결전장이 될 YTN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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